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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포리스트 May 18. 2018

1936년 루즈벨트는 왜 중도화 전략을 택하지 않았나

극중주의는 성공할 수 없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2018년 1월 28일에 게재된 글입니다. 

1936년 대선 당시 지지율은 렌던이 루즈벨트보다 더 높았다.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은 공화당을 비롯하여서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대가 심했다. 선거전문가들은 루즈벨트에게 '중도화'를 제안하였다. 국민 대통합을 위해서는 뉴딜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루즈벨트는 뉴딜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국민분열이라는 당시 여론의 몰매 속에서 루즈벨트의 재선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였다. 그러나 선거가 시작이 되고 상황은 역전이 됐다. 대공황을 타개할 정책으로 뉴질정책이 끝끝내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고, 루즈벨트는 재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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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랭클린 D. 루스벨트 1936년 선거에서 루즈벨트는 중도화 전략을 뿌리쳤다. ⓒ 위키백과


한국은 때 아닌 중도화 논쟁 중이다.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의 합당과정에서도 '중도정당'에 대한 논의가 나왔다. 이러한 논란은 반년 전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이 당대표 출마할때 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다. 당시 안철수 의원은 당대표로 출마하면서 '극중주의'를 논하였다. 안철수 의원은 당대표 출마연설에서 "좌우 이념에 경도되지 않고 실제로 국민에게 도움되는 일들에 치열하게 매진하는 것, 중도를 극도의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안철수 의원은 다시 한 번 '극중주의'라는 이름의 중도화 카드를 내 보였다. 이를 통해서 떨어진 국민의당과 자신의 지지율을 극대화시키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극중주의'는 불가능한 일이다. 정당정치는 자신이 속한 집단을 위해 일해야 하는 이익집단임과 동시에 이념 집단이다. 한 가지 정당에 여러 이념을 섞을 경우 부작용이 많다. 정당 내 이익집단이 복잡해지게 되면서 정당 내의 분열이 나타나게 되고, 정당의 색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지지자들 결집이 불가능하다. '극중주의'를 통해 지지를 받으려는 계층은 언제든지 지지정당을 바꿀 수 있는 유권자들이다. 그런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겠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모래로 성을 쌓는 격이다. 이른바 '극중주의'가 성공하기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현 상황에서 국민의당이 말하는 극중주의는 분열을 낳고, 합당 역시 무너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현재 안철수가 연대하고자 하는 바른정당은 안보문제에 있어서 국민의당과 이질성을 갖고 있다. 우선, 북한 문제에 있어서 국민의당은 김대중 정신 계승을 표방하고 있다.  전술핵 배치 등을 통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바른정당과는 상당히 다르다. 만약에라도 두 정당이 연대 할 경우에는 안보문제로 분열의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두 번째로 지역이 문제다. 영-호남 갈등은 수 십년 간 한국의 문제였다. 영-호남 갈등이 정당 두 개가 합쳐진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결국 '극중주의'라는 중도화는 또 다시 분열을 낳게 될 것이다. 

과연 이번 지방선거 이후에도, 계속해서 중도화 전략을 택할 수 있을까. 1936년 대선, 절대로 이길 수 없었던 것 같았던 루즈벨트는 자신의 신념을 지킴으로써 지지자들을 결집시켰다. 공화당의 민영화 요구를 '악마의 속삭임'이라는 말로 뿌리친 채, 자신이 믿는 케인지안 정책인 뉴딜정책을 밀어붙였다. 그는 극복이 불가능해보였던 미국 대공황을 극복한 대통령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같은 선거에서 루즈벨트와 맞붙었던 알렉산더 랜든이 선택한 전략이 다름 아닌 중도화였다. 중도화 전략을 냈던 루즈벨트의 대선 상대였던 알프 랜던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18년 지방선거 이후에도, 중도화 전략이 존재할 수 있을까?


http://www.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394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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