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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샬 Apr 18. 2020

피자 한 조각의 가치

인도에서 뺨을 맞는 아이들을 보다

오직 나만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나는 애써 그들을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델리대학교 앞에 있던 강아지들. 인도에는 떠돌이 개들이 많다.


2016년 여름, 인도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시절이었다. 최고 기온이 51도를 기록할 정도로 정말 덥고 짜증나는 나날이었다. 인도의 델리대학교에서 오후 2시에 모든 강의가 끝나면 우리는 그나마 저렴한 길거리 음식점으로 향하곤 했다. 하지만 그날따라 지독한 향신료 냄새와 음식이 나오기가 무섭게 달려드는 파리 떼에 질렸던 우리는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근처 피자 식당으로 향했다. 10분만 걸어도 온몸에 땀이 비오듯 쏟아지던 하루였다.


주로 먹던 길거리 음식 중 하나인 초우멘(Chow mein)


우리가 방문했던 Cafeteria&co / dineout


피자집의 이름은 ‘Cafeteria&co’였다. 정확히 말하면 피자 전문 식당은 아니었고, 파스타 등 서양음식을 팔던 '캐주얼 다이닝' 형식의 식당으로 기억하고 있다.


식당의 외관, 굉장히 큰 규모의 식당이었다 /tripadvisor
문제의 식당 입구. 계단 앞에 경비원이 앉아 있었고, 아이들은 왼쪽 골목에 있었다 / tripadvisor

입구에는 문 앞 의자에 앉아 졸고 있는, 빨래한 지 한참 지난 것 같은 누렇고도 파란 셔츠를 입고 있는 경비원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때로 얼룩지고 목이 다 늘어진 셔츠를 입고 있는 한 어린 남매가 서 있었다. 누나는 8살 정도로 보였고, 남동생은 대여섯 살로 보였다. 자매는 우리가 입구에 들어서기 전부터 심상치 않은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마치 우리가 들어가기를 기다린다는 듯이. 그것은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과 같았다.


자매는 왠지 수상쩍었다. 인도는 소매치기가 정말 많은 나라이기 때문이었다. 비록 나는 4개월 동안 살면서 한 번도 소매치기를 당한 적이 없고, 소매치기 시도를 당한 적도 없지만(있을지도 모른다) 주변 사람들 중에 소매치기를 당한 사람들이 매우 많다. 특히, 유럽에서는 눈치도 채지 못하게 몰래 가져가는 소매치기가 많은 반면, 인도는 사람이 떡하니 보고 있는 앞에서도 무작정 소매치기를 하고 도망가는 형태가 많았다. 당시에도 수업을 듣는 학교 앞에서 스마트폰을 소매치기당할 뻔 했던 친구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한창 경계심이 높을 때였다. 한편, 인도에는 피자집 등의 식당 앞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었다. 왠지 경계가 됐지만, ‘어차피 나만 조심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별 고민 없이 식당에 들어갔다.


Cafeteria&co의 페퍼로니 피자. 다시 사진을 봐도 정말 맛있게 생겼다.

피자는 정말 맛있었다. 오랜만에 먹은 서양식과 시원한 콜라는 우리에게 큰 축복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과식으로 결국 페퍼로니 피자 2조각이 남았다. 더 먹을까 고민했지만 어차피 저녁에 먹을 것도 없으니 포장해달라고 했다. 작은 박스에 피자 2조각을 담고, 눅눅한 비닐봉지에 담아 밖으로 나왔다.




출입구로 나오는 그 순간, 누군가가 내 손에 있던 비닐봉지를 확 낚아채 뛰어갔다. 아까 봤던 남매였다. 찰나의 순간이었고, 음식을 뺏긴 적도 처음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따라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음식을 뺏겼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는 졸고 있던 그 경비원의 어깨를 툭툭 쳤다. 따로 말할 새도 없이 뛰고 있는 아이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경비원은 바닥에 대충 던져놓았던 누더기 수준의 모자를 급하게 쓰고 뛰어갔다. 이내 순식간에 자매를 잡아 데려온 그는 봉지를 우리에게 다시 돌려줬다. 그리고 경비원은 남매 중 누나의 옷깃을 세게 움켜쥔 뒤, 뺨을 세게 후려쳤다. 순식간에 뺨을 맞은 남매는 뺨을 움켜잡고 어둠이 가득한 골목으로 뛰어 들어갔다.


우리는 그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피자를 되찾았다는 안도감도 있었지만, 아이들의 뺨을 때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직접 나서서 경비원에게 아이들을 때리지 말라고 할 수 있는 용기가 없었다. 심지어 경비원은 마치 큰일을 해냈다는 듯이 의기양양했다. 우리는 경비원에게 피자를 되찾아줘 고맙다는 말을 하고, 서둘러 가까이에 있는 택시를 잡아 집으로 향했다. 그 날, 나는 왠지 모르게 가져온 피자를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인도의 '레(Leh)' 도시에서 봤던 순진하고 예쁜 아이들


지금도 가끔씩 피자를 먹을 때면 뺨을 맞은 아이들이 생각난다. 남매는 아직도 피자집 주위를 서성거리며 사람들의 음식을 낚아챌 궁리를 하고 있을 것이다. 만약 그 상황이 다시 반복된다면, 우리는 선뜻 피자를 줄 수 있을까? 그리고 아이들의 뺨을 때린 경비원에게 큰소리칠 수 있을까? 나는 가끔 그 상황을 다시 머릿속에서 그려본다. 상상 속의 나는 경비원에게 말한다. 음식을 훔치는 것을 타이를 수는 있어도, 고작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의 뺨을 때리는 것은 비겁한 행위라고. 다시는 나만 생각하는 비겁한 사람이 되지 않기로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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