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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아찌 May 16. 2020

마약김밥

마약김밥처럼 살고 싶다.


115년의 역사를 간직한 우리나라 최초 상설시장인 광장시장은 도심 재래시장의 대명사로 불리며 서울의 손꼽히는 명물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종로구에 위치한 이 곳은 이젠 외국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서울 투어에 코스로 포함시킨 상품이 앞다퉈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태원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외국인을 심심찮게 볼 수 있으니 광장시장은 이제 국제시장으로 거듭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광장시장을 일 년에 서너 번, 그러니까 계절이 바뀔 때마다 빠지지 않고 가곤 한다. 계절마다 주는 운치가 다르고 시장 분위기가 정겨우며, 볼거리 먹거리가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 구경하는 거 자체로 재미가 솔솔 하기 때문이다. 또 다양한 음식 냄새만큼이나 생기 있게 살아가는 진솔한 사람 냄새가 물씬 나고 갈 때마다 삶에 대한 의욕이 생겨 내가 살아있음을 덩달아 느끼게 해 주기에 더욱 좋다.

시장 골목 안을 들어서면 음식점들이 쭈욱 늘어서 있는 진풍경이 펼쳐지는데 해가 저물 무렵 가노라면 휘황찬란한 조명과 어우러져 그것 자체로 흥미로운 볼거리가 되기도 한다. 수십 년 동안 한길을 걸어온 뚝심 있는 구십여 개의 가게들이 모여있는 시장 골목을 가로질러 가다 보면 진열돼 있는 음식이 비슷하여 언뜻 보면 거기서 거긴 거 같지만 만든 이의 손맛과 인생이란 바다의 파고가 다 다를 것이기에 저마다 특색을 가지고 있다. 나는 마치 참새가 된 듯 지나칠 수 없는 방앗간 같은 집에 들리곤 한다. 마약 김밥집이 그곳이다. 처음에 지인 소개로 마약 김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을 때, 이름이 왜 마약이지? 김밥에 진짜 마약 성분이 들어가 있을 리는 만무하고 무슨 특별한 게 있을까 궁금했었다.



막상 가게에 가서 보니 실소가 나올 만큼 보잘것없었다. 손가락 만한 것에 단무지와 당근 시금치가 들어있는데 겉보기에는 흔해빠진 꼬마김밥이었다. 그러나 2인분을 시켜서 먹고서는 그 이유를 알았다. 맛의 중독성.. 누가 말리지 않으면 하염없이 배가 터지도록 먹겠더라는 것. 그래서 이름을 마약이라 이름이 붙여졌구나 싶었다. 주인도 처음부터 마약김밥이라 명하지 않았을 터. 처음엔 꼬마 김밥으로 불렀다가 사람들이 마약처럼 중독성이 있다고 하니 마약김밥이라 칭했을 거라 짐작이 갔다. 아무튼 그날도 그 맛과 분위기에 취해 둘이서 6인분을 게눈 감추듯 먹었고 또 그것도 모자라 각각 2인분씩 포장을 했으니 둘이서 합 10인분을 시킨 셈이다. 3만 원이 지출됐다. 우리 테이블만이 아니라 그 가게를 방문한 대부분 사람들이 그러했다.

이 집은 주인아줌마 혼자 장사하다가 맛이 있기로 소문이 나는 통에 너무 잘 되다 보니 남편과 남동생까지 끌어들여 가게를 운영하게 됐다고 한다. 마약김밥 메뉴 하나로 가문을 바꾼 것이다. 이 마약김밥의 맛의 비결은 간이 배어있는 고슬고슬한 밥과 찍어먹는 겨자소스에 있는데 그건 영업비밀이라 알 수 없으나 일 매출이 평균 300만 원은 한다고 하니 단순 계산으로도 한 달에 적어도 이것저것 경비 제하고서라도 6-7천 만원은 족히 벌고도 남아 보였다. 어떤 대기업 임원들도 부럽지 않은 소득을 자랑한다. 소문으로는 집도 몇 채 샀다는 얘기도 있었다. 입이 쩍 벌어질 만하다. 마약김밥이라는 독특한 브랜드와 이름에 걸맞게 사람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독특한 레시피를 개발했으니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게다가 원조라는 프리미엄에 몇 해 전 모 인기 있는 예능프로그램에도 방송된 이후로는 승승장구를 이어가고 있다.

이같이 마약김밥의 매력은 겉보기에는 작고 볼품없지만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는 것과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문득문득 떠오르게 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김밥도 흉내 낼 수 없는 매력이라 하겠다. 사람도 그런 사람이 있지 않을까? 마약김밥처럼 만나도 만나도 질리지 않는 사람, 떨어져 있으면 문득문득 생각나는 사람, 그 매력에 푹 빠지게 만드는 사람.. 나도 누군가에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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