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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아찌 Aug 11. 2020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 것의 유익함에 대하여



나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한다. 사람들과 어울려 그 무리에 소속감을 갖는 게 좋아서다. 어쩌면 사람 냄새를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 휴대폰 연락처엔 1천 명이 넘는다. 물론 그들과 모두 연락하고 살진 않는다. 집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생활하면서 맺어진 연으로 끊임없이 관계를 맺는다. 개중엔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평생 함께 할 사람이 있는가 반면, 서로 존재감 없이 스쳐가는 무의미한 관계도 있으며, 내 인생에 독이 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연을 맺기 전 미리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어찌 한 길 사람 속을 알 수 있겠는가. 사람을 좋아하다 보니 싶게 정주고 마음 주는 만큼 쉽게 상처 받고 배신당하는 것도 일쑤다.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이런 나의 행동 패턴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하여, 어느 순간 나를 돌아보게 되었고  이런 나의 성향과 행동의 이유들을 차분하게 분석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살다 간 나를 잃어버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에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식사를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갈 때, 혼자서 뭘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끊임없는 관계 속에서 함께 누리고 나누는 것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혼자서 뭘 한다는 게 외톨이 같았고 버림받은 느낌마저 들 때가 있었으며 심지어는 혼자 누리는 것에 죄책감마저 들기도 했었다. 이건 어찌 보면 사람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데서 오는 강박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어릴 적 혼자라는 외로움 속에 살아왔다. 형제들이 많은데 뭔 소리냐고 하겠지만 풍요 속의 빈곤이랄까? 형제들과 나이 차이가 많다 보니 형 누나들하고 같이 놀 기회가 없었고 엄마 손잡고 시장에도 같이 가볼라치면 그것도 한 살 많은 누이 몫이었다. 나는 의외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외로웠다. 그래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나의 자구책은 뭐든 두각을 나타내서 사람들로부터 주목받고 인정받는 것이었다. 그게 동기부여가 됐는지 늘 성과는 있었다. 뭐든 열심히 해서 인정받고 칭찬받으면 위로가 됐으며 한없이 행복함을 느꼈다. 그로 인해 항상 내 주변에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고 넘쳤다. 하지만 본질적인 외로움은 해결되질 않았다.

'나'라는 존재를 좋아하기보다는 포장되어있는 나를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나'라는 존재가치를 스스로 인정하고 자족해야 하는데 상대적인 관계에서 만족을 찾으려 하니 겉으로 포장해야 하는 일에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했다. 그럴수록 공허함도 커졌으며 늘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이 잔재해 있었다. 보이는 내가 나가 아닌데, 포장이 걷혀도 사람들이 과연 나를 좋아할까? 나를 외면하지 않을까? 늘 불안한 마음이 들곤 했다.

관계중심적 나의 행동 패턴은 결혼하여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도 해결되지 않았다. 내 나이 불혹이 되어서야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계기로 잃어버린 나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로 하고 용기를 내어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우선 혼영(혼자 영화보기)을 해보는 것이다. 가끔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가 개봉될 때 아침 일찍 영화관을 간다. 200석 규모의 극장에서 혼자 영화를 보는 재미는 이루 말할 수없이 황홀하다. 대관료를 낸다 치면 엄청 비쌀 텐데 1만 원에 혼자 2시간을 이용하는 셈이니 갑부가 부럽지 않으면서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울고 싶으면 소리 내어 울고 우스운 장면이 나오면 일부러 크게 박장대소하며 웃는다. 나 혼자밖에 없으니 의식할 필요가 없으니까.. 나만을 위한 특별한 이벤트를 극장주가 해준 거 같아 너무 기분이 좋다. 거기에 가끔 추억의 영화를 재개봉할 때면 회상에 젖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두 번째는 혼밥(혼자 밥 먹기)이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혼족 문화가 유행했었고 1인 식당이 지금도 많이 보편화되어 있어 혼자 식사를 하는 게 자연스럽지만 한국은 아직까지 혼자 먹는다는 게 익숙한 문화는 아니다. 식당 주인도 테이블을 혼자 차지하고 있는 걸 썩 달가워하지 않기에 바쁜 시간을 피해서 가야 한다. 같이 먹으면 격식을 갖춰야 하고 대화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음식에 집중할 수 없지만 혼자 먹을 땐 오롯이 음식과 교감을 하며 음미할 수 있으니 그 또한 색다른 경험이라 좋다. 가끔 꿀꿀할 때, 서울 외각에 한적한 음식점을 찾아 고독과 벗하며 먹는 밥도  가끔 즐길만한 별미라 하겠다.

세 번째는 혼창(혼자 노래 부르기)을 하는 것이다. 내가 자주 가는 노래방은 낮에 1시간에 5천 원이고 손님이 없다 보니 추가시간도 넉넉하게 주니 딱 좋다.  1시간 반, 주인의 기분에 따라 두 시간을 이용할 때도 있다. 노래점수에 일희일비할 것도 없고 남의 노래에 격하게 반응해줘야 하는 내숭을 떨 필요가 없어서 좋다. 애창곡 10곡 정도를 미리 예약을 해놓고 온갖 감정을 실어 자아도취에 빠져보는 것이다. 때론 사연이 있는 노래를 부를 때는 연속해서 대여섯 번을 부르기도 한다. 같이 왔으면 청승맞다 눈치 봐야 할 일이지만 내 감정에 충실해서 표현할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게 없을 듯싶다.

마지막으로 혼자 놀기의 진수는 혼행(홀로 떠나는 여행)이다. 국내여행도 좋고 낯선 해외여행은 더할 나위 없이 도전해 볼 만하다. 난 늘 함께 여행을 하곤 했다.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늘 함께라는 공동체 의식이 강했던 터라 혼자 여행을 한다는 건 상상도 못 해봤던 일이었다. 가족들과 갔을 때는 철저하게 가족 위주로 맞춰야 했으며, 지인들과 단체여행을 갔을 때는 빡빡한 스케줄에 맞춰 쫓아다녀야만 해서 여행이 아니라 노동으로 느낄 때가 많았다. 물론 그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하겠으나 홀로 여행은 또 다른 묘미가 있다. 나에 집중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나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관찰하고 때론 고독을 즐기며 나 자신을 깊이 있게 성찰할 수 있어서 좋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고 할까..

코로나는 모든 이들의 일상을 바꿔놓았다. 바이러스와 인류와의 전쟁은 쉽게 종식될 거 같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사회적 거리두기 또한 지속될 걸로 예상이 된다. 관계 속에서 행복을 찾았던 예전의  나였다면 답답함에 못 견뎠을 테지만 혼자 노는 걸 훈련한 나는 예방주사라도 맞은 듯 크게 불편함이 없다. 혼자 즐기면 되는 일이다. 내 인생에 눈곱만치도 영향을 주지 않을 누군가의 시선이 두려워 혼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일을 버릴 필요가 없다. 더불어 함께 하는 것도 좋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내가 하고픈 일을 하는 것도 가끔은 괜찮은 거 같다.

모든 관계에서의 문제는 알고 보면 나의 내면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걸 먹고, 나만의 시간을 갖고, 내가 좋아하는 곳을 다니며,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뭐였고 내가 어떤 걸 해야 행복했는지 이해하게 된다면 내가 있고 나서 네가 있고 우리가 있는 것이기에 보다 나은 관계를 맺는데 도움이 될 거라 확신한다.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예수

성인들은 알고 있었다. 모든 관계의 시작은 나의 성찰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나를 알고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는 결코 남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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