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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꿈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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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샬 Apr 25. 2020

넘어가지 않는 나무는 없다

최종면접에서 연달아 4번을 떨어지고 난 후

귀하의 역량과 능력은 우수하나 아쉽게도 최종면접에서 불합격하셨습니다


나는 그렇게 4번째로 최종면접에서 떨어졌다. 4번째 떨어진 최종면접의 여파는 생각보다 그렇게 크지 않았다. 처음 최종면접에서 떨어졌을 때는 나를 선택해주지 않은 회사를 원망했고, 선택받지 못한 나를 원망했다. 하지만 최종면접에서 탈락한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불합격으로 인한 충격은 점점 무뎌져 갔고, 나는 그저 결과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사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감정은, '나는 정말로 안 되려나보다'라는, 부정적인 감정에 불과했다.


취업난과 계속되는 불황 속에서 모든 회사가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언론사에 취직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매우 어려운 편이다. 단순히 언론사에 들어가기 위해 봐야 할 논술이나 작문 등의 시험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일부를 제외한 많은 언론사들이 심각한 적자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로 인해 채용 인원을 점점 줄여나가고 있다. 언론사를 지망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워낙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좁다 보니 더욱 난이도가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최종면접에 4번이나 간 것은, 내가 그만한 능력이 있다기보다 순전히 '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즐겨보고 있는 KBS의 <걸어서 세계속으로>


사실 원래는 시사교양 PD가 되고 싶었다. 시사교양 PD를 지망하게 된 계기는 사회의 변화를 일으키겠다는 거창한 목표보다도, 단순히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많은 다큐멘터리 중에서도 특히 '세계를 돌아다니는' 프로그램을 좋아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걸어서 세계 속으로'와 같은 프로그램부터, 자연의 신비로움을 카메라에 담는 '자연 다큐멘터리'까지, 남들이 가기 어려운 곳에 찾아가 영상을 제작하는 일은 오로지 PD만이 할 수 있는 일 같았다. 나도 PD가 돼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싶었다.


PD의 꿈을 사실상 그만둔 이유는, 내 능력, 혹은 역량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PD를 준비하면서 느끼게 된 점은, 나는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창의력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PD가 되기 위해서는 보통 '작문' 시험에 통과해야 하고, 작문 시험을 통과한 이후에는 '기획안' 등의 능력을 보는 실무 면접을 통과해야만 한다. 새로운 관점의 글에 더욱 높은 점수를 주는 '작문' 시험은 애초부터 많이 통과한 적이 없었고, 그렇게 가까스로 작문 시험에 합격하더라도 '기획안' 시험에서 또 높은 벽을 실감했다.



살신성인하는 '기자'들의 모습


그때, 나에게 '기자'라는 새로운 길이 나타났다. 사실 이전까지 '기자'라는 직업은 나에게 너무 장벽이 높다고 생각했다. 정치, 사회,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 관해 기본 수준 이상의 통찰력이 필요했고, 그러한 통찰력을 글을 통해 논술할 수 있어야만 했다. 그동안 책도 많이 읽지 않았고, 신문도 잘 보지 않았던 나는 절대로 기자가 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로지 글 실력을 늘리기 위해 들어간 스터디에서 기자 지망생들을 만나게 되고, 기자가 되기 위한 글을 써가면서 나는 비로소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했던 '흥미'를 느끼게 됐다.


기자가 되기 위해 공부하면서, 나는 오히려 영상보다도 글로 내 생각을 표현하고 나타내는 것이 더욱 적성에 맞다고 생각하게 됐다. 내가 쓴 글이 사람들을 충분히 설득시킬 수 있고, 스터디에서의 피드백을 통해 점점 글이 나아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PD를 지망하면서 느끼지 못한 '희열'을 느꼈기 때문이다. 만약 스터디에서 내가 쓴 글이 좋지 못한 평가를 받게 되면 더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퇴고를 거듭했고, 다음에 더욱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렇게 1년 넘게 기자를 준비하다 보니, 부족했던 내 글에 그나마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고 흥미로운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스터디를 통해 열심히 준비한 글은, 시험장에서 점점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보통 '자기소개서 - 논술 - 실무면접 - 최종면접'의 순서를 거치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자기소개서는 많이 합격했지만 논술에 합격해보지 못했던 나는, 갑자기 내가 쓴 글이 연이어 합격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됐다. 그렇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오자 비로소 나 자신에 자신감을 갖게 됐고, 실무면접을 거쳐 그대로 최종면접까지 올라가는 경험을 하게 됐다. 처음 최종면접에 갔을 때에는 '이제 다 왔다'라고 생각했다. 자신감이 최고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낙타는 바늘구멍을 통과할 수 있을까.


하지만 최종면접은 입사의 또 다른, 그리고 가장 큰 벽이었다. 최종면접에서 '25명 중 5명'을 뽑는, 5:1의 높은 경쟁률은 흔한 수준이었다. 나만 최종면접에 올라온 것이 아니었을뿐더러, 나보다도 경험이 많고 능력이 좋은 지원자들이 넘쳐났다. 심지어 '신입'을 뽑는 자리에서 '중고 신입', 혹은 '경력'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고, 그들은 유창하게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말로 풀어냈다. PD를 준비하느라 '영상 제작' 등의 경험이 전부였고, 단순히 논술 시험에 간신히 합격할 수준에 불과했던 나는 그들 사이에서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마지막 단계에서 힘없이 미끄러지기만 했다.


작년에 봤던 마지막 '최종면접'에서, 나는 어느 때보다도 좋은 느낌을 받았다. 그전까지 봤던 최종면접과는 매우 다른 느낌이었다. 내가 면접에서 말하고자 했던 생각이나 의견을 모두 말했고, 면접관들도 나에게 좋은 평가를 내린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내가 '영상팀 인턴'을 하면서 길렀던 '영상 제작' 능력에 대해 일부 면접관이 관심을 가졌고, 이에 대해 계속된 질문을 이어나갔다. 함께 들어간 5명 중에서 내가 그나마 하고 싶었던 말을 다 했다는 생각에, 나는 불안하지만 조금의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내게 남은 것은 '불합격했으며 지원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의미 없는 문자뿐이었다.


내가 왜 떨어졌을까?


만화 '심슨'에 나온 분노의 5단계와 무한도전의 장면


분노의 5단계(five stages of grief)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거론한 죽음과 관련된 임종 연구(near-death studies) 분야의 이론이며 퀴블러 로스 모델(Kübler-Ross model), '죽음의 10단계'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인간이 자신의 죽음을 서서히 맞이하는 데에 부정에서부터 분노, 타협, 우울감, 납득의 단계들을 거치면서 이를 받아들이게 되는 심리상태를 가리킨다.(출처 : 위키백과)


최종면접에 떨어지고 나서, 나는 정확히 '분노의 5단계'를 거쳤다. 처음에는 부정이었다. 내가 최종면접에서 떨어졌다는 결과 자체를 부정했다. 다음은 분노였다. 회사가 나를 떨어뜨린 것과 내가 충분한 역량을 갖추지 못한 것에 대해 분노했다. 그리고 타협이었다. 한 번만 붙여주면 정말 잘할 것이라고 하늘에 빌었다. 다음에는 우울이 나타났다. 하루 종일 멍한 상태로 있거나, 울적한 기분을 술을 통해 풀었다. 마지막으로 납득이었다. 더 이상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차분히 내 감정을 정리하게 됐다.


지금 상황은 '납득'의 단계다. 나는 최종면접에 떨어진 것에 대해 우울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활기차지도 않다. 그저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최종면접에 10번이나 떨어진 사람을 보면서, 나는 '그 사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경험을 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4번이라는 숫자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나보다 더 많이 최종 불합격을 경험했음에도 좌절하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을 보고 반성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그는 10번이나 나무를 찍었음에도 넘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11번째 도끼질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끝까지 해보려고요

인도 '맥그로드 간즈'에 있는 트리운드 산에서


면접을 준비하기 위해 만났던 한 친구는, 자신은 끝까지 해보겠다는 말을 했다. 기자를 준비한 지 2년이 넘었지만 그에게 합격 소식은 오지 않았고, 그도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심지어 좋은 메이저 언론사가 아니더라도, '기자'로 일할 수만 있다면 어디든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비록 우리가 같이 준비했던 면접에서 우리 둘은 모두 떨어졌지만, 그는 얼마 있지 않아 다른 언론사 시험에 합격해 입사에 성공했다. 그것도 공신력 있고 영향력 있는 매체 중 하나였다. 10번 찍어 나무가 넘어가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흔히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면 포기하라고들 하지만, 그는 묵묵히 11번, 12번을 찍어나갔고, 결국 나무가 넘어간 것이다.


나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나무를 찍어보려고 한다. 나 역시 '나무는 당연히 열 번 찍으면 넘어간다'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열 번 찍는다고 해서 나무가 무조건 넘어가리란 법은 없었다. 대신, 열 번이 아니라 스무 번이든, 서른 번이든 나무를 꾸준히 도끼로 찍는다면, 어느 순간에 결국 나무는 넘어갈 것이다. 중요한 것은 '도전'을 포기하지 않는 것일 뿐, 나무를 찍는 횟수는 중요하지 않다. 도끼로 찍어서 넘어가지 않는 나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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