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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저너리 Oct 28. 2018

[에세이 31] 나는 왜 '대기업'을 그만두었는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는 방법'


안녕하세요 :)

지난번 [에세이 11] '프로불편러' 설명서(https://brunch.co.kr/@visionary0115/21)로 

인사드렸던 비저너리 크루 '홍자까'입니다.

편의를 위하여 '문어체'로 작성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D


하쿠나 마타타 : 문제 없어!


지난주 크루 에세이를 발행한 정인 크루의 용기 있는 고백이 담긴 글을 보며,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관련 글 - *[에세이 30] 나는 아직 행복하면 안 될 것 같아 (https://brunch.co.kr/@visionary0115/42)


'홍자까, 지금의 넌 행복해?'

우선 지금의 내 대답은 다행스럽게도 '그렇다'이다.

그러나 불과 얼마 전인 작년 말일까지의 나는 많이 불안하고 불행했었다.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 하는 대기업인 S그룹, 그곳에서 나는 자발적으로 퇴사를 했다.

그리고 지금은 프리랜서로 사진을 찍으면서 생활을 연명하고 있다.


2017년 3월 31일, 퇴사 날을 기억해보자

퇴사 날, 마지막 그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1800여 명의 임직원 중 그동안 업무를 함께 한 다른 팀 동료들에게 인사를 하며, 마지막으로 팀장과 센터장에게 서명을 받고, 인사팀에 사원증과 법인 카드까지 반납하고 느낀 두려움이 아직도 생각난다. 복지는 기본에 급여도 좋고, 성과급까지 나오는 데다가 그룹에서도 '신수종사업'으로 사활을 걸고 만든 회사이기에 미래도 꽤 괜찮았었다. 수많은 혜택들을 다 버리고 4월 15일부터는 최저시급도 받지 못하는 '웨딩 스튜디오 어시스트'를 하러 출근을 앞두고 있었고, 인생에서 결혼처럼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큰 선택중 하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많이 무섭고 두려웠다. 회사 소속이라는 사원증을 목에 걸고서 3년 3개월을 자유롭게 다니던 내가 모든 것을 반납하고 가지고 온 등산용 배낭에 짐을 챙기고서 출입 게이트를 마지막으로 나가면 이제는 외부인이 된 것이다! 


나가면 바로 행복할 줄 알았다......ㅎ


맞지 않는 옷을 입었던 '나'

나는 세포를 다루고, 실험하는 학문을 배웠고, 이 전공을 살려 제약회사의 A팀에 들어갔었다. 그러나 직접 업무를 해 보니 그 업무는 심적으로 내게 너무 큰 부담을 주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지금이야 나 자신이 불편함을 찾고, 이를 개선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알지만 그때는 몰랐었다. 당시 A팀에서의 업무는 환자에게 주사형태로 주입되는 약을 생산하는 것이니 만큼 생명과 직결된 일이라 모든 일 하나하나가 SOP라는 표준작업절차(Standard Operating Procedure)에 따라서 이루어지며, 이 일들은 MBR(Manufacturing Batch Record)이라는 문서에 시간과 날짜, 실제 투입량이나 진행된 시간 등 모든 것들이 다 기록되어야 하는 일들이었다. 또한 공정 중 일어나는 작은 실수라도 세포를 오염시킬 수 있으며, 혹여나 세포가 오염이 되면 수십억, 수백억을 들여 키운 세포들을 모두 다 폐기처리를 해야 하는 중요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만큼 중요도가 크다 보니 공정과 연관되어 개선할 점을 찾아서 개선하고 싶어도 모든 것들이 실험으로 검증되어야 하며, 이 검증 데이터에 대해서도 허가를 받아야 변경이 진행될 수 있었다. 


정해진 절차와 규정에 따라 일하는 것은 'Why?'라는 생각을 참 많이도 하는 내게 큰 답답함을 주었고, 워낙 좋은 동료들과 일을 하다 보니 혹시라도 '실수하면 동료들과 회사에게 큰 피해를 줄 수도 있다'라는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다른 팀으로의 변경을 요청했었다. 참 감사하게도 팀 변경 이전에 에너지 넘치고 긍정적인 미국인 파트장님 밑에서 좋은 동료들과 함께 했었는데 변경한 프로젝트 팀인 B팀에서도 존경할 수 있는 팀장님을 만나 정말 즐겁게 회사 생활을 했었다. 당시 팀장님은 아래 이미지와 같이 위임과 신뢰, 그리고 솔선수범하는 모습으로 리더의 참모습을 보여주었었다.


보스와 리더의 차이 = "가라!"와 "가자!"의 차이


그러나 회사 생활은 늘 그렇듯이 '규율' 위에서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하며 돈을 받는 곳이기에 프로젝트 종료 후 팀이 해체되어 나는 또다시 다른 팀인 C팀으로 가게 되었다. 그곳은 한 명이 하나의 일을 맡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이 한 조로 구성되어 공통의 일을 하는 곳이었다. 먼저 C팀에 있던 동기와 입사동기라는 이유로 나는 아는 것이 하나 없음에도 불구하고 '선배' 대우를 받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하겠지'라는 나태한 마음으로 가득 찼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함께 일하는 후배가 현재 업무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여 팀 변경을 요청하자 이때 내부의 불만을 확인한 센터장님께서 팀 변경을 원하는 또 다른 사람이 있다면 회신을 달라는 전체 메일을 보냈었다. 당시 공통 업무라는 환경을 바꿔 나태한 마음을 없애고자 나는 또다시 팀 변경을 요청했고, 그렇게 D팀으로 가서 다시 새로운 시작을 했다.


그리고 D팀에서 나는 '리더'가 아닌 '보스'를 만났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 중 상사로 있었던 이 보스는 업무의 세부사항부터 심지어 화장실을 가는 것까지 궁금해하는 Micro Management를 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말하는 것은 '지시'이며, 거기에 대해서 'Why?'라는 생각을 가지는 행동은 곧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끼는 사람이라 이전까지 단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프로 불편러'의 성향으로 기존의 방법보다 더 나은 방법을 찾는 것에 쾌감과 행복을 느끼는 나라는 사람이 생각해서 제안을 말해도 늘 거절(Reject) 당하니 어느 날은 떠오른 아이디어에 대해서도 말하기 이전에 '말해봤자 뭐해, 어차피 씨알도 안 먹힐 텐데'  라며, 나 스스로가 변한 것이었다.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도 추궁을 당한다고 느끼니 어느 순간 그렇게 물들어간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그때 존버를 했었더라면...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다른 회사로의 '이직'은 답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고, 취미 었던 '사진'을 직업으로 삼아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이 들었었다. 그리고 그때쯤 가볍게 알고 지내던 웨딩스튜디오 대표가 올린 구인 공고를 보자 마치 '사진'을 하는 것만이 Micromanager를 벗어나 행복을 찾아가는 탈출구로 보였다. (그때 탈출하지 말고, 존버를 했었어야 했을까)


영화 '행복을 찾아서' 중



'난 퇴사할 수 있어!' 마음을 먹으니 삼고초려로 세 번이나 나의 퇴사를 만류해 주시던 팀장님도 결국 포기하고 퇴직원에 서명을 해 주셨다. (퇴사 후 '우리사주'가 그렇게 상한가로 향할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탈출구라 믿고 들어간 웨딩스튜디오에서는 고작 4개월을 하고 그만두었다. 비록 짧은 4개월이지만 내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 지 깨닫게 되었다. 문제라고 인식이 되면 어떻게든 그것을 다시 반복되지 않게 만드는 것에 쾌감을 느끼고, 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고객 중심의 사고와 행동'이 뼛속 깊이 박힌 사람이었다. 예를 들어 지도 검색 시 상호명을 검색하면 현주소가 아닌 옛 주소가 나오는 일이나 간판이 없어 신랑 신부가 제대로 찾아오지 못하고 옆집이나 뒷집을 가는 상황들 이런 것들에 대해서 '괜찮은데 이게 뭐가 문제야?' 생각하는 '척'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내 사업체가 아니기에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나는 이러한 내 성향을 인지하고, 내 사업체를 만들고자 창업 관련 프로그램에 참여를 하고 있다. 며칠 전 참여하고 있는 프로그램에서 검사한 내 성향은 내가 왜 회사와 웨딩스튜디오에서 그토록 답답함을 느끼고 힘들었었는지 보여주는 결과였고, 이제야 제대로 방향을 찾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사회혁신 창업교육 전문 기관인 '언더독스'의 성향분석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는 방법'이란 결국 경험을 통해서였다. 지금에서야 그때 잘못 선택을 했었고,

시간도 버리고 몸도 버리고, 에너지도 버리는 (당시 사귀던 여자 친구랑도 헤어지는) 길이었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닥치고 회사를 다녔겠지만 그때는 퇴사 후 스튜디오에 들어가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것이라고 착각했었다. 그때의 착각을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지금, 이 순간의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알기에 부지런히 달리는 중이다. 이 긴 글을 읽어준 당신이 혹여라도 그때의 나처럼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원망하고, 마음을 쓰고 있다면 훌훌 털고, 최고의 선택으로 바꿀 수 있도록 지금 파이팅! 하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안다. 그때는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해서 선택한 선택이었고, 다시 돌아가게 된다더라도 마찬가지로 최선의 선택이라 착각할 것이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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