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덧붙이는 글 두 번째: 한국에서는 잡스 수 없다

1975년 미국의 스티븐 잡스, 2015년 한국의 20대

by 아포리스트

한동안 한국에서는 때 아닌 잡스 열풍이 불었다. 인문학과 기술을 적절하게 결합한 인재에 대한 갈망을 얘기했었다. 실리콘벨리는 자기계발서의 주된 소재였었다. 실리콘 벨리를 통해서 청년세대가 그러한 모험을 해서라도 기업을 만들고, 공무원시험에 도전할 것이 아니라 창의적으로 도전해야 한다고 매일같이 역설한 것이다. 이 참에 '잡스'는 대단한 사람으로 통했고, 잡스와 같은 인재가 한국에서 등장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청년세대를 겨냥냥하고는 헀다. 2013년에는 스티븐 잡스같은 인재를 만든다면서, 문이과 통합 이야기까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잡스가 살았던 시기와 우리가 사는 시기는 다르다. “1975년.” 미국 정보통신 혁명을 이끈 거물들이 태어난 시기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애플의 스티브 잡스, 구글의 에릭 슈미트는 모두 1955년생이다. 다른 미국의 컴퓨터 거물들도 1953년에서 1956년 사이에 태어났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컴퓨터 거물들이 태어난 나이가 비슷하다. 다음 카카오 김범수 사장, 네이버 창업자 이해진 의장, NXC(넥슨지주회사) 김정주 대표도 모두 1966년에서 1968년 사이에 태어났다.

이렇게 컴퓨터 거물이 태어난 시기가 비슷한 이유는 산업 구조적인 이유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컴퓨터 혁명이 1975년에 일어났다. 이 혁명의 수혜자가 되려면 1950년대 중반에 태어나 20대 초반에 이른 사람이 가장 이상적이다. 1950년 이전에 태어났다면 나이가 너무 많아서 새로운 일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10대였다면 학생이란 신분으로 묶여 사회로 진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IT 붐이 일어났던 시기에 컴퓨터를 접하고, 익힐 수 있었던 사람들만이 컴퓨터 분야에서 성공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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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이투뉴스


재능, 노력, 기회 이 세 가지가 적절하게 맞물린 사람들만이 성공을 맛볼 수 있다. 재능과 노력은 개인의 몫이라도, 기회를 만드는 것은 개인이 할 수 없다. 미국의 컴퓨터 거물들이 지금의 그 자리에 있는 이유는 물론 잠자는 시간까지 줄인 그들의 노력과 특별한 재능이 결합됐기 때문이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특별한 기회가 그들의 재능과 노력의 바탕이 됐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스티븐 잡스의 경우 그가 살던 도시가 실리콘벨리로 재개발이 되면서 컴퓨터를 만질 수 있는 기회가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빌 게이츠는 시애틀의 엘리트 사립학교에 들어갔고, 그 학교의 어머니회에서 당시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들어보지도 못했던 ‘시간 공유 컴퓨터 터미널’을 덜컥 설치해주는 행운을 누렸다.

만약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나이가 10살 정도가 많아 1945년에 태어났다면, 이미 안정된 직장과 가정이 있어서 새로운 분야로 진출할 생각을 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한국 청년 세대(15~29세)의 상황은 답답하기만 하다. 청년 세대들이 노력과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이 나날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현재 청년 고용률은 41.7%에 불과하다. 청년들은 그럴수록 자신에게 투자해 ‘스펙’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높은 등록금과 물가 때문에 그럴 수만도 없다. WEF(World Economic Forum)가 발표한 우리나라 국민 평균 소득은 2010년 기준 229개국 가운데 49위 정도다. 이에 반해 등록금은 OECD 국가 중 4위 정도다. 등록금을 감당하며 공부하기만도 벅차다.


그렇게 취직하면 끝이 날까. 그나마 구한 일자리도 비정규직이 절반 이상이다. ‘단군 이래의 최고의 스펙’을 달성할 만큼 근면했던 한국의 청년들은 지금도 고시촌,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또 돈을 벌기 위해 일도 하면서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으려고 노력 중이다. 그러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사회에서 이같은 희망을 붙잡고 있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가. 한국의 청년들의 노력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1975년 청년 잡스가 잡았던 것과 같은 기회를 한국 청년들도 잡을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잡스와 같은 인재는 자유롭고, 정의로운 시장경제 구현이 우선이다. 공정한 거래가 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을 만들어주는 게 먼저다. 문이과의 자유로운 통합을 위해서, 학과별 카르텔을 넘어서 자신이 원하는 학문을 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의 노동시장 구조가 몇 개의 기업에 집중되어 있는 고용체계가 아닌, 산업별로 구성된 체계로 변형될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것이 현재 우리가 해야 할 구조적 개선에 대한 일이다.

* 이 글은 과거 인권연대에 실렸던 칼럼을 수정한 것임을 밝힘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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