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포리스트 Nov 12. 2018

한국 기독교는 동성애와 이슬람에만 관심이 있는가

카인즈 키워드 맵핑 분석결과

한국 개신교가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은 무엇일까. 세상을 바꾼다고 말하는 기독교가 과연 사회 속에서는 어떤 존재인지 무척 궁금해졌다. 뉴스빅데이터 분석 사이트인 카인즈를 통해서 간단한 분석을 해봤다. 각 데이터는 1000여개의 기사를 '연관어 검색'으로 나온 빅 데이터 결과물이다. 기간은 2018년 06월 12일부터 2018년 09월 12일로 3개월 가량 보도가 된 기사다. 이 키워드 빅데이터를 차분하게 살펴보면, 지금 기독교 이슈가 동성애와 이슬람 등에 집중되고 있음이 나타났다. 


네 가지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기독교, 기독교+사회, 기독교+ 약자, 기독교+ 사랑 이렇게 조합해서 카인즈를 통해 키워드 맵핑을 해보았다.   

카인즈 '기독교' 검색 후 연관어 분석


첫 번째 분석결과는 '기독교'로 검색했을 때다. 하나님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나온다. 눈에 띄는 것은 기독교가 싸우는 대상들이다. 동성애, 무슬림, 퀴어 등이다. 그 외에도 보이는 것은 타종교와 관련된 불교와 무슬림이다. 저 중에서 기독교가 배타적 성향을 가지지 않는 키워드를 찾기 힘들 정도다.               

기독교+사회 연관어 분석


다음은 기독교+사회를 검색했을 때의 결과다. 역시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다. 여기서도 눈에 띄는 것은 동성애, 이슬람 등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 키워드에서도 타종교가 눈에 보인다. 이와 함께 사회참여적인 기독교단체인 NCCK가 많이 보도가 됐다.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안(NAP) 역시 눈에 띈다.             

'기독교+약자' 연관어 분석결과


다음으로 분석한 자료는 기독교와 약자를 함께 검색한 것이다. 예수는 약자 자들의 편에 섰다. 기독교는 약자와는 어떻게 연대하고 있을까. 여기서도 이슈는 성소수자다. 이와 함께 검색되는 것이 인권위다. 최영애 인권위원장의 출신 학교인 부산여고가 검색이 된다. 이와 함께 여성학 학위 등이 보인다. 또한 법무부의 제3차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안(NAP) 역시 주요 이슈로 나온다.              

'기독교+사랑' 연관어 분석결과


마지막으로 기독교에서 핵심이 되는 교리인 '사랑'을 검색을 해보았다. 기독교의 핵심교리인 사랑이 지금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여기서도 나타난 키워드가 이슬람, 무슬림, 유대인, 동성애 등이다. 이와 함께 지역사회 역시 눈에 띈다. 현재 사랑을 지금 기독교가 주고 있는 대상은 아이들, 지역사회 정도일 것이다. 

뭣이 중한데?: 이슈라곤 동성애와 이슬람 

최근 기독교와 관련된 뉴스를 검색해보면, 이슈는 거의 동성애와 이슬람에 맞춰져 있다. 최근 이슈는 아무래도 퀴어와 동성애다. 퀴어, 동성애, 성소수자, 인권위 등 동성애와 관련되어서 기사가 집중됐다. 이게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사실 알 수가 없는 길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에서 미국 보수주의자들이 개신교신자들을 이용해 선동을 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특별히 개신교인들이 집중해야 할 사회활동이 동성애와 이슬람 반대 운동밖에 없을 이유는 없다. 백 번 양보해서 정말 동성애가 죄라 치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어지럽힌다고 치자. 성경 속 죄악이 동성애 뿐이고, 그것이 죄라고 말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사명일까. 그럴리 없다. 성경에 근거해 볼때 기독교인들이 분노해야 할 분노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살인, 음란, 교만, 무정함, 무자비함, 우매함 등 역시 하나님이 분노하시는 죄악들로서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사회의 구조적 불의에도 분노하신다. 사회가 양극화 되고, 약자들이 부당하게 짓밟히는 상황에 대해서 성경 속 하나님은 격노를 하시는 분이시다. 


잠시 성경을 살피면, "너희는 너희에게 몸붙여 사는 사람을 구박하거나 학대하지 말아라. 너희도 에집트 땅에서 몸붙여 살지 않았느냐?"(출 22:20) 이와 같은 약자 배려의 정신은 과부와 고아에 대한 보호(출애 22:2.), 떠돌이꾼에 대한 보호(레위 25:35), 선행을 배우고, 정의와 공의를 펴라는 예언자들의 계시(사 1:17) 등 너무 쉽게 찾을 수 있다. 고작 동성애와 이슬람을 반대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지상 사명이 아니다. 정의와 공의를 구하고, 억눌리고 힘든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사명이다. 


억눌림 받는자에게 관심을 가져주면 안되는가? 

빅데이터는 '혐오'하는 기독교를 말하고 있다. 비록 간단한 키워드 분석이었지만, 지난 3개월 간 기독교가 활동한 모습을 언론을 통해 유추해보면 '싸움과 혐오'이었다. 평화, 자비, 사랑은 커녕 성소수자들과 싸우다 시간만 낭비한 모습이다. 특히 '약자'라는 키워드와 연관지어서 검색해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보살펴야 할 대상은 없고, 자신들이 싸우는 존재들만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기독교가 관심가져야 할 대상은 많다. 청년층은 '이번 생은 망했다'며 절규하고 있다. 사회 곳곳에 비참하게 사는 이들의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자영업자들의 삶을 하루하루 넘기기 힘들어 하고 있다. 그 외에도 빈곤과 고난에 시달리는 여러 약자들이 목숨을 끊고 있고, 이 땅에 힘겹게 살고 있다. 이런 약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현재 교회가 할 일이다. 그러나 잘 보이지 않는다. 

예수를 신념으로 삼는 삶과 지금 기독교는 거리가 멀어져 가고 있다. 진짜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을 교회가,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돌아봐야 할 떄는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이루지 못했던 기도, 이룬 소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