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 몰츠의 성공체험; 자아를 깨워라
미국샤핑; 블랙프라이데이
티파니의 아침 ( Breakfast at Tiffny's)은 1961년도에 미국의 로맨틱 영화이다. 오드리 헵번의 묶어 올린 헤어 스타일이 인상적이었다. 그 영화는 소박한 서민인 오드리 헵번이 상류층을 동경하는 걸 그린 영화이다. 한 장면이 오드리 헵번이 베이글을 한 입에 물고 그 보석상 앞에서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었는데, 뉴욕의 상류사회에 진입을 갈망하면서 하류층일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삶을 갈등 있게 인간적으로 묘사했다 해서 그 당시 5개 아카데미상을 휩쓸언던 영화이다. 난 옛날 생각이 나서 근자에 다시 DVD로 돌려 보았는데, 이런 영화가 지금 나온다면 에미상이 아니라 그 흔한 글로벌상도 못 받을 거란 생각 했다. 아마 사회가 불안정한 급성장으로 졸부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면 서민으로 자란 미모의 오드리 헵번정도라면 한 번쯤은 고위층의 꿈을 꿀만한 일을 살케스틱하게 묘사했다. 그런데 사회가 안정적 성장이 계속되면 돈이 대한 가치기준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여기 돈이 없어서 평생 벤츠 한번 타지 못했고 그 박봉에의 평생 교직 생활한 꽁생원 선생님이 있다고 가정하자. 나의 형의 이야기다. 그는 지금은 은퇴 연금 나오고 늙은 70세까지 자식 농사 잘 시키고, 자기 건강도 잘 지키고, 근자엔 손자 녀석들 키우는 재미로 산다. 근데 돈 많던 그 떵떵거리는 친구들은 지금 지병으로, 인기 많은 어떤 이는 음독자살에, 명에 많은 어떤 인, 아~하루아침에 별 볼 일이 철장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러니 누가 봐도 꽁생원 선생님의 인생 제일 낫다라고 해석될 수밖에 없다. 지금 미국이 그렇다. 유명 브랜드를 쫓질 않는다. 자기 몸보다 커다란 한 잡표를 입고 어디든지 자신 있게 활보를 한다. 나도 인터뷰할 때만 정장을 입었고, 대개 경우엔 평상복차림을 한다. 그러니 결혼 전에 입었던 정장이 아직도 옷 장에 걸려있고 약간 몸에 불긴 했지만 그런대로 조상님 덕분에 아직도 그 옷들이 입을 만하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상사에게 불러 가, 그 평평의 의자에서 꾸지람 듣고 있을 때와 쇼핑할 때다. 정작 샤핑을 하는 맘은 바쁘고 뭘 살 것인가? 어떤 모양새를 정할 것인가? 머릿속에 정신없이 바빠야 한다. 그런데 이런 부질없는 일에 따라간 미국 남편들은 그냥 우둑히 서 있기만 하다가, 이걸 사야 하는 건지 저걸 사야 하는지 감도도 못 잡는다. 마지못해서 카아트( Cart) 옆에게 줄로 묶여 놓은 강아지처럼 그냥 서있는 미국 남편들을 보면서 이게 아니다란 생각이 든다. 그냥 돈 만 주면 부인이 알아서 사 오는 거다. 또 그리고 사온 넥타이가 맘에 안 들어 불평하면
"이게 더 멋있어요"
라고 해주면 아내 말에 뿅 가서 그런가 보다 하고 또 닳아질 때까지 메고 다니는 거다. 그런 사핑에 대해서 독특하지만 무딘 개념을 가지고 있는 내가 혼자 쇼핑할 때, 사뭇 그 양상이 남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사냥하듯이 샤핑을 한다. 샤핑 입구 들어서기 전에 품목만 정해 놓고 가장 이 협소하고 남들이 잘 안 다니는 루트( Route)를 사용해서 어떡하면 짧은 시간 안에 끝내고 빨리 나오는가? 에만 오로지 관심이 있다. 다시 말해 사핑은 사핑효율로 결정하고, 샤핑효율은 들어간 시간과 나온 시간으로 측정한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끝낸 후에 나머지 시간을 백화점 길 건너 아이스크림집에 앞에서 마치 백화점만 한 공룡을 쓰러뜨린 것 사냥꾼처럼 그 백화점을 쳐다보면 팝빙수를 먹고 있는 나라야 직성이 풀린다. 그럼 팥빙술 먹는 그 시간하고 샤핑하는 시간 하고 뭐가 그리 다른 걸까? 쉽게 풀이하면 샤핑에 그 의미를 전혀 두지 않는 거다. 그러니 그 많은 시간을 소진해 가면서 흥정까지 다해서 가격까지 깎아놓고 그냥 돌아서는 사람들을 볼 땐 나로선 정말 이해가 되질 않는다.
이미 얘기했던 바와 같이 미국 사람들은 브랜들 쫓지 않는다. 그러던 미국 사람들도 무섭게 샤핑몰로 튀어 나는 날이 있는데, 그게 블랙 프라이데이( Black Friday; 추수 감사절 다음날)이다. 이 블랙 프라이데이 아우트레트( Outlet; 이곳은 명품 매장들이 군집해 있는 샤핑몰)이 무려 이 블랙 플라이데이랑 크리스머스 샤핑이 미국의 연초에 세일에 60~70퍼센트를 팔아 치워 버린다. 그리고 보통 미국 사람의 4인 가정이 6에서 7만 불 정도 수입인데 이날 그들 년수입에 25%을 지출한다. 미국은 소비국이고 소비해야 나라의 경제가 유지되는 구조이다. 그렇다면 블랙 프라이데이는 미국 전체가 샤핑으로 미쳐 날 뛰어야 되는 날로 지정한 것이다. 물론 마케팅이다. 하여 그동안 군소 소, 도매업자들은 못 팔아서 방치했던 재고를 한방에 없애는 날이 되었다. 무진장의 세일을 해댄다. 우리는 항상 뉴저지 가든 스테이트 팍에 아웃렛을 가보면 지평선이 보이는 그 큰 넓은 주장장에 주차할 자리가 없다. 미국에 그리도 오래 살아봤자만 인산인해는 이날 밖엔 없다. 우리 작은 애도 그날 샤핑을 위해 돈은 절약했다가 그날 일 년 입을 옷을 산다. 각 가계마다 특정 브랜드를 말도 안 되는 싼 가격에 구입을 한다. 아예 사람들은 천막을 치고 그 스토어 앞에서 그날밤 전에 잠을 잔다. 그리곤 정확히 7시 정각으로 문을 열면 고객들이 쳐 밀고 들어간다. 발에 밟히면서도 품목을 먼저 짚는 사람이 그날의 주인이 된다. 이걸 비숫한 걸 하는 데 풋볼 경기가 있을 때 주차장 바베큐 파틸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려고 일찍 가서 거기서 템트치고 잠을 자든가 아님은 그 주차장에서 파티도 하고 한잔한다. 그러니 스토아 주차장에서 이러는 건 이들로선 익숙한 거다.
정말 재미있는 건 대개 미국 사람이 그리 명품을 쫒진 않지만 그래도 아직도 쫒은 두 부류가 있다. 하난 어차피 잘 사는 고위층이고, 또 하나는 사춘기 여학생들이다. 여자아이들은 브랜드가 없으면 친구조차 만들기도 힘들다. 그 나이또래 애들은 명품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어느 날 맨해튼 42가에 차를 몰고 들어가다가, 잠시 신호등 때문에 차를 세우고 다음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측에 산티아고란 이탈리안 레스토랑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 레스토랑은 메트로 폴리탄에서 그래도 유명한 레스토랑이다. 그 레스토랑은 유럽식이여서 보도까지 울타릴 쳐서 밖에서도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했다. 한 가족이 모짜리나 스틱하고 팬케이크를 먹고 있었다. 우리 작은 아이가 내 운전수 옆좌석에 앉아 있었는데 한 가족이 입고 있는 모든 브랜드 이름과 가격을 중얼거리면 계산하길 시작하는 거다
엄마 윗도린 "돌체", 허리띠 "구바나", 치마 "발레리"
남편은 모자 "구사치",
남자아인 "프라다"
여자아인 "바렌티노", "크리스천 디올"
치마 "알마니", 그 애 신발은 "뮤뮤"
500
400
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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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0
엄마부터 품질과 가격을 계산하는 하더니 가족 총 50,000불이란 계산을 하는 거다
애들 수학을 가르쳐주었더니 이 어려운 수학을 여기에 사용하고 있었다 그 신호등 기다리는 그 짧은 그 시간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었고 그 계산의 정확도와 스피드는 과히 최상의 브랜드 이상이었다. 빌딩 사이에 찡겨 있어서 보일까? 말까? 한 작은 레스토랑에서 100불짜리 팬케익을 먹고 있는 이가족은 이렇게 숫자로 평가되고 있었고, 이 아이는 먹던 음식, 팬케이크만 바라보던 나랑은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다. 추가로 아빠 코트는 바렌티노 브랜드로 10,900불이 정도 될 거란다. 내가 혀를 찼다.
숫자 하면 티파니의 아침이다. 이 티파니의 아침이란 영화는 지금도 듣고 싶은 영화음악으로 아직 일위다. 그 주제 음악이 "강물 위에 달"( Moon River)이다. 한 대목이 "당신이 어딜 가시든, 저도 당신 길을 갈 거예요( Wherever you're goin' I'm , gon' your way) 이런 자본세계가 만든 물질주위를 이유 없이 나쁘다고 비판만 할 수도 없지만 우리도 혹여 그리 쉽게 숫자로 평가될까 봐 은근히 걱정도 된다. 이전에도 미국에서 살면서 음악 콘서트에 가서 우연히 내랑 비숫한 한 친구들 사귀게 되었는데, 근데 유명 음악가들과 유대가 돈독한 이 친구들은 사람을 숫자로만 보는 경향들이 있어서 그런 이들은 조금 멀리 하게 되었다. 이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내가 쉴 자리가 없다. 어쨌거나 내 딸이 그 숫자만 보고 누굴 쫓아다니며 그 귀한 인생을 허비하지 안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돈은 있다가 없어지면 없이도 살 수 있다지만, 있던 사랑이 없어지면 숨쉬기가 힘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