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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아찌 May 12. 2020

새 식구(햄스터)

햄스터


우리 집에 반가운 새 식구가 생겼다. 햄스터가 그 주인공이다. 생후 2주밖에 안 된 작고 귀여운 하얀 생쥐다. 눈이 초롱초롱하다 하여 '초롱이'란 이름을 막둥이가 지어주었다. 제법 생긴 거와 어울리게 작명을 잘한 거 같다.

내 소싯적 먹고살기 힘든 시절엔 천장에서 날뛰는 쥐들 때문에 잠을 설치기 일쑤였고, 서민들의 식량을 축내는 쥐는 공공의 적이었다. 이런 쥐를 해로운 동물로 지정하고 쥐잡기 전 국민 프로젝트를 시행하기도 했던 웃픈 시절이 있었다. 집집마다 쥐덫과 쥐약은 반드시 구비해야 할 생활필수품이었다. 매일같이 쥐 몇 마리 잡았는지를 자랑삼아 서로 앞다퉈 경쟁을 하기도 했었다. 쥐가 얼마나 흔하고 지천에 깔렸으면 회색을 쥐색이라 했겠는가. 색깔을 동물 이름으로 빗대어 말하는 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꼬리가 긴 회색 쥐를 본 게 언제인가 싶을 만큼 보기 힘든 동물이 됐다.

이처럼 혐오의 상징이었던 쥐새끼를 집에서 반려동물로 분양받아 먹이를 주며 키울 줄이야..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물론 햄스터라는 놈은 보통 쥐랑은 다르게 예쁘긴 하다. 하얀 비단 털에 크기도 작아서 귀엽고 정감이 갔다. 외롭게 한 마리만 가져오면 어떡하냐고 했더니 막내가 웃으며 말했다.

"풋.. 아빠.. 햄스터는 여러 마리 키우는 게 아니래요..'"

알고 보니 쥐는 번식력이 강해서 개체수가 너무 빨리 늘어 감당이 안 되니 한 마리만 키워야 한단다. 그럼 같은 성별을 두 마리 키우면 되지 않겠냐 했더니 이번엔 아내가 나서서 말을 한다.

"여보! 햄스터는 두 마리 키우면 서로 싸우기 때문에 한 마리만 키워야 한다고요!"

이미 나 빼고 가족들이 입양하기 전 햄스터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한 듯 보였다. 그동안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다던 아이들의 요구에 극구 반대하던 아내도 코로나로 개학이 늦어져 심심해하는 막내의 성화에 더 이상 명분이 없어 백기를 들었다. 사실 애들이야 보고 즐기는 것만 할 줄 알지 먹이 주고 청소하고 관리하는 건 아내 몫이다. 아니나 다를까 초롱이 살림살이도 장난이 아니었다. 톱밥은 필수이고 먹이통에 비만관리를 위한 챗바퀴도 있어야 했고 급수대도 필요했다. 거기다가 침실과 욕실은 별도로 꾸며줘야 했다. 사람을 키우는 거와 다를 바 없어 대충 키울 게 아니었다. 이렇게 신경 쓸 게 많으니 아내가 그동안 반려동물 하면 손사래를 치지 않았나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반려동물을 키우는 건 대찬성이었다. 내 어릴 적 기억에도 그랬듯 살아있는 동물과 교감하는 건 아이들 정서상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그러나 아내의 이런 알뜰함과 귀차니즘으로 인해 결혼하고 나서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물론 붕어를 잠깐 키워본 적은 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관상용이었고 상호 교감하는 수준에는 못 미치니 예외로 봐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그런 면에서 불쌍하다. 장난감이나 인형 등 영원히 죽지 않는 것과 거짓 교감을 하고 자랐으니 말이다. 사람은 자고로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생명의 소중함을 알 테니 말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에라도 아이들이 살아있는 동물과 교감할 수 있어 천만다행이라 생각한다.

햄스터는 야행성이라 낮에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막내 놈이 요 녀석을 보기 위해 지켜보고 있다가 자정이 넘어 활동을 하니 막 잠들려고 하는 나를 '아빠' 하고 신이 나서 불러댄다. 작은 생물 하나로 온통 집안 분위기가 달라졌다. 돌이켜보면 20년 전 첫애가 태어났을 때는 멋모르고 좌충우돌하며 정신없이 키웠던 거 같고 둘째 딸은 아토피가 심해서 어릴 적 추억보다는 병원만 쫓아다니며 고생만 했던 기억밖에 없다. 막내는 내 나이 40줄에 한창 바쁠 때 태어나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못 가졌었다. 이제 애들도 거의 다 컸고 부모보다는 친구들과 노는 걸 좋아하는 시기라 아쉬웠는데 집안에 애들을 대신할 수 있는 초롱이가 생겨 적적함을 달랠 수 있으니 그 또한 감사할 일이다.

생명의 크기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평균수명이 2년밖에 안 되는 초롱이를 언제 간 떠나보내야 하는 사별이란 슬픔을 경험할 것이다. 그동안 갖고 놀다가 질리면 쉽게 버리면 되었던 장난감에서는 못 느꼈던 생명의 가치와 소중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래, 다 좋으나 이 나이에 부양할 가족이 하나 더 늘었으니 더 열심히 벌어야 할 판이다. 어차피 평소에 나는 8남매를 두신 아버지의 반타작은 해야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의 건강상의 이유로 그 뜻을 못 이뤄 아쉬웠던 터였는데 자식 같은 식구가 늘었으니 비슷하게나마 뜻을 이룬 셈이다. 나는 저 작은 생물을 건사하기 위해 최소 30분 정도 잠을 줄여야 할 듯하다. 내 어깨가 1g 정도는 무거워졌다. 그런들 어떠랴! 나 닮은 자식 하나 더 생겼다 생각하고 더 열심히 사는 수밖에.. 그나마 일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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