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권(女權)의 변화를 위한 작은 움직임
더 큰 차를 주지 않으면 결혼하지 않겠대...
인도의 한 결혼식장에 하객으로 참석한 아난야(알리아 바트). 남자 친구 친척의 결혼식이라 그런지 긴장한 듯하다. 분위기에 잘 적응해 결혼식을 즐기고 있는 도중, 갑자기 문제가 생긴다.
신랑 측에서 신부가 '결혼 지참금'으로 준 차가 너무 작아 결혼을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신부 측에서는 돈까지 빌리면서 차를 마련했지만, 신랑은 만족하지 못했고 더 큰 차를 주지 않으면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때, 갑자기 아난야가 나선다. 할 말은 하는 성격인 아난야는 자신과 관련된 결혼식이 아님에도 직접 나서 신랑에게 말을 하기로 결심한다.
아난야는 신랑에게 다짜고짜 '한 달에 얼마를 버는지' 물어본다. 당황한 신랑은 이내 자신의 월급을 말하고, 아난야는 '겨우 그 돈을 받으면서 왜 이렇게 성대한 결혼식을 치러야만 하는지'에 대해 물어본다.
난 남자잖아!
정말? 그래서?
자신은 남자이니까 자동차 등의 결혼 지참금을 받을 수 있다는 당당한 신랑의 말에, 아난야는 "그래서 뭐?"라는 식으로 되받아친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신랑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인도 영화 '투 스테이츠(2 states)'는 2014년에 개봉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 했지만, 글쓴이가 재미있게 본 인도 영화 중 TOP3에 꼽힐 정도로 잘 만든 영화다.
대학에서 만난 크리쉬와 아난야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다. 두 사람은 결혼하고 싶어 하지만 북인도와 남인도의 서로 다른 문화권에 자란 그들에게는 부모님의 동의가 필요하다. 서로의 부모님을 만난 자리에서 예상대로 강한 반대에 부딪히는 두 사람. 과연 이 둘은 사랑을 지켜낼 수 있을까?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세 얼간이> 작가가 쓴 작품으로 따뜻한 사랑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2014년 제18회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결혼이 하고 싶지만 서로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각자의 부모님들이 반대하는 스토리, 어디서 많이 본 내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한국에도 거의 비슷한 내용의 영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화 <위험한 상견례>는 전라도 출신의 남자와 경상도 출신의 여자가 결혼하기 위해 겪게 되는 험난한 과정을 그린 코미디 영화다. 시기상으로 볼 때, 이 영화가 먼저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투 스테이츠>가 이 영화의 스토리를 참고하고 만들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워낙 클리셰적인 스토리다.
'아난야'는 남인도 타밀 출신의 여자다. 그녀는 할 말은 꼭 하는 성격이다. 공부를 하기 위해 멀리 북인도까지 왔지만, 그녀는 전혀 기죽지 않는다. 크리쉬와 처음 밥을 먹으러 간 날, 앉자마자 곧장 맥주를 시킨다. 맥주를 시키자, 가게 사장을 비롯한 크리쉬는 당황한다. 그들이 밥을 먹었던 식당이 위치한 '구자라트' 지역은 '마하트마 간디'의 고향으로, '금주의 땅'으로도 불리는 보수적인 지역이기 때문이었다.
간디가 맥주 먹는 것에 반대한 적 있어?
그녀는 '간디가 직접 맥주를 마시는 것에 반대한 적이 있냐'는 식으로 맞대응한다. 술을 마시는 것에 보수적인, 특히 그중에서도 여성이 밖에서 술을 마시는 것에 보수적인 인도의 문화에 반발한 것이다. 이에 크리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우여곡절 끝에 둘은 연애를 시작하게 되고, 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에도 성공해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 한편, 그들에게는 큰 장벽이 하나 있었다. 바로 '지역'이었다. 크리쉬의 출신 지역인 '펀잡'과 아난야의 출신 지역인 '타밀'은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큰 곳이다. 특히, 인도에서는 집안 간의 중매를 통해 결혼을 하는 문화와, 혈통과 지역을 중시하는 경향이 보편화돼 있다. 이러한 이유로 '자유로운 연애'를 통해 결혼을 하려는 두 사람이 양가의 부모님에게 곱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크리쉬의 부모님은 '우리 소중한 아들을 여우 같은 타밀 출신 여자에게 넘길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아난야의 부모님 역시 '놀기만 좋아하는 펀잡 출신 남자에게 우리 딸을 넘길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양가 부모님을 비롯한 집안의 갈등은 쉽게 좁혀지지 못한 것이다.
지역을 이유로 결혼을 반대하는 이 모습을 보면, 영화 <위험한 상견례>의 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전라도라는 이유로, 혹은 경상도라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하는 집안. 단순히 태어난 곳이 전라도이고 경상도일 뿐이지만 결혼을 반대해야만 할 정도로 심각한 이유인 '지역'의 차이. 이제 지역감정은 거의 사라지고 없기 때문에 이런 일은 우리나라에서 더 이상 발생하지 않지만, 얼마 전까지도 각 지역을 향한 혐오가 있었기 때문에 공감이 되는 부분이었다.
다시 결혼식 장면으로 돌아와 보자. 아난야는 '차가 작다'는 이유로 결혼을 거부하는 신랑에게, "중매결혼이 아니면 네가 그녀를 만날 수나 있을 거라고 생각해?"라고 말한다. 돈도 많이 벌지 못하고, 키도 작고 뚱뚱한 신랑에게 왜 신부가 빚을 지고 차를 사서라도 가야만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진 것이다.
왜 신부는 신랑에게 빚을 지어가면서까지 차를 선물해야 했던 것일까? 그리고 신랑이 이런 식으로 횡포를 부림에도 신부 측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까? 답은 '결혼 지참금'이라는 인도의 문화에 있다.
지참금(持參金)은 신부가 혼인할 때 친정에서 가지고 가는 돈이나 물건을 뜻한다. 친정 재산에 대한 사전 유산 상속이나 아내의 부양을 위한 목적이 있다. 특히 인도 카스트 집단 사회에서 지참금 관습이 유명한데, 신랑이 고등교육을 받는데 들어간 비용과 노력을 신부 측에서 함께 분담하는 것을 뜻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적 억압을 상징하는 관습으로 “악의 지참금”(Dowry Evil)로 불린다.(출처 : 위키 백과)
지참금(Dowry) 제도는 현대 인도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결혼 문화의 일종이다. 쉽게 말하면, 결혼을 할 때 신부가 신랑에게 주는 돈 혹은 물건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혼수'라는 문화가 있지만 혼수는 신랑과 신부 쪽에서 함께 준비하는 것인 반면, 지참금의 경우에는 일방적으로 신부가 부담하게 된다. 특히, 지참금은 '악의 지참금'이라고도 불리는데,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지참금이 적다는 이유로 결혼을 거부하거나, 심한 경우 신랑이 신부를 살해하기도 하는 '지참금 살해'도 발생하기도 한다.
인도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지참금 살해’로 집계한 것만 보더라도 1983년에 427건이던 것이 1997년에는 6,006건으로 무려 14배나 늘어났으며, 지참금에 관련된 강력범죄와 자살 등도 매년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정채성, 2007)
카스트 내혼제의 원칙에 따라 행해지는 혼인은 원칙적으로 동등혼이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여자를 주는 쪽 집단이 여자를 받는 쪽 집단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간주되며, 이러한 불평등 관계는 혼인이 지속되는 동안 각종 의례 때마다 신부 쪽에서 신랑 쪽으로 일방적으로 건네지는 선물들을 통해 물질적으로 표현된다.(정채성, 2007)
지참금 제도는 여자를 주는 쪽 집안, 즉 신부 측이 여자를 받는 쪽 집안, 신랑 측에 비해 열등한 집단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발생한다. 신랑이 고등교육을 받거나 '우등'하게 성장하는 데 들어간 비용을 '열등'한 신부 쪽이 부담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문화에서 볼 때, 이러한 지참금 문화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문화이다. 왜 남자를 기르는 데 들어간 비용을 여자가 부담해야 되는지에 대해 논리적, 혹은 이성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다.
힌두의 결혼식은 가족-친족 집단의 지위와 관계망을 공개적으로 과시하고 확인하는 중요한 기회이다. 지참금은 자기 집단의 사회적 지위와 명예, 위신 등을 계산하고 드러내는 중요한 수단일 뿐 아니라, 동시에 기존의 위계서열을 새롭게 평가-판단하고 재해석할 기회를 제공하는 첨예한 경쟁과 협상의 장이기도 하다.(정채성, 2007)
한편, 지참금은 인도 힌두의 전통적인 문화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여성에 대한 폭력적인 억압을 상징하는 관습'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인도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혼인'의 무게부터 카스트 제도까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이 존재하는 고유의 문화인 것이다. 특히, 지참금은 혼인을 통해 맺어지는 양가의 관계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본래 열등하게 여겨지는 여성과 여성의 집안이 그나마 동등하게, 혹은 덜 열등하게 인식될 수 있는 기회로도 작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지참금이 전통문화임에도 불구하고, '지참금 살해' 등 끔찍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인도 내의 여성 단체에서는 1970년대부터 꾸준히 '지참금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지참금이 힌두 사회에 존재하는 남성 중심의 강력한 가부장제와 남녀 불평등이 지참금 문제의 본질이라고 인식하며(정채성, 2007), 인도 여성들의 권리 신장을 위해서라도 지참금 자체가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꾸준한 반대 운동에도 여전히 '지참금'이 '전통'이자 '문화'라는 이유로 당연시되는 인도 결혼 문화에서, 아난야는 영화를 통해 뼈가 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왜 신부가 신랑의 차를 사줘야 하는지, 그리고 신랑은 한 푼도 없으면서 무슨 자격으로 돈을 받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할 말은 한다'는 성격을 가진 극 중의 아난야는 역사가 오래된 인도의 전통 문화인 지참금 제도에 노골적으로 반기를 드는 것이다.
결혼 장면 외에도 영화 <투 스테이츠>는 인도의 결혼 문화에 관해 노골적으로, 때로는 은밀하게 비판하고 있다. 신부가 빚을 지면서까지 신랑에게 돈을 줘야 하는 지참금 문화부터, 자유연애가 아닌 중매결혼만을 인정하고 집안이나 지역이 다르면 반대부터 하고 보는 것을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마지막 장면을 통해서 이들이 어떻게 화합해야 하는지, 그리고 오래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될 것인지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끝으로, 영화 '투 스테이츠'의 결혼식 장면을 첨부한다. 꼭 보는 것을 추천한다.
참고 문헌 : 힌두 지참금 관습의 구조적 성격(정채성, 200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