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대상 복지국가를 구상하다
정리하는 글
이 글은 지난 10여년 간의 청년 담론을 정리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모두가 “청년”을 외치는 시대다. 정치인들의 공략,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청년들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청년을 위한 콘텐츠는 쏟아지고 있다. 청년이란 단어는 희망 대신, 절망을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가끼자 한다. 이렇게 청년이란 말 속에 담겨져 있는 절망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88만원 세대' 이후에 여러 사람들의 글과 말 생각을 통해서 만들어진 담론이다.
실제로 우리 세대를 돌아보면 암울하기만 하다. 국가 장학금 도입 이전 세대가 가지고 있는 평균 학자금 대출 빚이 1200만원이다. 월 100만원 씩, 1년 반을 갚아야 하는 금액입니다. 많은 청년들이 불안 속에서 아르바이트를 안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비율은 50%가 넘는다. 20대의 평균임금은 월 233만원이다. 비정규직은 호봉이 오르지 않습니다. 이점을 감안하면, 청년 한명이 서울에서 집을 가지려면 20여년 간 숨만 쉬고 일을 해야 한다. 6무세대, 삼포 세대 등의 이야기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공부해서 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 그렇지도 않다. 박사학위를 하기 위해서 드는 비용은 학비만 계산했을 때, 4천 만원이다. 변호사가 되기 위해 진학하는 로스쿨은 3년간 6천만원이 든다. 의학전문대학원의 금액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대학원의 문제는 학비가 해결이 되더라도 생활비가 해결될 방법이 마땅히 없다는 것이다. 돈을 아주 많이 모아서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돈이 많은 집이 아닌 이상 이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전문직'을 하기 위해서는 20대 후반~30대 초반까지 공부를 해야 한다. 그러나 평범한 가정에서는 부모들의 은퇴 연령을 생각했을 때에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면 고시나 공무원 시험은 희망이 있을까? 사실 이러한 시험을 치르는 데도 돈이 많이 듭니다. 학원비, 생활비,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감안 했을 때는 고시 역시도 희망적이지 않다. 고시나 공무원에 쓰는 돈 역시도 연 1300만원이 든다. 오죽하면 “공부할수록 가난해진다”라는 제목의 책이 이 나왔을까.
물론 88만원 세대를 축으로 한 '불쌍한 청년'들 이전에 청년을 바라봤던 담론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부정적이었다. 보수는 ‘노력’, 진보는 ‘정치적 열정’을 이유로 청년들의 무능을 질타하기 바빴다. 속된 말로 ‘20대 개새끼론’이 있었을 만큼 청년들은 이 사회에서 마음 놓고 있을 곳이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열정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정치적인 관념이 부족한 이들로 여겨졌다. 당시 청년담론이 더 청년을 질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회의 가장 급진적인 시대에 청년기를 보낸 이들의 자식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부모세대의 급진성에 비해서 자식세대는 무능하기 짝이 없게 보였을 것이다. 과거에 지하 대학에서 『전환시대의 논리』와 『자본론』을 공부했던 ‘혁명의 시대’의 자식들치고는 참 초라한 성적표다.
그랬던 20대들에게 새로운 담론이 등장했습니다. ‘불쌍한 20대’라는 담론이다. 불쌍한 20대의 담론이 열리면서 여러 책들이 나왔습니다. 『88만원 세대』라는 라벨링은 우리 청년세대의 암울한 사회 구조를 비판한다. 그 뒤에 나온 책들인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아프니까 청춘이다』 등 모두 청년들이 힘에 겹다는 문제의식은 똑같이 공유한다. 서로에 대한 비판적 담론도 있었지만, 이러한 담론들이 나올 수 있는 것은 모두 청년들의 어렵고 힘든 상황은 동감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오히려 이들에 대한 위로가 시작이 됐다. 청년의 문제가 사회적이라는 데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청년법 제정', '청년대상 복지'라는 트랜드까지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불쌍한 청년’이라는 트랜드를 넘어서 이제 청년세대가 새롭게 주도하는 담론들 역시 존재한다. 페미니즘과 인터넷 저널리즘이 그것이다. 이제 기존 세대가 이해하기 어려운 담론들일 수 있고, 대학가를 중심으로 하여서 그 어떤 때보다도 치열하게 청년들 사이에서 토론하고, 논의하고 있는 담론이 됐다. 특히 대학가 페미니즘은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고자 하는 청년들, 그리고 경제구조와 문화구조를 넘어서 억눌렸던 여성들의 생각을 피력하는 담론이 됐다.
왜 청년담론인가?
청년의 담론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 청년기를 ‘과도기’로서 정의한다. 내가 정의하는 과도기에서 중요한 것은 청년세대가 제 위로는 ‘아주 힘든 세대’였고, 제 뒤로는 ‘그래도 괜찮은’ 세대로서 보인다. 등록금 부담이 낮춰진 것이 청년세대를 바꾸는 가장 중대한 사건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즉, 청년세대의 담론은 사실상 ‘반값등록금’에서 만들어졌다는 게 내 생각이다. 등록금 부담이 사라진 대학은 훨씬 더 자유로워졌다.
이러한 점은 더 나은 미래 세대를 위해서 '청년복지'와 '청년기본법' 제정 등의 제도적 장치가 필연적임을 보여준다. 청년이 사회적 약자라는 문제 의식 하에서 이러한 정책들이 미래 세대를 위한 담론으로서 존재해야 한다. 나는 이 글에서 청년담론, 특히 80-90년대생들이 처했던 환경을 다룬 한국의 청년담론을 정리하고자 했다. 시도는 매우 미약했다. 그러나 이 시도를 통해서 더 나은 시도들이 만들어 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