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의 크루에세이 01]
아빠, 나는 탐험가가 되고 싶어.
일주일 전이었던가, 아빠와 보쌈 집 탁자에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했던 말이다. 나는 진심으로 탐험가가 되고 싶었다. 산과 들로 뛰어 돌아다니며, 챙모자와 사파리 복장이라면 진흙탕을 굴러도 행복할 것 같았다. 정말 그런 심정이었다. 보쌈 맛이 썼다.
회사를 다닌 지 반년을 채워가는 시점이었다. 회사 분들은 모두 좋았고, 회사 내 블로그를 관리하는 일은 익숙해져 갔다. 내 졸업을 배려해주신 덕분에 회사와 학교를 병행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생활은 야금야금 행복과 멀어져 갔다. 6개월 간 살이 4kg가 쪘고, 주말이면 병든 닭처럼 자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브런치에 글은 독후감 외에 한 편도 안 올렸다. 뭔가 깨달아서 나누고 싶은 말이 없었다.
물론 방향은 뚜렷했다. 블록체인과 관련된 글을 계속 읽고 쓴다면 나는 블록체인 저널리즘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블록체인 관련 저널리스트로 커리어를 개척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길은 잘 보였다. 그런데 그 길의 끝에 선 내가 안 보였다.
그러다 4년 전에 썼던 일기를 집에 돌아와 열어 보았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겉은 같았다. 속이 달랐다. 내가 되고 싶은 작가는 자유로운 작가였다. 세상을 돌아다니며 내가 보고 느낀 것들에 대해 떠들어 대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글을 써서 벅찬 감동을 나누는 작가.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모르는 일이었지만, 그래서 더 근사하게 느껴진 꿈이었다.
그리고 그 꿈은 그날따라 긴 밤을 내게 선물했다. 마음에는 한 가득 비가 내렸다. 다음 날은 또 회사에 가는 날이었다.
반년 전 이 맘 때, 나는 갈 곳 몰라 헤매는 비행 대학생이었다. 그러다 감사하게도 덜컥,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는 회사에 붙었다. 회사에 나오는 순간순간이 벅찼고, 반겨주시는 회사분들이 다 너무 좋았고, 내가 속해 있는 집단이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부모님과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장손이 드디어 제 역할을 한다며 좋아하셨다. 하지만 그 기쁨은 세 달을 채 가지 못했던 것 같다.
반년 후 나는 이제 그 회사를 나와 새로운 여정을 떠나보려 한다. 앞으로의 매일은 매일 같이 나갈 곳이 정해져 있지 않을 것이고, 나를 반겨줄 사람은 없을 것이며, 내가 속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그리고 부모님은 걱정하시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모르시겠지.
그렇게 나는 다시 탐험가가 되기로 결정했다
25살. 나에게는 어떤 드라마틱한 순간도 찾아오지 않았다. 게다가 이 결정이 아직은 잘 한 결정일지 어떤 결정일지 모른다. 그래도 나는 나 자신만큼은 응원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내 취향과 내 뜻에 맞춰 살아오기보다는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급하게만 살아온 것 같았다. 주관은 생각보다 약했고, 두려움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비저너리 덕분에 멋지고 좋은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고, 나만큼은 내 편이 되어도 괜찮다는 걸 깨달았다. 아직 25살인 걸. 그동안 내 갈 길, 내 취향을 몰랐다면 이제부터 찾아 나가면 되지. 뒤만 돌아보며, 후회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두렵다. 하지만 나는 이 불확실성이 너무나도 좋다. 남들이 다 유망하다는 분야에서 벗어나 또다시 나만의 길을 찾아 헤맨다는 게 누군가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일 수 있다. 가만히 있으면 몸이 붕 떠오르는 로켓에서 떠난다는 게 멍청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난 그 이해가 가지 않고, 멍청해 보이는 길을 택하기로 했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알 수 없다. 반 고흐는 거의 30대가 되고나서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 자살이라고 알려졌지만 타살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단 한 점의 그림만을 팔았다. 900여 개 작품 중에 단 한 점. 하지만 그는 그의 생애 최초로 그 자신의 영혼을 위한 일을 해나갔다. 그리고 몰입의 순간, 그에게 그 순간들은 온전히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는 여전히 이렇다 할 뚜렷한 방향이 없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것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지, 정말 글만으로 벌어먹고 살고 싶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단 한 가지 뚜렷한 건 탐험을 좀 더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는 일이 즐겁고,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는 것만 알겠다.
6개월 동안 책상 앞에 앉아 일 하는 것은 보람되었지만 그 길이 만약 탄탄대로인 고속도로였다면, 지금은 조금 샛길로 빠지더라도 인생이 선사하는 채찍에 몇십 대는 더 얻어맞으면서 그 생생한 느낌들을 온몸으로 받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에 뛰쳐나가 도전하다 보면 언젠가는 아, 이걸 찾으려고 그동안 그랬구나! 하면서 내 업을 찾게 되지 않을까.
또 나는 나에게 솔직해지기로 했다. 최고로 나답게 살 수 있는 방향을 위해서. ‘성공’이 아닌 ‘성장’을 위해서. 반년의 시간을 주기로 했다. 나는 이 시간 동안 그간 내가 관심 있게 지켜봐 온 분야의 책을 완성시킬 것이고, 내가 정말로 좋아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내기 위해-지금은 심리학과 디자인 분야로 좁혀졌으므로,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 나아갈 것이다.
또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과 현직에 있는 실무진들을 만나 질문을 하고 네트워킹을 할 것이고, 소속이 없다고 해서 움츠려 있는 대신 다양한 분야의 네트워킹 기회를 찾아다니면서 항상 나 자신을 채찍질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내 나름대로의 삶을 건설해 나갈 것이다.
이젠 좀 더 나 자신에게 진실한 삶을 살아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은 착한 딸로-물론 속도 많이 썩였지만-살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생각하고, 대학교 때까지는 큰 걱정을 끼칠 일 없이 살아온 게 사실이다. 게다가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세상이 내게 원하는 일들을 적절히 타협하며 살아왔고, 그 안에서 칭찬받는 일은 즐거웠다. 하지만 외부의 칭찬은 칭찬일 뿐, 진짜 중요한 건 나 스스로에게 받는 인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정말 나만의 길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앞으로 해내야 될 프로젝트들은 무궁무진하게 많다.-나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분야에 대해서도 더 알아보고 싶고, UXUI 디자인에 대해서도 더 연구해 보고 싶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분야는 내가 마케팅을 해보고 싶어도, 더 이상 ‘직관’에 의한 마케팅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현장에서 보고 배웠기 때문이고, UXUI 디자인은 내가 ‘사람’과 ‘디자인,’ 그리고 ‘글’을 좋아하는데 그 세 가지를 접점으로 이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두 축을 배워두면 나중에 테마파크를 만들 때에도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허무맹랑한 생각이 들기도!
그렇게 치면 앞으로 읽어야 할 책들도 쌓는다면 만리장성일 것이다. 소속이 없는 채로 지내게 될 반년은 또 어떤 망망대해 일지 모르겠다. 다만 나는 그 시간들을, 그 결들을 나만의 방식대로 채워 살아나갈 예정이다.
그러니 나는 살아남아야 한다. ‘나만의 방식대로 살아도 좋아’라고 혹시 세상 이 구석에 겁내며 움츠려 있을 또 다른 나를 위해. 혹시라도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아냐, 지금 좀 그래도 괜찮아’라고 말해주기 위해. 또 나에게 또 다른 자극을 주고 나를 내 방식대로 성장하게 해줄 멋진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나는 살아남을 것이다.
망망대해를 탐험한다는 것은 분명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타성에 젖어, 내가 좋아하지 않는 분야에 발을 담근 채로 안주해 나아간다는 것은 더 두려운 일이다. 나는 6개월 동안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또 좋아하지 않는 일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었다.
누군가 그랬다. 실패는 멈춰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지 않는 것이라고. 나는 넘어졌고, 다시 일어설 것이다. 그리고 80살 쯔음, 할머니가 되었을 때 다시 나에게 속삭여 줘야지.
그래, 그때 네 선택이 옳았어. 고생했다. 그러니 좀 더 모험해보자.
안녕하세요, 비저너리 크루 소개의 9회차 크루 미셸입니다. 사실 이 글을 쓰기까지 많이 망설였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결정한 것을 나누는 게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소리처럼 들리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요. 또 퇴사를 할 것이라는 건 확실했는데 그걸 말로 표현해내서 현실로 이루어지게 한다는 게 두렵기도 했거든요.
엄마 아빠께서도 여전히 걱정이 많으십니다. 하지만 나중에 보란 듯이 제 분야에서 성공해서 효도해 드리면 되죠! 쉽지 않겠지만, 어려운 길을 택한 건 제 자신이에요. 그래도 믿고 기다려주신 것에 대한 보답을 나중에 더 크게 드리는 게, 저 혼자 괴로워 하며 질질 짜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꿈꾸는 미래는 이렇습니다. 20대 동안 미친 듯이 깨지고 헤매며 탐험하다가, 30대쯤 안정기에 접어드는 거예요. 좀 더 구체적으로 가볼까요. 부모님의 인정을 받기보다 제 스스로의 인정을 받아서, 제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보란 듯이 5년 안에 성공해 내는 거예요. 여기서 성공의 기준이란, 제가 번 돈으로 가족들이 모두 다 휴양지로 여행 갈 수 있을 정도예요. (그리고 이건 비저너리에 강연가가 되고 싶다는 멋진 꿈을 가진 친구들 덕에 생긴 꿈인데) 저 또한 강연을 다니는 사람이 되는 건데요, 제 부끄럽고 못났던 과거까지도 건강하게 다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실패가 많았고, 주관이 약했고, 서둘렀어도 괜찮다, 자기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 가장 중요하다고 일깨워주는 사람이 되어서 더 많은 청춘들이 모험에 오르도록 돕는 거예요.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싶지만, 공공장소에 대고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샌가 그 길에 올라있게 되더라고요. 그러니 저는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 모두 더 적극적으로 떠들고 다니면서, 절대 포기하지 말아요.
혹시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저와 같은 상황이라면 함께 싸우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혼자가 아니에요. ‘나만의 길을 찾는 걸’ 포기하지 맙시다. 함께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