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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포리스트 Jan 02. 2020

청년의 일자리는 많다. 그런데 왜

 “오래 버틸 수 없는 사내 문화를 바꿔야 한다”

한 가지 의문이 있다. 한국의 청년 일자리 문제가 정말 극악무도한 수준일까? 생각보다 한국의 청년일자리에 대한 거시지표는 괜찮다. 한국은 OECD 평균보다 못 미치는 청년 실업률을 가진 국가다. 2018년을 기준으로 OECD 국가들의 평균 청년 실업률은 11.0%, 한국은 9.8%다. 그 외에도 최근 5년 간 청년실업도 높다고 할 수 없다(아래 그림 참고). 이는 일반적인 통념과 다르다. 이러한 통계상의 오류가 나오는 이유는 ‘청년’을 ‘몇 살까지로 볼지’가 달라서다. OECD 국가들은 청년기준이 15~24세다. 반면에 한국은 병역과 학업 문제로 취업연령이 높아서 15~29세가 청년이다. OECD 평균보다도 고용률이 낮은 이유 역시도 경제활동인구 자체가 한국이 OECD보다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점을 감안하면 고용률도 낮다고 하기 어렵다.⑴


▲ (자료출처=머니투데이 2019.05.09)


그 외에 고용에 영향을 주는 전체 고용률과 경제성장률 지표도 나쁘지 않다. 이번 정부의 ‘일자리 참사’라고 주장하는 언론사들의 보도와는 달리, 2018년 상반기 고용률 평균치는 60.4%로 지난해 상반기 60.8%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금융위기 이후 2010년~2017년까지 고용률 평균치인 60.0%보다 오히려 높은 상황이다.⑵ 경제성장률도 괜찮다. 2018년 기준으로 OECD 전체 36개국 중 경제성장률이 중간에서도 밀리는 21위이었다. 그러나 경제규모가 비슷한 3050 클럽 중에서 경제 성장률 2위로, 미국 다음이다. 참고로 3만 달러 이상 국가는 7개고, 이 중에서 GDP가 압도적으로 높은 미국을 제외하고서는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것이다.⑶


한국의 청년 일자리 문제는 노동시장 자체보다도 미시적인 데 있다. 앞서 살펴봤듯이 한국의 일자리 상황이 아주 험악하지는 않다. 거시적인 지표는 양호하다. 모두가 청년 일자리가 ‘없다’고 주장을 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구인난을 호소하고 있다.⑷ 노동시장 자체가 아주 형편없다기보다는, 실제 체감 한 사업장에서 오래 못 버티는 청년이 많은 것이다. 2018년 통계청 조사에서는 청년들의 근속연수가 평균 1년 5.9개월 가량이라고 발표했다. 근속연수가 짧다는 것은 만족스러운 일자리가 별로 없단 이야기다. 고용시장 상황도 괜찮고, 중소기업에는 일자리가 많음에도 청년들이 가고픈 데가 없다는 이야기다.


우리 사내를 돌아보자. 아침이면 커피 한 잔을 상사에게 바쳐야 한다. 여행가서 직장동료와 선배들의 선물에 머리 아파하는 직장인들도 있다. 맛집을 알아보는 게 직장생활이고, 상사에 비위를 맞춰가야 한다. 업무는 왜 해야 하는지 모를 ‘삽질’을 아무렇지 않게 시킨다. 야근은 한국 직장인들에게 일상이다. 이런 직장 문화에 청년들이 오래 버텨주길 바라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최근 청년들을 분석한 책들인 『90년대 생이 온다』, 『사표의 이유』 등을 보면, 현재 청년들은 일에서의 성취와 보람, 여유를 가장 중요시 여긴다. 이런 청년들의 특성을 현재 일자리들이 제대로 반영해주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청년일자리 문제에 대한 기성세대의 문제의식은 형편없는 상황이다. 청년실업의 문제를 관련 없는 문제인 최저임금과 노조 탓이라고 하는, 반박할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을 보수당에서 하고 있다. 일부는 정부에게 청년 실업문제의 책임을 돌리기도 한다. 또 다른 기성세대들은 ‘힘든 일을 기피하는’ 청년들에게 책임을 전가시킨다. 청년실업 문제는 복합적이기 때문에 어느 한 주체가 열심히 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청년 일자리 문제는 거시정책 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각각의 주체들이 함께 나서야 해결‘될’지도 모르는 문제다. 그만큼 해결 과정이 지난하다. 그럼에도 가까운 곳에서 해결할 생각을 하지 않고, ‘남 탓’하기 바쁘다.


현재 한국 청년 일자리 문제의 본질 중 하나인 조직을 바꿔야 한다. 오래 버틸 수 없는 사내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 사업장의 민주화가 없이는 청년실업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청년들을 붙잡고 싶다면, 정말 일하고 싶은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청년들에게 도전과 열정을 말하기 전에, 복지와 임금으로 보상해줘야 한다. 창의성을 논하려면 파티션을 친 사무실 대신에, 카페 같은 사무실에서 자유로운 토론을 해야 한다. 혁신을 논하기 전에 저녁밥 맛집 찾기와 커피 심부름을 시키는 것부터 멈춰야 한다. 일할 수 없는 노동환경이 청년들을 직장에서 떠나게 하고, 구직자로 만들거나, 공무원 준비생으로 만들고 있다.


현 청년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양질의 일자리와 존중이다. 청년들은 많은 일자리보다는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나만의 일’을 찾고 싶은 것이다. 기성세대는 ‘내가 생각하는 열정’과 ‘내가 생각하는 좋은 일자리’ 대신에, 청년들이 정말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묻고 해결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청년들은 어떤 일을 하든지, 내가 일한 만큼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 그리고 일자리에서의 민주주의가 지켜지는 사회에서 살고 싶어 한다. 청년 일자리는 많다. 그러나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다.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회사 문화를 바꾸려는 전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http://catholicpress.kr/news/view.php?idx=6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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