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샬 Apr 20. 2020

새빨간 거짓말

인도의 거짓말은 '비즈니스 수법'일뿐이다

그건 인도인에게만 받는 가격이야(Indian price)


찌는 듯이 더웠던 인도의 여름이었다. 델리의 관광지 중 하나인 '아그라센 끼 바올리'를 구경하고, '코넛 플레이스'에서 친구들과 만나 저녁을 먹을 예정이었다. 사실 거리가 그렇게 멀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뜨거운 날씨였다. 가만히만 있어도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이 흘렀고, 길거리에 나서면 마치 건식 사우나에 온 것처럼 숨이 턱 막혔다. 결국, 아그라센 끼 바올리 앞에 있던 여러 오토 릭샤(오토바이 릭샤) 중 하나를 타기로 했다.


영화 'PK'에도 나왔던 아그라센 끼 바올리


인도에서 릭샤를 타려면 흥정은 필수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가는 곳까지의 거리를 대충 가늠해놓는 것이 중요하다. 가끔씩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를 때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구글맵을 통해서 미리 거리를 가늠해놓았고, 이를 통해 내가 계산한 릭샤 가격은 대략 50루피(한화로 약 1000원)이었다. 아그라센 끼 바올리 앞에는 수많은 릭샤가 있었고, 나는 릭샤 안에 앉아 있는 기사들에게 가격을 물어보고 흥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사들이 목적지를 듣고는 200루피를 불렀다. 나는 이에 굴하지 않고 50루피를 불렀지만 기사들은 코웃음을 쳤다.


사람이 몰리는 곳이면 어디든지 정차하고 있는 인도의 오토 릭샤. 대부분이 다 같은 디자인을 하고 있다.


그때, 갑자기 한 기사가 큰 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는 나에게 릭샤에 타라는 손짓을 했다. 50루피에 갈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노 프라블럼(No problem)'이라고 말한다. 다른 기사들과 달리 자신 있는 목소리에 왠지 의심이 갔지만, 크게 문제는 없겠거니 생각하고 일단 릭샤에 탔다. 거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굉장히 가까웠다. 한 5분에서 10분 정도 간 것 같았다. 주머니에서 50루피를 꺼내고 돈을 낼 준비를 한다. 릭샤가 멈추자, 나는 그에게 50루피를 내밀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돌변했다. "200루피야."


나는 왜 200루피인지에 대해서 항의했다. 분명 네가 50루피라고 하지 않았냐, 왜 아까랑 말이 다르냐고 물었다. 이에 그는 'Indian price'라고 말했다. 50루피는 인도인들에게 받는 가격이고, 너는 외국인이고 관광객이니 200루피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나는 화를 내며 50루피를 내밀었지만 그 역시 절대 지려하지 않는 눈빛이었다. 결국,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에게 50루피를 던지고 릭샤를 박차고 나왔다.


'여행자의 거리'인 빠하르 간즈 골목. 많은 초보 여행자가 몰리는 이곳에서는 유독 속임수가 심하다.


인도에서 겪는 거짓말은 대개 말도 안 되고 터무니없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상점에서 보통 100루피의 물건이 있다고 치면, 1000루피를 부르는 식이다. 무려 열 배가 차이나는 가격이지만, 그들은 일단 질러놓고 본다.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면 1000루피를 버는 것이고, 만약에 속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도의 '거짓말', 특히 릭샤나 상점에서 많이 겪게 되는 속임수는 그들에게는 마치 '비즈니스 수법'인 것 같았다. 인도와 관련된 한 책에서 본 내용에 따르면, 돈이 오고 가는 거래에 있어 이러한 속임수는, 비즈니스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크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처음에 이러한 거짓말을 겪었을 때에는 굉장히 화가 났다. 인도 사람들은 외국인을, 혹은 관광객을 굉장히 만만하게 보거나, 무시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속임수를 통해 돈을 벌면 그만이지만, 가뜩이나 돈이 없는 여행객들은 피해가 상대적으로 크다. 물론, 돈이 많은 미국인 관광객의 경우, 뻔히 거짓말이 드러나는데도 그냥 물건을 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학생'의 신분이었던 우리는 그렇게 여유롭지 않았고, 그들의 '비즈니스 수법'에 절대로 넘어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어떤 물건을 사거나 릭샤를 타는 일이 생기면, 미리 가격을 조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른다면 미련 없이 돌아서는 식이었다. 만약 그들이 물건을 팔고 싶어 하는 생각이 간절하면, 보통은 우리를 잡고 가격을 정상적으로 불렀기 때문에 이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인도의 한 전철 플랫폼 안에 앉아 쉬고 있는 원숭이들


델리대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우리가 지내던 숙소로 가기 위해서는 보통 전철을 타는 경우가 많았다. 전철에서 내려서 우리 숙소로 가기 위해서는 릭샤를 타야만 했다. 걸어가기에는 애매한 거리였기 때문이었다. 숙소에 가기 위해 수없이 릭샤를 탔기 때문에, 가장 합리적인 가격은 '50루피'임을 머릿속에 각인시키고 있었다. 역에서 나가자, 수많은 릭샤꾼들이 나를 손짓하며 부른다. 하도 많이 릭샤를 탔기 때문에 그들은 이미 내가 어디에 사는지도 알고 있었다. 나는 그중 가장 앞에 있던 릭샤에 탔다.


릭샤 안에서 찍은 사진


"라즈 만디르 앞으로 가주세요. 얼마예요?"

나는 자연스럽게 목적지를 말하고 앉았다. 내가 탄 릭샤의 기사는 나를 쓱 훑어보더니, 가격을 불렀다.

"200루피야."

순간, 나는 큰 웃음소리를 내며 빵 터졌다. 이미 4개월이나 인도에서 살았던 나에게, 그런 말도 안 되는, 뻔뻔한 거짓말은 통할 리가 없었다. 내가 이미 그의 '비즈니스 수법'을 알고 있었고, 그 거짓말이 너무 뻔했기 때문에 웃음이 터진 것이었다. 그러자, 그도 함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전철역 앞에 있는 많은 릭샤 기사들도 함께 웃었다. 그래,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넘기자. 나에게 인도의 거짓말은 '고작' 비즈니스 수법에 불과했다. 나에게는 악의가 없을 거라고 믿고 더 이상 화를 내지 않기로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도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곳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