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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저너리 Apr 20. 2018

[에세이 04] 잔잔한 바다에는 좋은 뱃사공이 없다

[하리링의 크루에세이 01]

떨어지고,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한 없이 높았던 내 자존감이, 불합격의 연속으로 뚝뚝 떨어졌다. 아무리 자존감이 높던 사람의 자존감도 한없이 낮춘다는 그런 지위, 취업준비생. 그렇다. 나는 그 위치에 어쩌다 보니 서게 됐다. 1600여 명의 잘난 동지들이 들어가고 싶어 하는, 그러나 한자리 수로 뽑는 ‘기자’가 되기 위해, 어쩌면 자발적으로 취업준비생이란 위치에 섰다.   


이런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내가 과연 기자가 될 수 있을까?’의 고민을 넘어섰던 시기가 있었다. 준비한 지 5개월도 채 안 됐을 때다. 하도 떨어지다 보니, 나 자신이 기자가 돼서 일할 자격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걸 찾는 것도 어렵지만, 어렵게 찾은 좋아하는 일을 자신감 있게 밀고 나가는 것도 만만치 않게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하루하루, 나와 비슷한 장점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보다 무식하고 글 못 쓰는 나 자신을 마주했다. 자존감이 낮아질 법한 일을 처음 겪어보니 맷집이 없었다. 충격을 그대로 흡수했다. 잔잔한 바다에서 가졌던 여유는 사라졌다. 어렵다고 힘들다고 그거 하나 이겨내지 못하고 자존감이 낮아지는 나를 보며, 더 자존감이 낮아졌다. 나 자신을 항상 돌아보고 성찰하는 성격이 과거에는 나를 겸손하게 만들어준 장점이었는데, 자존감이 떨어진 지금의 나에겐 독이 됐다.      


이 위기를 타개할만한 ‘타인의 인정’이 필요했다. 너 정도면 괜찮다는 타인의 인정. 너를 믿고 계속 가도 된다는 허락. 그 허락을 스스로에게 묻는 게 아닌, 다른 이에게 찾으려 했다. 그래서 ‘홧김에’ 인턴 자소서를 제출했다. 고민이 많았던 그 날 딱 하루 안에 고민과 결정과 제출이 이뤄졌다. 그리고 후회했다. ‘아 지금은 인턴 할 때가 아닌데. 공부할 땐데.’ 취준생의 어리석은 결정이었다.      




인턴 딱 2개월 차가 된 지금,


나는 어리석었던 그 결정에 감사하다. 문제의식을 갖고, 현장에 나가보고, 시민과 호흡하고, 그 모든 과정을 하나의 리포트에 영상과 함께 담아내는 그 노동이, 나는 재밌다. 상상 속의 ‘그 일’이 아니라, 내가 직접 ‘이 일’을 해보니 재밌는 게 맞았다. 사실 내가 기자가 돼서 잘할 것 같다는 자신감을 얻은 건 아니다. 여전히 한없이 부족하기만 한 나 자신을 일하면서도 매일 마주한다. 그럼에도 이 일 진짜 하고 싶다는, 재밌다는 확신이 생겼다. 어차피 세상에 내가 완벽하게 잘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거 같진 않다. 그니까 그냥 좋아하는 거 하자. 좀 하다 보면 언젠간 잘하게 되겠지 뭐. 잘하겠지. 잘할 거야. 다시 취준생의 지위로 돌아가도, 치열하게 공부할 동력을 얻었다. 충분하다.     



잔잔한 바다에서는 좋은 뱃사공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 문구를 처음 마주한 순간, 너는 잔잔한 바다를 벗어났기에 좋은 뱃사공이 될 확률이 더 높아졌다고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지금 네가 흔들리는 것은, 곧 네가 성장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해준다고 느꼈다. 그렇다면 기꺼이 흔들려 줘야겠다. 하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겠다. 성장의 기회로 삼아야겠다. 오히려 너무 늦지 않은 나이에 잔잔한 바다에서 벗어나, 깨지고 부딪힐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지 않나 싶다. 거센 파도에 타격을 받아 실패를 맛보고 어리석은 실수를 했어도, 작은 성공들을 쌓아나가면서 나 자신에 대한 믿음도 함께 키워나가야겠다는 지혜를 얻었다.      


잔잔한 파도에만 살았던 사람은 작은 바람에도 당황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작은 바람 정도야 쉽게 처리 가능하다. 타격조차 안 온다. 지금이라도 맷집을 기를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다행이다.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하나하나 나를 성장시켜 나가는 시간으로 만들자는 마음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굉장히 진부한 명언이지만, 역시 명언은 명언이라는 사실을 내 취준 생활을 통해서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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