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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쌤 Sep 15. 2015

아직도 학교가 좋다

철부지 수학선생님의 좌충우돌 학교 이야기 #3


"1교시에 커피 타먹은걸 어떻게 잊어요."


많은 학교 들이 영어와 수학 수업을 수준별로 진행한다.

시험 점수가 나오면 등수별로 학생을 나누어 상, 중, 하 반으로 나눈다.

2개 반을 합쳐 4개 반으로 나누거나 2개 반을 합쳐 3개반으로 나눈다. 반 마다 인원을 달리하는데 보통 '하'반으로 배정되는 학생의 수는 10~15명 정도로 소수이다.

그리고 나는 보통 '하'반을 담당한다.


우리반에 오는 학생들의 수학 점수의 평균은 "20점"정도.

0점 부터 40점 정도까지의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수학을 어려워 하는 학생들에게 수학을 쉽게 알려주어, 공부에 대한 자신감을 붙여주고 좀 더 나아가 함께 꿈을 찾아주는 아름다운 수업장면만 상상하던 나는, 첫 수업 부터 멘붕이었다.

0점에서 40점의 학생들이 얼마나 큰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 아는가.

점수별로 학생들 특징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물론 내가 경험한 선에서 파악한 것이기 때문에 모든 학생이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1. 수학 점수가 30~40점인 학생들 

공부를 나름대로 하는 친구들이다. 모르는 게 나오면 질문도한다. 모르는게 있다는 것은 아는게 있다는 것! 그러니까 수업을 100% 이해하진 못해도 오늘 수업시간에 한 내용이 뭔지 정도는 알고 가는 애들이다.

그리고 수학을 못해서 그렇지, 다른 과목에서는 80.90점도받는다.


2. 20~30점인 학생들

수업은 이해가 안간다. 그런데 시험을 찍는건 예의가 아닌것 같아 주워 들은 몇 가지 공식으로 몇 문제를 푼다. 그리고 나머지는 찍었는데 운이 좋게 맞은 애들이다.


3. 10~20점인 학생들

한줄로 답을 찍었을 확률이 높다. 요즘은 선택형 문항의 배점이 높아서 서술형에선 점수를 못받았기 때문에 한 줄로 찍었지만 점수가 낮다.


4. 0~10점인 학생들

시험을 보러 오지 않았거나 시험지를 받자마자 자기 시작한 학생들.

또는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찍은 경우다. 신기하게도 답을 다 피해서 찍는 애들이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단 수업에 교과서를 챙겨오는 학생은 3~4명 정도. 

필기도구는 당연히 있을리 없다.


그래서 어떻게든 공부를 시켜야 겠다는 생각으로, 교과서를 복사해 두었다. 그리고 아침마다 출근하면 하는 일이 20자루 정도의 연필을 깎는 일이었다. 2년 차 부터는 요령이겨서 첫 수업 시간에 교과서를 걷어 두었다.  이렇다 보니 초등학교 1학년때 부터 수학을 포기했다는 애들도 수학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나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라나.


신발까지 벗고..아예 맘먹고 자는구나 ㅠㅠ

일단 이렇게 수학공부는 시작을 했는데, 모르는 내용들이 워낙 많다보니 듣도보도 못한 말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는 수학시간이 아마 힘들었을 거다. 특히, 요즘 스마트폰 게임에 웹툰까지 밤새 너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온 나머지 1교시 수업시간에는 정신을 못차린다.


그래서 교실에 커피를 가져다 놨다. 잠도 덜깬 1교시에 수학 수업은 정말 지옥과 같을 아이들을 위해 커피를 타주기 시작했다. 커피를 한 잔씩 들면 일단 무지 조용해 진다. 먹느라고.


그 조용한 틈을 타 오늘의 진도를 쭉 뽑는거다!

커피는1교시 수학수업을 듣는 반에 대한 특권(?)으로자리잡았다. 이렇게 열정을 가지고 수학을 알려주려고 노력했었는데 노력이 헛되진 않았나보다. 


고등학교에 가서 수학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들어보려고 노력을 한다는 얘길 한다.



올해 초에도 고등학생이 된 학생 한명이 3년 만에 연락이 왔다.  그때의 열정적이던 초임 교사를 이렇게 기억해 주니 너무 고마웠고, 다시 '천보은'의 방법대로 힘을 내보자 라고 생각했다.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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