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의 크루에세이 : 끊임없는 생각의 삽질]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이시스트 앤서니 웰링턴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배움에는 의식의 4단계가 있다."
1번째는 무의식적 무지(unconscious not knowing)이다.
이 시기는 천진한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이며 행복한 상태이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는 상태이므로 무언가를 해야하거나 도달해야 한다는 생각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
2번째는 의식적 무지(conscious not knowing)이다.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부족한 지식을 조금씩 알게 되는 시기이다.
무엇인가를 알기위해서 노력하게 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단계에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3번째는 의식적 지식(conscious knowing)이다.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하여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해서 그 것을 잘 알고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숙련된 상태가 되어 가는 시기이다.
마지막은 무의식적 지식(unconscious knowing)이다.
마지막 경지에 오르는 사람들은 특별하다. 배움에 대해 그 것을 안다는 개념을 넘어서고 직관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행한다.
이 이론에 대해 설명하려고 이 글을 적은 것은 아니다.
이 이론을 말한 이유는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성장통에 대한 배경을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작년 초, UX디자인 분야를 처음 알고 나서 강하게 몰입되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 그 당시를 생각해보면, 내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냥 구글링 해서 나오는 글을 무작정 봤다.
당시에 나는 무의식적 무지 상태였기 때문에 그냥 모르는 걸 보기만 해도 행복했다.
'이런 것도 알아야겠네?' , '아 저것도 알아야겠네?' 라고 생각하고 공부하는게 너무 즐거웠고, 행복했다.
그렇게 무작정 공부를 하다보니, 조금씩, 정말 조금씩 내가 무엇이 부족하고 뭘 모르는구나를 알게 되었다.
UX디자인이 흔히 생각하는 비주얼적인 것을 구현하는 데만 국한되지 않기에 설계적 역량이 중요하단 걸 알게 되었고, 그렇지만 '디자인'은 '디자인'이었기에 내가 생각하는 것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능력도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점점 나에게 부족한 능력들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니, 'UX디자이너로 정말 일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행복했던 시절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되고 두려운 시절이었다.
학창, 대학 시절에 '디자인', '미술' 이라는 분야 근처도 가본적 없었기에, 내가 전공자들처럼 잘 할 수 있을지, 내가 그런 감각이 있는 것인지조차도 스스로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UX디자인에 매료되었던 것은 그 것이 가지고 있는 가치나 철학 때문이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사람을 위해 설계하고, 디자인 하는 것.
이런 가치 때문에, 한번도 접해보지도, 해보지도 않았던 분야이지만 도전해보기로 결심했다.
성격 상 도전 하면 성취 해야했기에, '나만의 차별화 된 무기로 UX디자이너가 되겠어!'라는 다짐을 했고,
UX디자인 영역에서도 내가 좀 더 자신있어 하는 기획적,분석적인 역량을 키워나갔다.
그렇게 열심히 달리다보니, 운 좋게 한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었고 고민은 일단락 되는 듯 했다.
그런데 취업을 하고 나니 욕심과 열정이 더 커지기 시작했다.
' UX분야에 발을 들이겠어'라는 다짐은 '이제 UX도 잘하고, UI도 잘하고 코딩도 잘하는 디자인계의 대통령이 되겠어!'라는 다짐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미친듯이 이것 저것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출근 전 , 퇴근 후에 미리 정해놓은 루틴에 따라 목표를 세우고 공부를 했다.
UX 책, 아티클 읽기 / UI 디자인 습작 / 블로그에 글 쓰기 / UX스터디 준비 / 앱 개발 공부 등
주말, 연휴에도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카페에 가서 공부를 했다.
매일 배워 나가는게 재밌었고, 부족한 걸 채워나간다는 성취감을 느낄 때마다 짜릿하기도 했다.
누군가 '주말에 뭐했어?'라는 물음에 '하고싶은 거 공부했어!'라고 답하고, '열심히 사네~'라는 대답을 들을 땐,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했다.
헌데 배움의 항아리를 채우면 채울수록 , 목표를 달성하면 달성할수록 항아리가 더 커져만 가고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날이 갈 수록 익혀야 할 것, 읽어야 할 것이 늘어만 갔기 때문이다.
새로운 글, 영상, 책 등은 쏟아져 나왔고, SNS 속 사람들의 뉴스피드는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알아야할 소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것도 알아야 할 것 같고, 저것도 알아야 할 것 같고 알아야 할 것 투성이였다.
계속해서 그것들을 수용할 수 밖에 없었고, 매일 매일 읽어내려가기에 급급했다.
그러다보니 '지금 이렇게 하는게 맞는건지, 지금 잘 하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 의구심은 '지금 플랜대로 하고 있으니까, 잘 될거야'라는 합리화로 점점 바뀌기 시작했다.
실체는 아무거나 다 하는 혼종이 되고 있었지만 '세상은 그런 제너럴리스트를 좋아할거야'라는 합리화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걱정과 의구심은 더 심해져서
'아 이러다 이도 저도 아닌 제너럴리스트가 되면 어떡하지?'
'아 일단 디자인 툴이면 디자인 툴, 개발이면 개발 하나씩만 잡고 먼저 익혀야할까?'
'아 그렇게 스페셜리스트로 하다가 주류의 흐름에서 벗어나면 어떡하지?'
라는 모순 덩어리들이 머릿속에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탁월함은 앞으로의 5분이다'라는 짤막한 영상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fHdnn-KSTo
영상에서는 테니스를 연습하는 초보들은 공이 날아가기를 원하는 지점을 신경쓰다보니 매번 헛스윙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헌데 테니스를 잘 치는 사람들은 그 지점이 아니라 라켓과 공이 맞닿는 지점을 본다고, 그러니 눈 앞에 떠있는 공에 집중하면 헛스윙이 아니라 목표물을 맞출 확률이 훨씬 올라간다고 말했다.
영상은 우리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가 아니라 '앞으로의 5분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한 번에 하나씩 충격의 순간에 집중하라는 말을 하며 끝을 냈다.
영상을 보고 지금 내 생활을 한번 돌이켜봤다.
이전에 세워 놓은 질문들:
'내 목표는 무엇인가?',
'내가 그걸 위해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하는가?'
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전에 했던 생각의 흐름들:
'이렇게 하면 돼?' , '이도저도 아닌 제너럴리스트?', '흐름을 쫓아가지 못하는 스페셜리스트?'
을 다시 떠올려보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약 1년 전, 내가 이 분야를 처음 알게 된 순간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그때는 무엇을 아는지도 모르고, 뭘 모르는지도 몰랐기에 마냥 설렘으로 가득찼고, 열망으로 가득 찼었다.
단지 그 상황을 즐거워했고, 앞으로의 5분에 집중하며 나 스스로의 모습을 좋아했었다.
생각해보면, 1년 4개월 뒤에 이 회사에서 UX디자인을 하고 있었을지도 아마 몰랐을 것이다.
그러니 아마 1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봤으면 한 마디 했을지도 모른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해봐!’라고 말이다.
그래서 생각을 고쳐먹기 시작했다.
‘앞으로의 5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에 집중하자.
어차피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이전에 했던 잡생각들을 머릿속에서 조금씩 날려 보내면서, 그냥 눈 앞의 순간에 집중하며 살아가보기로 했다.
물론 불안감은 생길 것이다.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불안감들이 올라와 또 나를 불안해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으로는 잘 되든, 삽질이든 예전보다 우직하게 그냥 가보려 한다.
스티브 잡스가 말했듯, 언젠가 다시 한번 나를 돌아 봤을 때, 결국 내가 우직하게 했던 모든 행동들의 점들이 다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그러니 오늘도 다시 공부하러 가 볼 생각이다.
안녕하세요. Team Visionary의 크루 허승입니다.
제가 작년부터 겪었던 생각의 단상들과 깨달은 점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생각의 삽질을 해오면서 혼자 많이 괴로워했지만, 이제는 좀 더 묵묵히 나가보려고 합니다.
1년 뒤의 제가 지금의 저를 평가할 땐 어떤 말을 할지 모르니까요.
이 글을 보는 여러분 모두 화이팅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