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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아찌 May 17. 2020

라면 예찬

라면을 사랑하는 한 중년의 이야기


'후~ 후루룩~ 하~'

난 어제도 라면을 먹었다. 먹을 게 없어서가 아니라 라면이 먹고 싶어서였다. 다들 몸에 안 좋은 라면을 왜 그리 즐겨 먹냐고 하겠지만 나는 라면이 맛있고 좋다. 라면을 맛있게 끓이려면 봉지에 적혀있는 매뉴얼대로 하면 가장 맛있다고들 하지만 그 정도에 만족할 범생이가 아닐뿐더러 나름 라면 마니아로 자부하는 나로서는 아쉬울 터. 하여, 라면을 접한 지 반세기 정도 된 나만의 라면을 맛있게 끓이는 노하우를 공개할까 한다.

일단 라면은 양은냄비에 끓여야 한다. 걸핏하면 냄비 근성이라고 줏대 없는 사람을 빗대어  폄하하지만 라면 끓일 때만큼은 이만한 요긴한 게 없다. 일단 열전도율이 높아 물이 빨리 끓게도 하지만 끓이고 나서 먹을 때 열을 빨리 식힐 수 있기 때문에 최적이라 하겠다. 거기에 꼭 냄비 뚜껑에 덜어 먹으면 더욱 좋다. 흘리는 걸 방지할 수 있어서 좋기도 하지만 뚜껑에 덜어 먹다 보면 자연스레 옛 추억이 소환되어 맛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이 끓기 전 단말 수프와 건더기를 미리 넣어야 한다. 미세하게나마  끓는점이 높아져 면이 빨리 익고 보다 쫄깃해지기 때문이다. 라면이 다 익기 전에 면을 들었다 놨다를 해주는 것도 반드시 해줘야 할 일이다. 차가운 공기가 면에 스며들면 면발이 꼬들꼬들 해지는데 그건 마치 국수를 찬물에 대치는 원리와 같다고 보면 된다. 꽤나 과학적인 접근이라 생각한다. 취향에 따라 파, 감자, 양파, 김치, 치즈, 달걀 등을 넣고 끓여도 좋지만 자칫 라면의 고유의 맛을 잃을 수 있으니 신중하게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라면이든 파와 달걀 정도만 곁들여서 먹는 걸 추천한다.

인스턴트식품이 몸에 안 좋다고 어쩌니 저쩌니 해도 나는 라면만큼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누가 무인도에 꼭 가져가야 할 세 가지가 무엇이냐고 내게 묻는다면 나는 1초의 머뭇거림 없이 세 가지 중에 라면을 우선 챙길 것이라고 할 것이다. 라면은 맛도 맛이지만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아련한 나의 추억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산업화가 가속화되자 서민들의 식량란 해결과 노동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일환으로 패스트푸드인 라면을 개발하게 되었다. 미국은 햄버거, 일본은 초밥이 발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유야 어쨌건 그 맛에 길들여진 나는 하루에 한 번꼴로 먹으니 라면 중독에 가까운 마니아라 불러도 무방하겠다. 한 번은 모방송에서 박병구 할아버지(92세) 사연이 소개되었는데 장협착증으로 소화를 못 시켜 음식을 못 드셨다가 라면만 47년째 드신다고 하니 라면이 몸에 안 좋다고 하는 건 반세기가 넘도록 국민들과 동고동락을 함께 해 온 라면에 대한 모독이자, 잘못된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것이다.

내가 라면 맛을 알게 된 첫 경험은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광고 CF로 유명세를 던 농심라면이었다. 물론 라면의 원조는 삼양라면이겠으나 우리나라 시장점유율 54%를 차지하고 있는 농심이 국민들 입맛을 공략하는 데 성공한 대표적 선두 주자임은 자명하다. 그렇다고 나는 굳이 특정회사, 특정라면만고집하진 않는다. 나는 마트에 신제품이라도 나오기무섭게  얼씨구 나하고 그 라면을 고른다. 먼저 맛을 보기 위함인데 개중에는 맘에 드는 라면도 더러 있지만 대중들의 입맛을 공략하지 못해 반짝하고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라면회사도 한두 군데가 아니니 라면 종류야 말할 것도 없이 다채로운 건 당연하다. 한 기업이 독점하나 싶었지만 지금은 춘추전국시대를 맞은 듯 총성 없는 전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옛날이야 먹거리가 없어 라면을 먹었다지만 이제는 라면 말고도 얼마든 맛있는 게 널려 있음에도 라면 수요가 많아지는 걸 보면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귀차니즘에서 오는 사회적 문화현상이기도 하고 이젠 국민음식으로 자리를 잡은 게 분명해 보인다.

또한 라면은 꼭 끓여서만 먹는 음식이 아니다. 그것 말고도 응용해서 먹을 수 있는 것 또한 다양하다. 봉지에 부수어서 수프를 뿌린 후 생으로 먹어도 좋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뿌린 후 라면을 쪼개어 그 위에 설탕을 뿌려 튀겨 먹어도 그만이다. 최소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노릴 수 있는 최고의 가성비 재료가 라면인 셈이다.

라면 하나에 50원이었던 시절엔 100원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았다. 100원으로 라면 하나 사고 남은 50원으로 짱구나 아폴로 혹은 달고나를 사서 군것질을 하는 그 낙으로 하루를 보냈던 어릴적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100원으로 한 끼 식사도 해결하고 디저트까지 할 수 있었으니 만원의 행복이 아니라 100원의 행복이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나는 어릴 적 먹었던, 어머니가 끓여준 라면이 가슴속에 아직 남아있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 아무도 없는 집 부엌에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연탄불에 라면을 혼자 끓여 먹으며 허기를 달랬던 그 맛도 아직 내 뇌리에 남아 있다. 비싸고 영양가 높은 라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지만 그때 그 시절 사연이 있던 라면 맛에 비할 바가 못된다.

나는 오늘도 배속에 들어있는 꼬르륵 아우성치는 거지의 성화에 못 이겨 라면 한 그릇 끓여 먹을까 한다. 어떤 라면을 먹어볼까? 특별한 반찬 없이도 허기를 달랠 수 있는 라면이야 말로 따뜻한 엄마이자 격 없는 친구다. 나는 찬장에 각종 라면이 꽉 차 있는 걸 보면 옛날 쌀독에 쌀이 그득했을 때의 어머니가 느꼈을 안도감을 느끼곤 한다. 주머니 사정과 상관없이,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진 진수성찬이 아니어도 라면 한 그릇이면 나는 그걸로도 족하다.

'니들이 라면 맛을 알아!'

라면을 향한 나의 애착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도 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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