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샬 Apr 20. 2020

인도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곳

나에게는 타지마할도, 갠지스 강도 아니었다

어디가 가장 좋았어?


레(Leh) 궁전 앞에 있던 어느 언덕에서


인도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하면 꼭 들어보는 질문이다. 인도를 돌아다니면서 어디가 가장 좋았냐고 묻는 질문. 


사실 나는 인도에서 많은 곳을 돌아다니지는 못했다. 2013년 초에 방문했던 인도는, 겨우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북인도의 주요 관광 코스를 한 바퀴 돈 것이 전부였다. 2017년에 방문한 인도는, 4달 동안 머물렀지만 대부분이 델리 대학교에서 힌디어 어학 수업을 받았던 시간이었다.


2013년 타지마할 앞에서 찍은 사진. 사실 이 사진은 사기꾼들에게 속아서 찍은 부끄러운 사진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질문을 할 때 보통 생각하는 곳은 '타지마할', 그리고 '갠지스 강'과 같이 인도의 랜드마크로 여겨지는 곳들일 것이다. 사실 당연하다. 나도 프랑스를 갔다 온 사람이라고 하면 '에펠탑'을 떠올릴 것이고, '루브르 박물관'을 떠올렸을 것이다.


물론 랜드마크라 불리는 곳들이 별로였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타지마할에서는 정말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거대하고 웅장한, 그리고 오래된 역사의 현장을 보고 감탄했으며,  그 유명한 갠지스 강에서는, 한쪽에서는 화장(火葬) 의식을 하며 시신을 불에 태우고, 한쪽에서는 성스러운 물에 목욕을 하며 기도를 드리는 광경을 보며 '삶과 죽음'을 동시에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기억에 남는 기준은 약간 달랐다. 특히 나는 '남들이 경험해보기 어려운' 것들을 했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았다. 인도 여행에 갔을 때 가장 많이 보는 광경은 '노란색' 프렌즈 가이드북을 들고 돌아다니는 장면이다. '노란색' 프렌즈 가이드북은 인도에 여행을 오는 사람들의 필독 도서라고도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책이다. 나 역시도 2013년에 인도를 방문했을 때 노란색 가이드북을 가져갔으며, 노란색 가이드북을 들고 있으면 한국 사람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들고 다녔다.


똑같은 가이드북을 들고 다녔을 경우, 결과는 뻔하다. 아무리 개인 코스를 짠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같은 코스를 돌게 되고, 같은 음식점을 방문하게 된다. 인도의 경우, 사실 굳이 있을 필요가 없는 '빠하르 간즈'를 베이스캠프로 정하고, 굳이 갈 필요가 없는 '한국인 여행 카페'를 주로 방문하게 된다. 가이드북에 인도 음식을 파는 식당이라고 해서 들어가 보면, 메뉴에는 한국어가 쓰여있고, 주인은 '맥주 한 잔?'을 외친다. 이 곳이 인도인지, 이태원인지도 헷갈릴 정도다.


이렇게 깐깐한 나의 기준을 고려해보면,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라다크 지역에 위치한 '투르툭' 마을이었다.




인도에서 가장 조용한 곳일지도 모르는 곳, '투르툭' 마을


누브라 밸리의 '투르툭' 마을


투르툭(Turtuk) 마을은 인도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마을 중 하나다. 2010년 최초로 외국인에게 개방된 마을로, 심지어 1974년 이전까지는 인도가 아닌 파키스탄의 땅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직도 관광객이 많이 오지 않으며, 유명한 관광지가 되기 위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곳이다. 숙소도 몇 개 없고, 식당도 거의 없으며, 따뜻한 물도 나오지 않는다. 핸드폰은 아예 터지지도 않는다. 이 곳에 오면 '진정한 고립'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머물렀던 호텔 투르툭. 사진을 보면 우리가 묵는 곳인데도 아직 3층이 미완성이다.


사실 당시 남긴 사진조차도 얼마 없다. 다른 지역에서, 예를 들어 타지마할이나 델리의 '랄 낄라'를 갔을 때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대던 것과는 달리, 이 곳에는 셔터를 누르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다. 무슬림식 예배를 드리는 암송 소리만이 울려 퍼지는 조용한 마을, 길거리에는 사람도 거의 돌아다니지 않아 정적이 흐르는 마을에서 왠지 사진을 찍어대는 것은 실례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투르툭 마을에서 만난 순수한 아이들


투르툭에서 우리가 한 것이라곤, 재료도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그곳에서 겨우 계란을 구해 직접 부쳐먹었던 것, 아무 볼 것도 없는 투르툭의 길거리를 산책하면서 순수한 아이들을 만났던 것, 그리고 아무 불빛도 없고 칠흑같이 어두웠던 깜깜한 밤에 다 함께 옥상으로 올라가 쏟아지는 별들을 바라본 것이 전부였다.


이처럼 사소한 경험이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이유는, 남들도 다 해보는, 그리고 남들을 따라 하는 경험이 아니라 나만 해볼 수 있는, 혹은 나를 포함해 소수만이 해본 특별한 경험이어서다. 특히, 시끄러움과 복잡함의 대명사로 불리는 인도에서 '조용함'과 '차분함'이라는 아이러니를 경험할 수 있는 곳, 복잡했던 나의 머리를 아무 생각도 안 나게끔 깔끔하게 비워준 곳, '투르툭'은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그런 곳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