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속의 작은 '유럽', 심라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파르한. 책을 보고 있던 그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울린다.
뭐? 란초가 나타났다고?
그의 오랜 친구, 란초를 찾았다는 소식이었다.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란초를 찾았다는 말에 그는 온갖 핑계를 대며 서둘러 비행기에서 내린다.
또 다른 오랜 친구, 라주를 데리고 찾아간 곳. 그곳에는 란초는 없고 '소음기'라 불리던 차투르가 있었다. 그는 란초가 있는 곳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그들은 란초가 있는 곳으로 떠난다.
산 비탈길에 있는 험한 도로를 뚫고...
그들의 목적지는 바로 '심라(Shimla)'였다.
그렇다면 영화 <세 얼간이>의 그들이 향한 심라(Shimla)는 어디인가?
심라(힌디어: शिमला, 영어: Shimla)는 인도 북부 히마찰프라데시 주의 주도로, 높이는 해발 2,205m이다. 히말라야 산맥 기슭에 위치한다.(출처 : 위키백과)
심라는 말 그대로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다. 영화에서는 마치 차를 타고 단숨에 가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산을 타고 오르는 꼬불꼬불한 도로를 올라가야 하며, 소요시간 또한 가장 빠른 경우 8시간, 오래 걸릴 경우 무려 13시간에 이른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그들은 '란초'가 심라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간 것이었다. 물론, 단순히 생각해봤을 때 심라에 살고 있다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을 수 있다. 다만, 친구들이 란초가 심라에 산다는 말을 듣고, 어떠한 생각을 하며 갔을지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심라는 영국령 인도 제국의 여름 수도였다. 한여름에는 50도를 가볍게 넘기는 덥다 못해 뜨거운 날씨의 인도는 과거 영국령이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본래 영국령 인도 제국의 수도는 '콜카타'라는 곳이었지만, 매년 여름철에는 콜카타의 수도 기능이 잠시 '심라'로 옮겨졌다. 이로 인해, 주로 영국의 귀족들이나 지배층들이 이 곳 심라에 많이 거주하기도 했고, 과거 영국의 영향을 받은 건물 또한 많다.
위 건물 또한 영국령 시기에 지어진 건물이며, 당시 심라에 살고 있던 영국인들을 위해 지어졌다고 한다. 크라이스트 교회는 심라를 대표하는 상징물 중 하나로, 1857년 건립된 북인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교회다. 지어진 지 오래된 시간이 흘렀지만 이국적인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건물이다.
이 건물 역시 영국령 인도제국 시기의 건물이다. 1940년까지는 영국 총독의 여름 관저로 사용됐으며, 특히 이 건물은 인도 독립에 영향을 끼친 중요한 회의가 치러지기도 했던 곳이다. 건물은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져 우리가 생각하는 인도보다도 유럽풍의 느낌이 난다고 할 수 있다.
과거 영국령 인도제국 시기, 여름철 피서지이자 여름 수도이기도 했던 심라는 지금도 뜨거운 여름 날씨를 피하기 위한 피서지로 각광받고 있다. 아직도 해마다 더운 여름이 있는 날이면, 인도의 부유층들이 이 곳 심라로 피서를 온다고 한다. 또한, 이 곳은 의외로 '교육의 메카'로, 수준 높고 명망이 있는 학교들이 많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이후에 얘기할 명문 기숙학교 'Bishop cotton school'의 경우에도 인도 전역에서 유명한 명문 학교 중 하나다.
결국, '란초'가 심라에서 산다는 것은 결국 그가'부자'일 확률이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이며, 영화의 배경인 ICT(인도의 명문대인 IIT를 모델로 함)를 나왔다는 것을 볼 때, 심라의 한 명문 학교를 졸업했을 수 있다는 예측 또한 가능할 것이다.
왜 인도에서 '유럽'을 찾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실제로 인도를 좋아하고, 인도 여행을 자주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인도 특유의 왁자지껄함과 복잡함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심라는 굉장히 조용하고 품격이 있는 도시다. 심라는 여전히 영국령 인도제국의 여름 수도의 느낌을 지니고 있으며, 영국 신사와 같은 차림과 분위기를 한 '인도 신사'들이 거리를 거닐고 있다. 델리나 바라나시에서 구걸을 하던 사람들은 보이지 않으며, 거리는 쓰레기 없이 굉장히 깨끗하게 유지돼 있다. 인도의 다른 지역을 여행하다 심라로 오는 사람들은 아마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이 곳이 과연 인도인가 의문도 들 것이다.
스캔들 포인트는 심라 최고의 번화가다. 길을 따라 유럽풍의 건물들이 나란히 서있으며, 굉장히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다. 특히, 이 곳에는 말끔히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많아서 여행자 차림을 했던 '나 자신'이 굉장히 부끄러워지기도 했던 곳이었다.
지금 봐도 '여행자'임을 티 내고 다닌 촌스럽고 부끄러운 의상이다. 만약 다시 심라를 찾게 된다면, 이런 복장으로는 절대 가지 않을 것이다.
2013년에 같이 여행을 갔던 일행 중에 KIM이라고 하는 친구가 있었다. KIM은 나와 같은 대학교를 나온 동기이며, 실제 이 곳 심라의 명문 학교인 '비숍 코튼 스쿨' 출신이기도 했다.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유창하게 힌디어를 하는 KIM에게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다.
'KIM'
카페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KIM을 부른다. KIM을 알고 있는 사람은 우리 밖에 없었는데 갑자기 카페에 있던 인도인 중 한 명이 KIM을 부른 것이었다. 그는 KIM이 나온 학교의 교사였다. 오랜만에 심라에 온 KIM을 기억한 것이었다. 그는 KIM과 악수를 하고 안부 인사를 나눴다. 그 광경은 정말 신기하고 오묘하게 느껴졌다. 누구를 만나러 간 것이 아니었는데도, 우연히 인도의 한 카페에 앉아 있는데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 세상이 좁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심라에 있는 KIM의 학교를 방문했다. 방학 중이었기 때문에 사람은 없었지만, KIM의 특권(?)으로 학교에 함께 방문할 수 있었다. '비숍 코튼 스쿨'은 굉장히 유럽풍이 많이 나는 학교였다. 건물도 그랬지만, 특히 기숙사가 있는 환경이 그러했다.
'해리포터' 소설을 보면, 학생들이 4개의 기숙사로 나뉘어 함께 지내고, 서로 경쟁을 하기도 한다. 이 곳 역시 기숙사가 나뉘어 있고, 스포츠 등을 통해 서로 경쟁을 한다고 한다. 특히, KIM은 이 곳의 기숙사 중 하나의 반장을 맡았다고 했다. 실제로 학교 곳곳에 KIM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고, 이 것이 심라 사람들이 KIM을 기억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학교에 방문하고 나서, KIM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깨달았다. 물론 KIM이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해왔지만, 그보다도 한국 사람 한 명 없는 이 곳 심라에서 홀로 기숙학교 생활을 하면서 기숙사 반장까지 했던 것이 더욱 놀라웠다. 누구도 쉽게 그런 업적(?)을 세우지 못했을 것이다.
심라는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영국의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는 곳이다. 다른 지역에도 영국의 건물이나 문화가 일부 남아 있지만, 이 곳은 '여기가 인도야, 유럽이야?'라는 궁금증이 생길 정도로 이질적이고 매력적인 곳이다. 물론 나는 여행자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심라를 단순히 지금의 모습으로밖에 볼 수 없고, 인도인들이 보는 '심라'는 분명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심라는 아직도 총독이 지냈던 건물이 건재하고 있으며, 영국인이 살던 흔적들이 여전히 남아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영국령 식민지 시절의 흔적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기억하기 싫은 곳일 수도 있다.
하지만 또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보면, 심라는 인도의 '독립'에 대한 열정을 담은 곳이기도 하다. 여름 수도로써 총독이 여름을 지내던 총독의 건물은, 인도 독립을 꿈꾸던 시절 간디와 네루 등의 지도자들이 모여 회의를 하던 장소로 쓰이기도 했던 건물이기도 하다. 그들은 총독의 별장 건물을 박물관으로 바꿔놓았고, 많은 사람들이 '영국령 식민지의 여름 수도'로 기능했던 심라보다도 '인도 독립에 기여한 곳'으로서의 심라로 기억되기를 원하고 있다.
심라는 내가 가본 인도의 지역 중 가장 매력이 있고 기억에 남는 곳 중 하나다. 많은 사람들이 바라나시, 타지마할 등 인도하면 떠오르는 그러한 곳들을 좋아하지만, 나는 오히려 조용한 분위기의 '심라'와 같은 곳이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다. 앞으로 심라에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만약에 심라에 가게 된다면 그때와 달리 좀 더 여유를 갖고 지내고 싶다. 스캔들 포인트를 천천히 걸으며 길거리에 있는 한적하고 조용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면, 나도 '란초'의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물론 란초가 그 '란초'는 아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