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권위와 섬기는 권력

교회의 권위는 섬기는 권력이 되어야 한다.

by 아포리스트

들어가는 이야기: 내가 교회를 떠나기까지

나는 모태 신앙으로 태어난 27살 청년이다. 전공으로 사회학을 하고 있다. 지금은 가나안 성도로 있다. 나는 예수의 이야기에 가슴을 떠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러나 교회는 출석하지 않고 있다. 교회라면 이제 신물이 났기 때문이다. 교회와 함께 했던 지난 순간들은 그저 고통스럽기만 했다. 어릴 적 신앙에 따라서 교회는 반드시 갔던 나였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 지금 나의 인생이 훨씬 더 윤택하고 행복하다. 교회를 떠나게 된 것도 나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교회 밖에서 교회에 대해서 글을 쓸 수 있는 기회, 주일이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시절에 비해서는 훨씬 더 나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한 목회자의 엇나간 권위인식

내가 출석했던 교회는 용인시에 위치한 고신 교단의 교회다. 이 교회는 대형매체에 '좋은교회'라고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나는 그런 교회 아래서 그 어떤 때보다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목회자의 엇나간 권위인식 때문에 나는 수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 이야기는 내가 소그룹 장으로 섰을 때부터 시작이 된다. 내가 소그룹 장으로 섰을 때에 당시 청년부 목회자와 갈등이 벌어지게 된다. 고작 30대 초반이었던 그는 목회자의 권위가 대단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나에게 소그룹장으로 서는 나에게 부탁했던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어떤 주제로든 토론하지 말 것. 둘째, 잘못된 것이 있어도 고치려고 하지 말 것. 셋째, 하나님이 세우신 목회자의 권위에 절대적으로 순종할 것.


이 말을 했던 목회자가 속한 교회가 정상적인 교회, 건강한 교회를 표방한다는 점에서 피곤한 일이었다. 나는 소그룹장으로 서야 할 이유가 뚜렷했다. 그것은 교회가 신경쓰지 않는 이들을 챙기는 일이었다. 고된 일이었고, 나는 그 일을 해야만 헀다. 이 때문에 일단 잠정적으로 수용하기로 했다.


문제는 한 달도 되지 않아서 터졌다. 우리반에 있었던 장애인 여성을 옮겨달란 부탁에서 터졌다. 우리 소그룹에는 여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 거기다가 우리 소그룹에 있는 청년들도 일부 다른 곳으로 옮겼다.사실 소그룹 간의 이동은 자주 있는 일이었다. 이 때문에 나는 당연히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의 말을 내뱉는다. 그것은 "네가 부족한 사람을 섬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여기에 대해서 "충분히 납득은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이 청년을 섬기기가 어렵다. 우리는 잘 나오지 않는 청년들로 구성이 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많이 챙겨주어야 하는 이 여성을 우리가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말이 기가찼다. "나를 훈련시키는 도구이고, 이 아이는 사랑받는 데 둔감하기 때문에 조금 덜 챙겨줘도 된다"는 것이었다. "목회자의 권위"를 내세우며 목회자의 말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은 안되다고 거절했다. 나의 반론은 우리가 이 소그룹 모임을 하는 이유의 첫 번째는 이 아이의 신앙생활을 잘하게 해주는 데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나를 훈련시키고 싶으면 다른 방법을 쓰면 되지, 사람을 도구로 쓰면 안된다고 했다. 그리고 수용하실 때까지 나는 거절하겠다고 했다.



5.jpg 출처: 버락킴의 너의 길을 가리라 블로그

우리 어머니가 갑자기 편찮으시게 되면서 나는 그주부터 교회를 나가지 못했다. 주 5일을 일하고, 주말이면 병원에 내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교회가 눈에 들어올 일이 있었나. 내가 교회에 나가지 못하는 한달여동안 권위를 내세우던 목회자는 나에 대해서 악질적인 소문을 퍼뜨렸다. 교회 임원들도 신나서 나에 대해서 나쁜 말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교회에서 왕따가 됐다. 나는 한달 반 정도만에 교회로 돌아갔다. 왜 그런 짓을 했냐고 물었다. 그 이유는 내가 목회자의 권위를 무너뜨려서라고 했다.


그 목회자에게 나는 사과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했다. 나에게는 괜찮고, 장애 여성에게만 사과를 해주면, 내가 모든 것을 용서한다고 했다. 그리고 무릎꿇고 빈다고 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자신이 전혀 잘 못한 것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친구와 내기를 했다. 우리 어머니가 계신 병원에 한 명만 찾아오면 나는 교회를 나가겠다고 했다. 모두가 우리집에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 알았지만, 병원에는 단 한명도 찾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때의 트라우마로 인해서 '권위'라는 단어만 들어도 몸에 치가 떨린다. 그 이후로 나는 권위라는 말을 쓰지 못한다. 이제 권위라는 말을 들으면 반작용이 걸려서 힘들 정도다. 권위란 단어만 들으면 이제 지겨울 정도다. 그렇게 교회에 내몰린 게 나였다.


교회는 섬기는 권력을 추구해야

나는 '섬기는 권력'이 한국교회가 추구해야 할 권력의 방향이라 생각한다. "참된 권력은 섬김이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 말이다. 특히 가난한 자, 상처받은 자, 미약한 자를 섬기는 것을 권력이라고 말했다. 나는 교황에 대한 '용비어천가'를 부르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진정한 권력이 섬기는 데 있다는 교황의 표현은 적절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섬기는 권력이 예수님이 행하신 권력 방식이다.

교회의 권위는 예수님이 세우신다. 기독교인은 권력을 행하는 방식에서 예수를 닮아야 한다. 그래야 권위가 선다.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그는 모든 사람의 꼴찌가 되어서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막 9:35)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짓누르는 권력을 행사하고자 하면 가장 밑으로 내려간다는 것이다.

예수는 가장 낮은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하나님은 이 땅을 구하기 위해 거대한 권력으로 자신을 믿지 않는 자를 때려잡지 않았다. 평범한 목수의 아들로 살았다. 예수님이 3년간의 공생애 결론은 죽음이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 미약한 자, 상처받은 자를 섬기시는 데 공생애를 사용하셨다. 섬기는 권력이 예수님과 기독교에게 권위를 부여했다.

35.jpg 출처: ebs 지식채널 새로운 교황 중


높은 곳으로 가고자 하는 교회의 권위와 권력은 줄고 있다. 세상 기준으로 볼 때, 권력은 높은 자리에 가야 생긴다. '섬기는 권력'은 사실 세상 기준으로 볼 때 어리석은 짓이다. 부유한 자, 인정받는 자, 강한 자에게 잘하면 자연스럽게 권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일지 한국교회, 특히 일부 대형 교회는 섬기는 권력은커녕 자꾸만 높아지고자 한다. '기득권'과 함께하고, 그들을 닮아가려 한다. 한국교회는 예배당이 커지고 있다. 유명 인사들이 찾아 온다. 그런데 교회에 대한 비판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기독교 방송과 교회 강단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간증하는데, 가나안 신자는 늘어나고 있다. '영향력을 떨치자'는 기도회와 운동이 이어지는데 교회의 권위는 점점 줄고 있다. 대형 교회 목사들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는 것은 '섬기는 권력'을 행사하지 않을뿐더러 '섬기는 권력'들과 함께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섬기는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말이 이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섬기는 권력'을 지금 비판받는 대형 교회 목사들이 행사하고 있다면 달라 보일 것이다. 교회가 돈이 많은 사람, 정치적 권력이 있는 사람, 명예로운 사람 말고도 부족한 사람들을 섬긴다면 더 많은 힘을 얻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가 거대한 예배당 근처 하루하루 살기 팍팍한 아르바이트생, 청년들, 노인들을 돌본다고 생각해 보자. 분하고 서러운 사람들 곁에서 항상 함께 있어 주는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라면 교회는 권위를 얻을 것이다. 교회 내에서도 권력과 부를 내려놓으면 더 많은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줄 것이고, 진심을 다하는 성도들을 얻게 될 것이다. 그것이 교회가 더 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권위를 부여받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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