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편견을 딛고 마침내 일어서다
마하비르 싱 포갓은 인도의 레슬링 전국 챔피언이었다. 인도를 정복한 그가 이루지 못했던 것은 단 하나, 올림픽 등의 세계대회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한 것이었다.
결국 은퇴한 그는, 아들을 낳아 그가 이루지 못한 꿈을 완성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그의 부인은 딸만 연달아 셋이나 낳는다.
망연자실한 그는 결국 아들을 낳아 레슬링 금메달을 따도록 만들겠다는 꿈을 포기한다.
그러던 어느 날, 흠씬 두들겨 맞은 동네의 아이들이 마하비르의 집으로 찾아온다.
그는 함께 살고 있던 딸들의 사촌 오빠인 '옴카르'를 혼낸다. 하지만 옴카르는 자신이 때린 것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동네 아이들을 팬 것은, 그의 딸인 '기타'와 '바비타'였다. 딸들은 동네 아이들이 계속 놀려서 때렸다고 말했다.
마하비르는 남자아이들을 때린 딸들을 보고 갑자기 결심한다.
사내든 계집이든 이기면 장땡 아닌가...
그는 기타와 바비타가 자신의 레슬링 혈통을 이어받았다며, 이제부터는 가사일을 시키지 않고 레슬링 선수로 키우기로 결심한다.
그 이후로 기타와 바비타는 아버지와 함께 '지옥훈련'을 시작한다.
전직 레슬링 선수였던 ‘마하비르 싱 포갓(아미르 칸)’은 아버지의 반대로 금메달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레슬링을 포기한다. 아들을 통해 꿈을 이루겠다는 생각은 내리 딸만 넷이 태어나면서 좌절된다. 그러던 어느 날, 두 딸이 또래 남자아이들을 신나게 때린 모습에서 잠재력을 발견하고 레슬링 특훈에 돌입한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조롱에도 불구하고 첫째 기타(파티마 사나 셰이크)와 둘째 바비타(산야 말호트라)는 아버지의 훈련 속에 재능을 발휘, 승승장구 승리를 거두며 국가대표 레슬러로까지 성장해 마침내 국제대회에 출전하는데...(구글 영화 설명)
2016년에 개봉한 인도영화 '당갈'은 실제 인물인 마하비르 싱 포갓과 그의 딸인 기타와 바비타를 주인공으로 한 실화 기반의 영화다. 인도 영화로는 드물게 '스포츠'를 소재로 삼은 영화이며, 당시 인도에서 가장 흥행한, 성공한 영화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당갈은 전형적인 '국뽕' 영화이다. 인도의 여성 레슬러인 '기타'가 결국 국제 대회에서 이기고 금메달을 위해 노력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진부한 스토리다. 우리나라의 영화와 비교하자면, 대표적인 '국뽕' 영화인 <국가대표> 정도가 있을 것이다.
영화 <국가대표>는 '스키점프'를 소재로 한 실화 기반의 영화다. <국가대표>의 특징은 '열등함'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스키점프 국가대표들은 다들 국가대표를 하기에 많이 부족하다. 스키점프를 처음부터 배웠던 선수들도 아니었고, '웨이터'나 '고깃집 알바' 등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스키점프 국가대표'를 하기에는 열등한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들은 스키점프 국가대표가 됐고, 국위선양을 하는 데에 성공한다.
영화 <당갈> 역시 '열등함'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다만, <국가대표>의 '열등함'과는 다소 다르다. 그것은 바로 '여성'으로서의 '열등함'이다. 인도는 여성 인권에 대한 의식이 상대적으로 낮은 나라다. 인도의 여성은 가사일을 해야만 하고, 결혼을 통해 비로소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열등한' 존재다. 여성 레슬러인 기타와 바비타는 레슬링을 하면서도 온갖 편견에 시달린다. 여자가 무슨 레슬링을 하느냐는 핀잔부터, 집에서 요리나 하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레슬링 '실력'만은 '월등'했던 기타와 바비타는, 묵묵히 레슬링 선수에 도전한다.
열심히 레슬링 훈련을 하던 기타와 바비타는, 그들의 친구인 '수니타'의 결혼식에 아버지 몰래 참석했지만, 결국 아버지에게 들켜 크게 혼이 난다.
신은 절대 그 누구에게도 그런 아버지는 주시지 않을 거야
강압적으로 레슬링을 시키고, 머리를 자르도록 명령하고, 겨우 친구의 결혼식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혼이 나는 아버지에게 딸들은 반발한다. 그는 친구인 수니따에게 아버지에 대한 온갖 불평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수니타는 오히려 그들의 말에 동조하지 않았고, 의외의 말을 꺼낸다.
나도 그런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어
적어도 너희 아버지는 너희를 생각하시잖아. 하지만 우리 현실은 여자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요리와 청소를 가르치고 허드레 가사일을 할 뿐이야. 그러다 14살이 되면 생전 본 적도 없는 남자에게 혼인을 시켜버려. 여자는 그게 다야.
그래도 적어도 너희 아버지는 너희를 자식으로 생각하고 온 세상과 싸우면서 그들의 비웃음을 묵묵히 참고 있잖아. 왜겠어? 너희 둘은 미래와 삶을 가질 수 있도록 하려고.
마하비르 싱 포갓은 본래부터 가부장적인 아버지였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도, 그는 반드시 아들을 낳아 레슬링 선수로 키우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아들'만이 목표였고, '딸'을 낳는 것은 그의 계획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딸이 태어나자, 그는 갖고 있던 꿈을 쉽게 포기해버린다.
딸들을 레슬링 선수로 기르겠다는 목표를 세웠을 때에도, 그는 여전히 가부장적이다. 비록 '여자도 레슬링을 할 수 있다'며 본래 갖고 있던 생각에서 벗어났지만, 그는 딸들의 의사도 묻지 않고 딸들을 강압적으로 훈련시킨다. 딸들이 훈련에 집중하지 못하자, 그들의 머리를 강제로 잘라버리기도 한다.
이러한 장면만 본다면, 많은 사람들이 반문이 생길 것이다. "왜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강요하지?"라는 의문부터, "왜 딸들에게 운동하는 것을 강요하지?" 등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모습에 반감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아버지의 행동을 '가부장적'이라고 생각하기 전에, 인도에 만연한 '여성 차별'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9세기와 20세기 초 인도에서의 여성 교육은 남편을 위한 좋은 반려자를 만들려는 이데올로기로부터 시작되었다. 확실히 교육의 목적이 여성을 남성과 평등하게 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하고 있다. 브라만교의 카스트 제도상에서 여성들은 설사 자신들이 상위 브라만 계급 출신이어도 천민 수드라와 같은 정도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이러한 역사적 전통적 사실에 근거하여 여성의 지위는 종속적이고 하녀와 같다. 그래서 여성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다. 여성은 집안을 대표할 수 없다. 부인의 영향력이 커도 부인이 남편을 앞서서 나서는 일은 없다. 순종적인 아내가 이로운 동반자라면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나 과부 또는 관능적인 여성은 파괴적이고 위험한 존재이다. 또한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어머니는 자애로운 존재이지만 자유성과 독립성을 지닌 여성은 강력하면서도 위험한 존재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강위달, 이거룡, 2019)
인도에서 그동안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였다. 여성은 천민 수드라와 같은 지위를 가진 존재였으며, 오직 집안의 결혼만을 위해, 그리고 집안일을 위한 존재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부장적'이었던 마하비르가 그의 딸을 위해 할 수 있었던 '유일한' 행동은 '레슬링'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비록 강압적이고, 그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는 목표가 있었지만, 그에 있어 더 크고 중요한 목표는 '딸들이 그들의 삶과 미래를 갖게 하는 것'이었다. 즉, 레슬링을 시키기 위한 그의 강압적이고 가부장적인 행동은 비판받을 여지가 있으나, 딸들이 주체적인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 내린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처음으로 남자들이 참가하는 레슬링 대회에 나선 '기타'는 상대를 고를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게 된다. 그녀는 의외로 가장 강해 보이는 상대를 고른다.
둘이 링에 오르자, 심판은 남자 선수에게 "여자니까 살살해"라고 말한다.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녀는 남자 레슬링 대회에서 여자 선수에게 주어진 '특권'을 거부한다. 그녀는 여자가 레슬링을 하는 것에 대한 편견과, 여자가 어떻게 남자를 이기냐는 편견과 정면으로 맞서 싸운다. 그리고 그녀는 하나둘씩 남자 선수들을 격파하면서 세상의 편견을 깨뜨리는 위대한 도전을 시작한다.
현대에 들어와서 인도의 '여성의 지위'는 그 전보다 많이 나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여성들은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성폭력 등 폭력에 대해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힌두 근본주의를 추구하는 나렌드라 모디 정부가 집권한 이후로, 여성을 기본적으로 하대하고 차별하는 힌두 고유의 문화 역시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영화 <당갈>은 비록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강압적인 가르침'이라는 한계가 있음에도 충분히 '위대한 도전'이라 불릴 수 있는 영화다. 인도의 사회문화적 배경과 여성의 전통적인 지위를 고려하면, 남성들의 편견을 딛고 활약하는 여성 레슬러의 이야기는 비록 '영화'에 불과할지라도, 앞으로 인도 내의 여성 지위를 향상하는 데 있어 더욱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중요한 '계단'이 될 것이다.
끝으로, 인턴을 하던 시절에 '당갈'의 내용이 담긴 영상을 편집한 적이 있다. 물론 편집에만 참여한 영상이지만, 직접 당갈을 잠깐이나마 즐기고 싶다면, 한 번 보는 것을 추천한다.
참고 문헌 : 강위달, 이거룡. 인도의 집단 성폭행 사건들과 지역적 특성의 연관성(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