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를 놓아주기 위해 열심히 다리를 구르다
그의 다리는 수십 년의 세월을 증명하듯 단단했다. 뜨거웠던 인도의 여름, 자전거 인력거꾼인 그는 건장한 성인 남성 4명을 태우고 페달을 구르기 시작했다. 페달을 구르는 그의 다리는 앙상했다. 볼품없는 외양에 비해 다리는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성인 1명을 태우든, 여러 명을 태우든 요금의 차이는 크지 않다. 하지만 흥정에 따라 가격이 책정되는 자전거 인력거, 즉 릭샤의 세계에서는 가격을 저렴하게 부르는 대신에 사람을 많이 태워 팁을 받는 것이 더욱 유리하다. 그는 릭샤를 나눠서 타려던 우리를 황급히 불러 그의 릭샤에 태웠다.
그는 8명의 자녀가 있는 대가족의 가장(家長)이었다. 올해로 60세를 맞은 그의 나이에 걸맞게 자전거는 언제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허술했다. 그는 목적지를 향하는 내내 그의 슬픈 가정사를 강조했다. 릭샤를 모는 것은 큰돈이 되지 않지만 수십 년 동안 자전거를 몰아왔던 그는 달리 생계를 유지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바이샤’라고 하는 하층 카스트에 속하는 그는 아버지의 가난을 물려받았으며,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가 돈을 벌지 못한다면, 그의 자녀들 역시 가난을 물려받거나 더욱 극심한 가난에 시달릴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그는 계속해서 그의 아이들을 강조했다. 오로지 아이들을 위해서 자신은 페달을 구른다고 말했다.
인도 힌두교의 경전인 ‘리그베다’에 따르면 태초에 ‘푸루샤’라고 하는 신이 존재했다. 푸루샤의 입에서는 성직자 계급인 브라만, 팔에서는 통치 급인 크샤트리아, 그리고 다리와 발에서는 ‘바이샤’와 ‘수드라’라는 하층 계급이 탄생했다고 한다. 인력거꾼인 그는 고대 신의 ‘다리’에 속하는 하층 계급이자, ‘다리’를 이용해 돈을 버는 노동자였다. 그는 카스트가 폐지된 인도 사회에서 그의 아이들에게 부의 계급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계급의 머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가슴팍까지는 올려주고 싶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노력을 해도 온종일 일해서 겨우 10달러를 벌뿐이었다.
한편, 자신의 계급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쉴 새 없이 다리를 구르는 것은 우리나라 또한 마찬가지이다. 비록 신분제는 없지만, ‘부’의 계급은 분명히 존재하며 오히려 고착화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력은 결과와 반드시 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에서는 노력을 강조하지만 노력 없이도 이미 자본주의의 ‘머리’에 있는 계층이 존재한다. 부모의 직업과 부는 그대로 자녀에게 대물림되고, 이를 유일하게 극복할 수 있는 '사다리'는 끊어진 지 오래다. 쉴 새 없이 다리를 굴러서 그만큼의 대가를 얻을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 대가가 비로소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사다리'가 될 수만 있다면, 우리도 비로소 계급, 혹은 사실상의 '부의 카스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