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이의 크루에세이 03]
추워진 날씨 탓일까, 요즘 들어 아침마다 침대 밖을 벗어나려 유난히 노력한다. 샤워 후 으스스 떨리는 몸을 진정하려 남아있는 물기를 재빠르게 수건으로 닦는다. 점심시간마다 따뜻한 국물 음식이 먹고싶고, 동네 마트엔 종류별 호빵이 한가득 쌓여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계절은 가을을 지나 겨울에 들어서고 있다. 매년 이맘때쯤 스스로 세운 계획들이 잘 지켜졌는지 점검하며 마무리했지만, 취업 준비생이었던 올해는 '취업'이라는 큰 목표 하나로 헤매든 헤매지 않던 어느 목적지에만 잘 도착한다면 '임무 완료'라고 생각하며 따로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어쨌든 날마다 '출근'이라는 것을 하고, 총 쏘는 법을 익히자마자 각개전투하는 느낌으로 릴리즈돼야 하는 화면들을 열심히 쳐내면서 정신없이 직장 생활을 해나가는 중이다.
매년이 힘겨운 한 해(먹고살기 힘들다.. 쩝)로 기억되지만, 올해는 도통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길을 걸어와서 그런지, 좋아했던 노래와 영화 그리고 짬짬이 다녔던 여행들까지 더 진하게 기억되는 한 해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겠지만!
tmi 타임! 올해의 를 뽑아보았다!
첫번째로 올해의 곡은(두둥!) 바로 영국 출신 남성 듀오인 Pet Shop Boys의 I'm Not Scared라는 곡이다. 내가 몸담은 분야는 디자이너인 '나'보다는 '사용자'의 요구와 이야기를 귀 기울여야 하지만, 사실 난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작가주의' 정신을 더 좋아한다. 평소 다양한 주제를 자신만의 이야기로 풀어낸 회화, 조각, 텍스타일, 공간 등을 찾아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도 하이패션 브랜드의 런웨이 영상을 챙겨보는 것을 좋아한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여러 하이패션 브랜드 중에서도 고전의 정적인 모습과 현대 여성의 아우라를 매력적으로 매치하는 샤넬을 선호하는데, 런웨이만을 생각하면 2015년 S/S 컬렉션이 제일 베스트라고 생각한다. 압도적인 세트장과 '여권 신장'이라는 큰 주제 아래로 볼드하고 과감한 패턴의 사용과 매니쉬한 실루엣의 의상들!(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다. 너무 좋다) 그리고 너무나도 찰떡궁합으로 어울렸던 펫샵보이즈의 음악까지!
조금 뻥을 보태서 몇십번은 돌려본 것 같다.(Gisele Bundchen과 한 손에 아이폰을 들고 시위대와 함께 피날레를 장식하는 칼 아즈씨까지...너무 재밌다)
여튼! 컬렉션을 통해 접한 노래만큼 들을때마다 모델들의 당당한 걸음걸이가 생각났고, 용기와 도전이 많이 필요했던 올 한해 알게 모르게 마인드 컨트롤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음악이다.(지금도 작업할때 마다 열심히 듣고 있다. 그리고 런웨이 쇼는 돌려봐도 돌려봐도 정말 질리지 않는다!!!!)
사실 아가씨는 2016년도 영화다. 배운 변태 박찬욱 감독의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역사적으로는 아픈 시대이지만 동서양이 뒤섞여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시대라는 이유만으로 아가씨는 개봉전부터 너무나도 기대했던 영화였다.
그래서일까 아끼고 아끼다(?) 2018년이 되서야 보게 되었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스토리! 영상미! 사운드!까지 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완벽한 나의 취저 영화였다.
사실 중,고등학생때 꿈꿨던 나의 장래희망은 광고디자이너, 프로덕션 디자이너였다. 가장 작업해보고 싶은 주제가 바로 아가씨와 같은 시대상 이였는데, 어둡고 침침하고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분위기를 좋아하는 나로선 아가씨의 영상미 하나로 충분한 영화였다.(물론 다른 것도 너무 좋았다. 지금도 글을 쓰면서 아가씨 OST를 듣고있다.) 특히나 사진 속 김민희가 입고 있는 초록색 드레스는 영화 '어톤먼트'의 여주인공인 키이라 나이틀리가 입었던 드레스를 연상 시켰는데, 시종일관 어두운 분위기에서 은은한 분위기를 마음껏 뽐내주었다.
정식으로 한번 보고, 의상 보느라 한번 더 보고, 아가씨가 사는 집과 소품을 보느라 한번 또 보고, 사운드 집중해서 듣느라 한번 더 봤고, 모든걸 다시 캡쳐하느라 다시 보고...올해 몇번을 돌려봤는지 모를 영화이다.
금년에 살이 찔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로 바로 이 하리보의 공이 매우 크다. 때는 3월 초, 누구나 다 아는 이유를 그럴듯한 이야기로 포장하여 하루종일 글만 써내려가니 머리에 열이 뻗쳐서 뭐라도 해야 분이 풀릴 것 같았다. 하지만 어디 갈 시간도 없고, 할 수 있는건 입 속에 단 것들을 끊이지 않게 제 때 공급해 주는것 밖엔 없었다. 그 중에서도 쫄깃한 식감을 자랑하는 하리보를 질겅질겅 씹고 있노라면 순간적으로 도는 당과 함께 스트레스가 잠시나마 풀렸다.(국산 젤리는 쫄깃하다기보단 말랑하다..T.T....) 그 당시 하리보는 떡볶이를 능가할 정도의 소울푸드였다.
특히, 하리보중에서도 스타믹스를 제일 좋아했는데, 계란후라이, 반지, 곰돌이, 콜라, 하트까지 총 5개의 종류가 섞여있었다. 그 중에서도 계란후라이와 반지 모양은 정말 쫄깃한 식감을 자랑한다. 원서 접수 기간이 끝나고 젤리도 함께 빠이해으면 좋으련만, 현재 내 방 책상위에는 젤리만 쌓아놓는 작은 박스가 있을 정도다. 노트북이건 회사 컴퓨터 앞이건 질겅질겅 씹으면서 작업하는 버릇은 언제 버릴 수 있을까 (그만 먹으란 말이야.....)
금요일 저녁, 7시가 되자마자 아이맥 전원을 종료하고 부산행 기차가 기다리고 있는 수서역으로 향했다. 부산에 도착한 밤부터 총 3일간 8편의 영화를 보았다. 한 창 작업에 찌들었을 무렵 아는 동생에게 '언니 부국제..'라고 카톡이 오자마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저 가겠다고 대답을 했다. 그 무렵이 영화제 시작 일주일 전이라 숙소가 남아있을리....없었지만, 콩레이가 온다, 강력한 태풍이다, 야외무대가 취소됐다 등등 기사가 쏟아지면서 안 보이던 숙소 자리가 한 둘씩 나기 시작했다.
이 잡듯 이리저리 리서치한 결과 나름 괜찮은 독실 게스트하우스를 각각 1박씩 예약할 수 있었고, 영화표도 아침 출근길에, 업무 중에(...), 점심 시간에 양도표로 하나씩 건져 올릴 수 있었다. 급하게 준비한 것 치곤 꽤 괜찮은 성과라며 룰루랄라 부산으로 향했다. 결과도 정말 대.만.족!!!
아 이러면 죽는거구나. 이런게 죽을 수 있는 바람이구나를 느낀 토요일 오전만 제외하곤(나름 애정을 갖던 5년 된 핫핑크 우산이 1분도 체 안되 날아가던 순간, 살아야겠다며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트 필름을 큰 스크린으로 한가득 보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새벽내내 술을 마시고, 정말 3일 내내 영화 보자! 술먹자! 바다 보자! 고기 먹자!의 행복의 연속이었다.
부산과 확연히 다른 서울의 밤공기 온도를 느끼기 전까지 '으아아아아! 서울 올라 가기 싫다. 왜 일요일밤엔 미드나잇패션이 없냐!!'며 칭얼거리며 현실을 부정했다. 올해 부국제는 운영 정상화와 더불어 영화/바다/술 이 세가지의 완벽한 조합으로 해외여행 못지않게 끝장났던 여행지였다.
그 밖에도
(그냥 내가 좋았던) 올해의 [드라마] - The good place
(그냥 내가 좋았던) 올해의 [책] - 데미안
(그냥 내가 좋았던) 올해의 [Tea] - TWG / silver moon tea
(그냥 내가 좋았던) 올해의 [브랜드] - margaretho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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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1년의 기억을 정리하기 좋은 것 같아 따로 종이에 스케치하듯 적어놔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남은 2018년을 어떻게 보낼까?
올해의 일을 더듬어 보니 자연스레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고민도 들었다. 사실 아직 2018년은 2달이나 남아있다. 심각한 목표는 아직 고민해보지 않았지만, 일단 올해 겨울 내가 이루고 싶은 목표는 바로 미디스커트와 앵클 부츠의 조합이다. 기필코! 이렇게 신어도 저렇게 신어도 괜찮은 찰떡같은 앵클부츠를 찾아내서 미디스커트와 함께 주구장창 신고 다닐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숙제같은 작업들(먼산....) 아직 세세하게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결심만으로는 100번도 끝냈을 작업리스트들을 정리하여 제발 해가 지나가기전에 시작해 보는것도 좋을 것 같다...(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절절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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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i가 한 가득 이었던 글이라 도통 어떻게 끝내야 할지 고민이 된다. 아무쪼록 이 글을 읽는 분들이 계신다면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기 전에 가볍게라도 올 한해를 돌아보기를 바란다.
혹시나 원했던 목표를 이루지 못해도 괜찮다. 아직 우리에겐 2달의 2018년이 남아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