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관세대가 아니라, 자포자기일 뿐이다.
현재 청년들이 '달관세대'로 살아도 된다는 망상에 빠지 이들이 있다. 청년들의 어려운 사정은 고려치 않은 채, 몇년전까지만 해도 '안분지족하면 되지, 무슨상관'이냐는 식으로 함부로 청년들을 몰아 붙었였다. 한때 <조선일보> 연재물로 달관세대가 등장한 적이 있다. ‘달관세대’는 ‘사토리(さとり)세대’의 조선일보식 표현이다. 사토리 세대는 일본의 장기 불황 속에서 출세 등을 고려치 않고 안분지족하는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조선일보> 논리에 의하면 일본청년들과 달리 한국청년들은 불평이 많다. 기사는 월급 100만 원 가량을 받고 ‘모범적인 생활’을 하는 청년 몇 명의 생활을 다룬다. 한 끼에 3,000원짜리 식사이지만 황제의 밥상처럼 여기고, 영화관에 가지 못해도 IPTV를 통해서 영화를 마음대로 볼 수 있어 행복하다는 식이다. 행복은 ‘내면’에 있으니 ‘적게 벌어 적게 써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게 이 ‘달관세대 시리즈’의 결론이다.
“내가 노력해봐야 비정규직이지, 좋은 직장은 포기하려고” 이전에 지인과 술자리에서 나눴던 말 중에 가슴을 먹먹하게 했던 말이다. 제 아무리 노력해도 정규직으로 취업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이 친구는 본래 공무원 시험을 보겠다며 일명 ‘고시촌’으로 들어갔다가 결국에는 실패를 했다. 취업을 다시 준비하니 어학시험료, 자격증 시험료 등도 만만치 않아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고 했다. 고시촌에 들어갔을 때 비용이 워낙 많이 들어서 더 이상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가 없어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휴대폰으로 ‘행복은 내면에 있으니 달관하라’는 조선일보의 ‘달관세대’ 시리즈를 보여주었더니 쓴 웃음을 지었다.
현재 한국의 청년들은 달관할 수 있는 여건에 살지 못하고 있다. 2014년 기준으로 대졸 실업자 50만 명, 청년 취업준비생 60만 명이다. 일명 ‘좋은 일자리’를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웬만한 대기업 입사경쟁률이 100대 1을 넘긴 지 오래고, 공무원 시험은 이미 포화상태다. 그럼에도 그나마 안정적인 게 공무원이라며 고시촌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청년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취업 이후도 문제다. 나쁜 근로여건과 저임금뿐 아니라,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성이 청년들을 괴롭히고 있다. 부동산 값은 청년들의 소득에 비해 너무 높아 정착은 불가능에 가깝다. 결혼과 취업관문을 뚫은 청년들도 사교육비가 워낙 비싼데다가 맞벌이가 많아서 육아도 포기했다.
우리나라 청년들의 상태는 ‘안분지족’이 아니라, ‘자포자기’다. 취업 포털 <잡코리아>에서는 달관에 대한 청년들의 조사를 실시했다. 자신이 ‘달관하고 살고 있다’는 응답은 85% 가량이었지만 그 원인은 ‘더 잘살 것이란 생각이 없어서’가 가장 많았다. 어린 시절 치열한 입시 교육 전쟁을 치르고 나면, 취업 전쟁이 기다리고, 취업 후에는 나쁜 노동 여건이, 일생 끝에는 불안한 노후가 기다린다. 어린 시절부터 노력을 해도 해도 계속되는 압박에 이제 스스로를 놓아버린 것이다. 한동안은 ‘꿈과 노력’만으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가 세상을 지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깨달았다. 그래서 ‘오르지 못할 나무’를 오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사진 출처 - 인천일보
현재 청년 문제의 핵심은 일자리다. 한국의 비정규직 비율은 OECD 평균의 2배 정도다. 거기다가 정규직 전환율은 10% 안팎이다. 청년들은 저임금-실직-빈곤이라고 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 있다. 이런 여건에서 “청년들 스스로 정치적 지위를 얻어야 한다”는 말도 공허하게 들린다. 정치 참여도 ‘생존의 문제’가 걸려 있으면 쉽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일자리의 문제의 악순환은 신자유주의적 처방으로 풀 수 없다. 일각에서는 ‘정규직 과보호’, ‘퍼주기’ 등 때문에 경제가 어렵고, 일자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하기 편한 국가’를 만들어서 기업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낸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자 노동의 유연성과 기업의 자율성을 높였지만 결과는 어떠한가? 몇 년간 기업의 투자는 줄었고, 사내 유보금만 늘었다. 기업 내에 쌓이는 돈이 투자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지 않았다. 최근 대기업은 3만여 명의 채용인원을 줄였다. IMF 외환위기 이후 10년 이상의 신자유주의적 처방의 결과는 신빈곤과 양극화의 심화였다.
일자리는 노동시장 보호를 통해 만들어야 한다. 독일은 2005년에 맞은 경제 위기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으로 풀어나갔다. 초기에는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를 권고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사회적 협의를 통해 노동시장 보호에 나섰다. 독일은 이 기간에 노동시장에 모든 것을 투자했다. 재훈련, 재취업 교육을 받으며, 기존 임금의 90%를 취업비용으로 받았다. 시간이 흐르자 노동시장은 안정화가 되었고, 양질의 일자리들이 생겨났다. 그 결과 소비시장이 살아났고, 독일의 시장경제는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독일은 유럽연합의 맹주자리를 굳건히 했다. 물론 독일과 우리는 다르지만 문제의 실마리를 푸는 법은 배워야 한다.
또한 우리의 문제는 기업별 고용체계라는 큰 산이 있다. 일부 기업에게 모든 복지, 임금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다. 정규직-비정규직으로 갈라진 고용체계는 청년들로 하여금 몇 개의 기업, 그 중에서 정규직으로만 가려고 하는 현상을 만들고 있다. 우리 시대 가장 큰 문제인 학벌 문제 역시도 이러한 기업별 고용체계 때문에 생긴 문제이다.
우리는 변화한 노동시장 구조를 경험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노동시장 구조가 기업별로 되어 있는 대신에, 높은 노동시장보호와 산별로 이루어진 상황을 경험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청년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노동시장구조 개선에 대한 노력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때다. '달관세대'라며 청년들을 비아냥 거릴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달관하며' 살게 하는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달관하는 것이 아니라, 자포자리가른 것을 기성세대는 알아야 한다.
* 이 글은 인권연대에 올린 글을 수정한 것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