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도저어어어언기
평소에는 가만히 내 안에 숨어 있다가 그 주위로 불씨가 조금만 가까워져도 활활 타오르려고 한다. 딴따라 기질이라고 하는 것이. 오늘 열정대학(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모아 하나의 과목으로 만들고,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는 플랫폼이 되는 커뮤니티이다.) 첫 번째 오티 특강이 나에겐 큰 불씨였나보다. 버스 타고 집에 오는 길 내내 무대에 서는 상상을 했다. 평소에 상상을 워낙 구체적으로 하는 터라 오늘도 별의별 상상을 다했다.
요즘 날씨가 부쩍 추워졌는데 이제 시작해서 버스킹 준비하면 12월 말이나 1월이 되어서야 공연을 하겠지->나는 추위를 정말 많이 타는 사람이니까 거리에서 버스킹 하다간 입이 얼어서 노래도 제대로 못하겠지->그렇게 공연을 망치느니 실내에서 하는 게 훨씬 낫겠어->실내라함은... 라이브카페밖에 없는데 그 새벽에 나가서 일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아, 저번에 합정 갔을 때 보니까 그렇게 늦은 시간 아니어도 라이브카페 공연하는 곳 많던데...?->가서 돈 안 받을테니까 공연만 하게 해달라고 할까?
스스로 딴따라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안다.
나는 그런 아이다. 유치원 등원 첫날 선생님의 "이 가방 메 볼 사람?" 이라는 말씀이 떨어지기 무섭게 손을 번쩍 들고선 친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의기양양하게 앞으로 나와 가방을 메보는 아이. 초등학교때 동요제란 동요제는 죄다 나가고 그러다 운 좋게 대상까지 받아 신나서 tv동요제까지 출연했던 아이. 고등학교 때는 축제에 나가 여주인공, 연출까지 모두 해 먹는(?), 그 축제 기간을 고등학교 시절 가장 행복한 기억을 꼽는 아이.
최근에는 몇 년 만에 노래방 처음 간 사람처럼 이틀 연속 신나게 노래방 출석한 아이. 정말이지 노래방은 매일 가도 질리지 않을 곳이다. 이 정도 이야기하면 내가 얼마만큼 무대를 사랑하는지 설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왜 이토록 무대에 목말라 있는건지 생각해봤다. 부모님의 방해인 듯 방해아닌 방해가 큰 역할을 했다고 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초등학교때는 무용하는 게 너무 좋았지만 아빠의 은근한 반대에 부딪혀 그만둬야했다. 중학생때는 뮤지컬배우가 되고 싶었다. 부모님한테도 여러 번 말씀드려봤지만 여차저차해서 그냥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지금와서 그때 끈질기게 달려들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대학생이 되자마자 온갖 연극동호회를 찾아 다니다가 부푼 가슴을 안고 한 두번 정도 방문한 동호회가 하나 있다. 처음 방문하자마자 "그래, 이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학생과 직장인이 함께 연극을 준비하는 곳이기 때문에 주로 연습은 늦은 시간에 진행되었고 늦은 귀가를 극도로 싫어하시는 부모님 때문에 이마저도 포기해야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정말 많은 포기를 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왜 그렇게 집요하지 못했을까. 용기내지 못했을까.
한 번 더 용기 내기로 했다. 집 구석에서 연극 동호회만 몇 시간째 검색하며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방황하고 있을 나 같은 사람들. 나오세요.
앞으로 열정대학에서 하게 될 활동들은 차차 이야기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