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청년문제 대안을 바라며

노동시장 구조 개선과 청년복지를 바란다.

by 아포리스트

이번생은 망했다는 이들을 위해

혹시나 ‘이생망’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으신지요. ‘이번 생은 망했다’라는 청년들의 탄식을 줄인 말이 ‘이생망’입니다. 이번 생에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너무도 당연할지 모릅니다. 10대 때 가장 살인적인 교육 환경에 시달려 왔습니다. 단지 ‘어느 대학에 갈지’를 놓고서 심각하게 다투었습니다. 그런 청년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아르바이트와 비정규직이었습니다.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아르바이트를 면할 수 있는 청년은 비정규직에서 벗어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입니다. 온전히 자신을 위한 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한 번 정해진 지위가 계속가는 지금 상황에서, ‘이번 생은 망했다’고 외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다른 얘기 좀 해보면, 아무 일이나 할 수가 없습니다. 육체노동자를 천시하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혐오하는 못난 관습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아무 일이나 할 수 없습니다. 작은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 차가 조금 별로인 것을 타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문화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 일이나 했다가는 결혼도 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남성이나 여성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생애주기에 있어서 교육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루도 편할 날 없는 우리나라에서 ‘탈조선’해야 한다는 부정적 여론이 대한민국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저는 한 명의 청년이자 사회학도로서 두 가지를 제시하고자 합니다. 첫째, 임금주도형 성장입니다. 둘째, 적극적 복지국가입니다.

노동시장 이중화 극복
우리 사회가 가장 먼저 이루어야 할 것은 임금주도형 성장입니다. 우리 사회는 일자리의 부족이 문제가 아닙니다. 일자리의 질이 문제입니다. 2015년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 실업률은 4.4%가량입니다.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OECD 회원국들의 실업률 평균은 6.6%정도입니다. 실업난의 심각성을 그렇게 외치지만, OECD 평균보다 낮은 수준입니다. 그러니 실업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실업보다는 오히려 취직을 해도 높지 못한 기업의 수준과 실업보상 제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는 것입니다. 단적인 예로 국내 니트족의 38.7%가 ‘원하는 일자리가 없어’ 비구직 상태입니다. 일자리가 없다는 아우성은 정확히는 ‘일할 만한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의 고용체계에서는 ‘이중화(dualization)’와 ‘분절화(Segmentation)’ 현상이 상당히 심각한 수준입니다. 이중화는 같은 일을 해도 나는 차이를 말합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고용체계가 갈라져 있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임금차가 두 배에 가깝습니다. 분절화는 갈라져있는 체계 밑에 있을 경우에, 위로 가기 어려운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좋은 일자리가 얼마 없어서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싸우는 형태입니다. 거기다 심각한 분절화 현상 때문에 한 번 중소기업에 들어간 사람은 다시 대기업으로 가기가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첫 직장부터 잘 잡으려고 아우성을 치는 것입니다.

국가 경쟁력도 결국에는 임금을 맞추는 데서 옵니다. ‘이른바 ‘작지만 강한’ 강소기업인 히든챔피언이 얘기가 많이 됩니다. 히든챔피언은 기업별로 임금이나 복지 차이가 적은 유럽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외곽에 사는 젊은이들이 굳이 수도로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비서울에 사는 젊은이들이 복지혜택이나 임금이 격차가 없다면, 굳이 올라오지 않을 것입니다. 양질의 일자리가 있는데 뭐 하러 서울까지 상경해서 고생을 하겠습니까. 히든챔피언이 늘어나면 우리 경제는 훨씬 더 살아날 것입니다.

임금이 맞춰지면 우리의 삶도 변합니다. 부채를 잔뜩 질 사람들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왜 서울로 올라올까요? 정상적으로 대우해주는 기업이 없기 때문입니다. 빚을 져서라도 좋은 기업에 입사하지 않으면 결혼도, 육아도 불가능합니다. 이런 비용을 줄이는 것이 임금격차를 줄이는 것입니다. 기업의 복지와 임금수준이 산업별로 동등해지면, 무리하게 좋은 대학을 가고자 난리를 치는 이 살인적인 입시경쟁도 완화가 될 것입니다. 어떤 대학을 나와도 혹은 비슷하게 살 것인데 그 야단법석을 떨 이유가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작년에 쓴 <왜 분노해야 하는가>에서 지적한대로, 임금은 시장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조정될 수 있습니다. ‘동일 산업의 동일 임금’이 합의가 되어 적정임금이 지불이 되면, 우리 사회는 발전할 것입니다. 우리는 임금이나 복지가 사회적으로 조정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정치가 변하면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복지국가의 완성
두 번째 패러다임은 복지국가입니다. 현직 대통령께서 쓰신 자서전 <운명>이라는 책에서 노무현정부가 꿈꾸던 국가가 복지국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상 현 정부는 인식상 노무현정부를 계승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한국의 복지국가의 기틀을 마련하신 두 분의 대통령인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이어가는 문재인 정부에서 역시 이 패러다임을 계속해서 이어가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니, 더 발전된 복지국가 이념을 제시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때 복지국가는 ‘사회투자국가’라는 방향이 있었습니다. 사회투자 국가의 기본방향은 ‘기회의 평등’입니다. 1980년대 영국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일자리 불안, 노동시장 양극화, 핵가족 붕괴, 저출산 고령화 따위 새로운 사회 현상이 나타나면서 전통적 복지국가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1990년대 후반 영국 노동당은 복지국가를 소생시킬 수 있는 ‘제3의 길’로 사회투자국가론을 제기하기에 이릅니다. 아무튼 이 이념을 우리 역시도 수용하여서 사회투자국가에 대한 논의가 10여년 전인, 노무현 대통령 때 존재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과연 기회의 평등은 과연 존재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청년층을 무겁게 누르고 있는 ‘금수저, 흙수저 논쟁’이 절대 거짓이 아닙니다. 제 예를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전형적인 흙수저로 태어난 저는 돈이 없으면 당장 뭐라도 알바를 해야 하고, 더러운 꼴을 보는 한이 있더라도 돈은 벌어야 합니다. 제 공부할 시간을 깎아서 돈을 버는 것입니다. 반면에 집안이 좋은 곳에 태어난 사람이 외국 유학을 다녀와서 저와 같은 공부를 한다고 칩시다. 그러면 영어로 글을 읽어야 하는 대학원에 특성상 여기서부터 차이가 벌어집니다. 거기다가 외국유학이라는 타이틀 덕분에 다시 갈 곳이 많이 있습니다. 이건 경쟁이 아니라, 경쟁을 가장해서 쇼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래의 복지 국가는 이제 기회의 평등을 넘어서 부족한 결과를 낸 사람들까지도 챙겨주는 국가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하고, 결과가 정의로워도 도태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의 능력과 개인의 일생이 균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처럼 상황이 안따르면, 기회가 비슷해도 조금 안 될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의 손도 잡아주어야 합니다. ‘아니 일도 안한 게으른 인간들!’까지도 왜 손을 잡아주어야 하냐하면, 나도 그렇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사회보장제도들이 인간의 일생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점에서 만들어진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결과가 좋지 못한 사람도, 그렇지 못한 사람도 모두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임금격차 완화와 복지국가
임금격차 완화와 복지국가의 형성이 문재인 대통령께 가장 바라는 바입니다. 이는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에게 드리는 메시지입니다. ‘무엇을 하지’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양질의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고, 실업자 상태에서 살아날 구멍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우리나라가 어딜 가나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고, 혹여나 삶이 고꾸라져도 일으켜줄 복지시스템이 되어 있는 국가를 바랍니다. 절망을 느끼면서 살지 않고 있을 것입니다. 내가 무언가 열심히 하면, 어느 직장을 가나 높은 임금을 받을 수가 있고, 빚을 갚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복지가 잘되어 있다면 지금 조금 어려워도 나를 도와줄 국가가 있기에 그렇습니다.



요약하기

1. 거시적으로 봤을 때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 노동시장 이중화의 극복, 육체노동자 차별하는 분위기 완화 등을 시행해야 한다.

2. 노동시장양극화 문제와 기업별 고용체계 극복을 해야 한국사회의 학벌문제, 세대 문제가 완화될 수가 있다.
3.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것이 현 청년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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