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포리스트 May 15. 2017

[임금을 말하다] 가장 문제는 임금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임금이다 

 “꿈은 빚이 따르는 패키지 상품이다.” 청년들을 심층 인터뷰한 <노오력의 배신>이라는 책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저 말의 주인공인 가람은 고등학교 자퇴했다. 학력의 벽은 높았고, 정규직이 될 수 없었다. 중국집 음식 배달, 공사판 등의 비정규직과 일용직을 전전했다. 그러다 방송인으로서의 꿈이 생겼다. 대학에 진학을 하고, 결혼하고, 연애하고 싶은 ‘평범한’ 꿈이 있었다. 그렇기에 대학을 진학하였고, 기자가 됐다. 그러나 꿈을 이룬 결과는 처참했다. 대학등록금과 생활비 등을 기자 월급으로서는 감당 할 수 없었다. 그의 꿈은 빚더미로 돌아왔다. 가람이 얻은 일자리들이 가람에게 필요한 만큼의 돈을 주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시대마다 ‘적정임금’이 다르다. 헌법 제 32조 1항에서는 적정임금과 최저임금을 보장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헌법에서 말하는 적정임금은 인간의 존엄에 상응하는 문화적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임금 수준이다. 이를 위한 입법과 정책을 국가가 책임지도록 헌법이 명시하고 있다(정희철, <기본헌법강의>). 청년들이 과거에 기성세대가 쉽게 못 마셨던 커피를 마신다고 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과거에 못 했던 염색을 한다고 해서 잘 사고 있는 게 아니다. 시대마다 사회, 문화적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임금 수준이 다르다. 

 우리 사회는 적정임금을 청년들에게 못주는 토양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를 보면, 근로자 43%의 월 소득이 200만원이 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저 임금가지고 살 수 없다. 4인 가구 최저생계비는 167만원이다. 청년들이 지난 십 수년 간 투자한 교육비 1억에 가깝다. 결혼에 드는 비용은 억 단위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교육, 문화 수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저임금은 청년들로 하여금 인간으로서 느껴야 할 사랑의 방법인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저임금은 청년들로 하여금 생활공간인 집을 단념하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살도록 하는 임금은 헌법이 말하는 적정임금이 아니다. 

 청년 문제의 핵심은 일자리의 부족이 아니다. 청년 일자리가 부족하다며 야단법석을 떨지만, 통계자료를 면밀히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2015년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 실업률은 4.4%가량이다.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OECD 회원국들의 실업률 평균은 6.6%다. 실업을 그렇게 외치지만, OECD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다. 우리의 문제는 일자리 양이 아니라 질, 특히 임금이다. 한국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고용체계가 갈라져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임금차가 두 배에 가깝다. 국내 니트족의 38.7%가 ‘원하는 일자리가 없어’ 비구직 상태다. 일자리가 없다는 아우성은 정확히는 ‘일할 만한 곳이 없다’는 것이다. 

 적정 임금을 위해서는 ‘동일산업, 동일 임금’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왜 분노해야 하는가>에서 지적한대로, 임금은 시장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조정될 수 있다. ‘동일 산업의 동일 임금’이 합의가 되어 적정임금이 지불이 되면, 우리 사회는 발전할 것이다. 청년 개인들에게 있어서는 사회적으로 적절한 임금을 받아 그 존엄을 지킬 수 있다. 또한 임금격차가 줄어들게 되면, 국가 경쟁력 면에서도 이득이다. 우수한 청년들이 중소기업에 가는 것을 꺼려치 않을 수 있어 강소기업들이 많이 탄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청년 빈곤문제 해결의 핵심은 적정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드는 데 있다. 서두에서 언급한 청년 가람은 꿈을 꾸고 노력하여서 빚쟁이가 되는 절망적인 상황을 겪었다. 가람이 적정임금을 받을 수 있었다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청년들이 꿈꾸고 노력한 결과에 상응하는 임금을 받아야 한다. 청년들이 포기했던 결혼, 저축, 집 등을 모두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열쇠가 헌법에서 말하는 적정임금이다. 청년들의 현재 비참함의 큰 이유는 임금문제다. 인간의 존엄을 지킬 만큼의 임금인 ‘적정임금’은 시대정신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