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 몰츠의 성공체험; 자아를 깨워라
축구장에서 퇴출
여기 뉴저지에 온 지 이, 삼 년 지나니 직장 생활은 순조로웠다. 봉급도 또박또박 통장에 잘 꽂히고 덤으로 분기마다 자기 회사 주주식까지 주고 있었고 가족은 모두가 건강하겐 아무런 탈 없이 잘 지나고 있었다.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는 항상 상위를 달렸고 회사 안에서도 내 성취를 인정받고 있었다. 해서 이렇게 안전된 김에 집도 더 좋은 곳으로 옮겼다. 근데 기분은 뭐가 찜찜했다.
마흔이 갓 넘자마자 몸에서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고혈압에 고지혈증이 왔다. 이건 우리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고질병이었다. 의사는 약을 처방해 주며, 이걸 한번 먹으면 죽을 때까지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운동을 너무 안 한 게 화근이었다. 그래서 운동 2002년 월드컵에 감동이 될 때쯤 조기축굴 시작했다. - 월드컵을 하면 한인들은 한꺼번에 모여서 대형 TV로 모인다. 한 500명 또는 1,000명 정도 들어가는 홀 빌려서 꽹과리 치고 장구 치면서 본다. - 그때처럼 여기 태어난 애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애국 교육에 없었다. 징~한 시간들이었다. 아빠가 좋아하니 애들은 더 좋아했다. 그래서 축구로 몸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초기축군 출근 전에 아침 일찍 나가 땀 한번 흘리고 집에 돌아와 샤워하고 나면 아주 정확히 아침 출근 시간이었다. 한 3년간 했을 때 조기 축구회장이 넌지시 골키퍼를 보시는 게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 내가 그 양반 애들의 선데이 스쿨 교사라서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아~ 이 사람은 축구의 신에 경지에 올라간 사람이었다. 아니 공이 허공에 오면 몸을 공중에 풍~ 하고 떠있어도 몸의 방향을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꿔 골을 만드는 우리 편 골잡이였다. 아마 내가 볼 때 그 당시로 우리나라에서 축구 잘하는 사람이 박지성이하고 이 사람뿐인 듯했다. 여기 번쩍 저기 번쩍 자기가 볼 패스하고 가끔 자기가 받아 찬다. 조기 운동이 끝나면 늘 우린 가던 베이글 집에 가서 아침을 먹고 출근한다. 근데 나보고 지금 다른 포지션을 찾아보잔다. 우측 풀백이 갈 수 있는 곳은 골키퍼 밖에 없다. 자존심이 상한 게 중요한 게 아니 자존을 지키기 위해 골키퍼를 1년 반을 더했다. 그 이후에도 서너 번 다른 동네와 친선 게임할 때 골을 예상치 않게 자주 먹었다. 그 이유는 나는 상대가 볼을 차는 지점쯤에 정확히 눈을 일단 감는 버릇이 있었다. 근데 상대 스트라이터들은 꼭 내 약점을 알아서 내가 눈을 찔끈 감고 있을 때 골을 넣었다 쩝! 몇 번 친선 게임하다가 이번에 눈치 보여서 골키퍼에서도 자진 탈퇴했다. 그 후 할 일이 없으니 물이나 떠주고 베이글 집에서 베이글 값 지불하고 영수증 정리하는 총무 역할을 했다. 한 6개월 했나? 이게 아니지 싶었다. 그래서 총무의 자릴 접고 은퇴를 선언했다. – 나중에 보니 그 당시에 조기 축구 멤버들이 청와대 무슨 실장, 어디 명문대 교수, 어떤 이는 방송국장 되어서 이름이 매일 방송도 나오더라 – 그리고 난 다음 몇 달 푹 쉬었다. 그리고도 이 축구회장이 가끔 전화하면 우린 서로 만났다. 그러다가 축구장에서 볼 수 없었으니 한동안 뜸하게 연락이 끊어져 버렸었는데...... 그 기간이 한 2년쯤 더 지났을까? 어느 날 갑자기 이 양반의 부고장이 날아온 거다. 나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히
"이 X 원"
이라고 쓰여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체력 하면 이 사람 빼고 다 비실 비실 하던 사람들뿐이었는데 이 사람이 하필....... 난 솔직히 확인하려고 장례식에 갔다. 꽃을 들고 들어갔더니 분향 냄새도 있는 진정한 장례식 분위기였다. - 미국엔 죽은 사람 얼굴을 보내 관 뚜껑을 얼어서 조문객이 볼 수 있게 해 논다- 내가 그 사람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다.
“아~ 관에 누워 있는 시신이 오~(떨려라) 그 사람이었다. 이럴 수가!”
운동하는 좋아하는 사람들은 하나 안 좋은 것이 땀 흘린 운동 후엔 꼭 허리끈을 푼다. 운동했으니 이 정도 술은 하면서 마시는 사람들, 이 정도 담배는 하면서 피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인간이 얄팍한 존재라서 그렇게 하면 큰 피해가 없을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 사람도 이리하다가 아마 콩팥 장기가 안 좋은 진단을 받았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일시적으로 보조 장비를 몸에 부착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근데 워낙 평상시 건강한데 처음 아파보니 몸이 근질근질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공겨롭게도 살던 집에서 다른 좋은 곳으로 이사를 한 달 정도 남겨 놓았던 모양이다. 평상시에도 부지런한 사람이 너즈레이 널려 있는 꼴을 못 본다. 그래서 가벼운 것부터 살살 나르기 시작했고, 이게 화근이 된 것이다. 콩팥은 피가 마지막으로 걸러지는데 그 필터 역할을 제대로 못하니 심장이 두 배 세배로 뛰어야 하는 거다. 그러니 펌프가 배의 용량으로 작동하니 펌프가 타든 지? 혈관이 파손되든지? 양단간에 절단이 나는 거다. 결국 이렇게 되어서 이 양반이 절단이 난 거였다. 우린 가끔 만날 땐 건강에 좋다는 건 어디서 그런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지? 인도산 "ㅂ"로 시작하는 것부터 필리핀인하는 불법인 "ㄱ"으로 시작하는 것까지 안 가리고 먹으러 다녔다. 비즈니스도 동부지역에 너무 크게 하는 사장이었고 아주 성격도 좋은 사람이었다. "박 선생님 "ㅋ" 먹으러 가시죠?"란 전화가 이젠 없다. 생면부지의 땅, 미국 와서 그리도 성공하고 싶어 했던 나의 축구장의 우상도 이렇게 실패해 누워있었다.
맥스웰 몰츠의 상상팁 ; J의 산타기
나는 나를 괴롭히는 문제가 발생하면 집 뒷산을 맨몸으로 뛰어 올라간다. 몸을 혹사시키면서 문제가 해결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빠르게 뛰어 올라간다. 묘한 일은 올라갈 때 스트레스로 괴로움을 당하던 정신적 고통이 몸으로 완전히 이전될 때면 정신은 맑아진 만큼 몸은 거의 죽을 맛이다. 거칠어진 숨소리만 있을 뿐, 나의 몸은 이미 죽음의 임계점을 넘은 상태이다. 정상에 오른 후엔 다시 숨을 고르기가 끝난 후에 다시 내려온다. 그때쯤이면 몸도 맘도 편안해지지만 산밑에 문제는 여전히 버티기고 있다. 그런데 참~이상한 일이 …… 더 이상 그 문제가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정신이 강건해져서인지? 저 산밑에 쭈그리고 있던 골리앗이 더 이상 상대 못할 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해 볼만한 적수로 바뀌어 있다. 정신이 강건하니 그 문제 바라보던 혼의 눈높이도 달라진 걸 느낀다. 이건 산밑에서 올라오기 전부터 바라던 현상이었다. 나는 동시에 육과, 영과 혼을 연결되었음을 증명하는 실험으로 J의 산타기라 칭한다. "이 아이디어는 [Maxwell Maltz]의 [Psycho Cybernetics]에서 발전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