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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이모 Jun 10. 2021

지니이모의 수상소감 실종사건

신인상 수상요?  그리고 그게 등단이라고요?!

엄마 환갑 때쯤 나랑 한복 차림으로 자계장 앞에서 찍은 사진이 셋째 언니에게서 왔다. 2005년 광복 60주년 기념해서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렸던 '아! 어머니' 때 사진과 함께 전시되었던 내 글도 같이 왔다.  당시 도록에 기록된 글을 최근에 찾았고 2021년 봄호를 준비하는 모 종합문예지에 그 글을 보내자고 하셨다.  될 것도 안될 것도 없어 그냥 '네'라고 했다.  다만 2004년에 내가 글을 쓸 때는 전시회를 위해 사진을 중심으로 구성한 거라 글만 보았을 때 전달이 될지는 의문이었다.


2주쯤 지나 이렇게 실릴 거라고 톡이 왔는데, 아이쿠 이건 내가 쓴 글이 아닌데, 앞은 잘려 나가고 뒤는 늘어지고 단어도 문체도 낯설게 바뀌어 있었다. 문학적으로 더 잘 고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내 글이 아닌 것이 내 이름으로 나가는 것이 싫었다.  


언니가 나를 생각해 주셔서 문학 계간지에 보내보겠다고 하시는데 콩 나와라 팥 나와라, 아니 감 나와라 배 나와라 하는 것이 미안했다.  그래도 내 글을 고치는 건 싫다고 잘라 말씀드렸다. 그렇게 바꿀 거면 언니 성함으로 내시고 나는 빼 달라하였다. 좀 괘씸해하실 수도 있겠다 걱정이 되었다. 나는 근 20년 전에 엄마와 가족사진으로 응모해 주관사로부터 참가기념 금반지도 받았는데 사진은 빠지고 글만 어설프게,  다른 사람의 손을 거쳐 바뀐 모습으로 인쇄되는 것이 싫었다.  당시 용산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엄마와 가족들의 사진, 돌잡이를 하는 어린 내 모습 그리고 엄마가 나를 업고 카메라를 응시하는 모습이 담긴, 아빠가 촬영해 주신 사진이 갤러리 벽면 한가득 확대되어 있었던 기억이 났다.  생각해보니 그때도 언니가 자료를 공모한다는 신문광고를 내게 주셨고 그 말씀 따라 준비했던 것이 좋은 결과를 냈던 것이다.  내가 글 고치는 것에 대해 반감을 표시하여 당황해하는 언니께 이건 어떨까요 최근에 브런치에 올렸던 글을 보내드렸다.  2021년 3월 1일에 쓰고 3월 12일에 올린 '삼한의 까사빠보'.


다음날 언니가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주셨다.  주간님을 비롯한 여러분들이 내 글이 손 볼 곳 없고 너무 좋다고. 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래. 온라인으로만 보던 글 종이로도 볼 수 있겠네.  어쨌든 편집에 관한 더 이상의 껄끄러운 대화가 필요 었어져 한시름 놓았다.


며칠 지나 언니는 글 아래 약력이 들어가야 하니 사진과 함께 준비하여 메일로 출판관계자께 직접 보내라고 했다.  나는 준비한 사진을 두줄의 약력과 함께 언니가 알려주신 번호로 전송하였다. 그리자 내 글이 들어갈 페이지의 스크린 샷이 전송되어 왔다.  오자와 탈자를 점검하라는 의미로 알고 자세히 읽어보니 몇 개의 오자와 단락을 나누지 않아 의사 전달이 안 되는 부분이 있어 말씀드렸다.


그리고 2주쯤 지났을까.  수필 부분 신인상을 받게 되었으니 내 글 뒤에 함께 인쇄될 당선소감을 준비해서 보내라는 연락이 왔다.  문학 계간지 신인상 수상은 곧 등단이라는 것도 말씀해 주셨다.  브런치 글 쓴 지 이제 2개월 남짓,  브런치에서 붙여준 '작가'라는 명칭도 아직 너무 낯설고 과분한대 등단이라니.  정말 기쁘고 감사했다.  평소에 말을 잘 못하고, 내가 말을 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지루해하거나 딴 곳을 보는 것 같아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당선 소감은 이런 내 마음을 드러내려니 쉽지 않았다.  그래도 최대한 솔직하고 정성스레 단어들을 골라 소감을 작성 했다.




시와 **  수필 부분 신인상 당선소감


부족한 글을 호평해주신 시와 ** 관계자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평생을 통역. 번역으로 밥벌이를 하였지만 제 스스로 말하는 법은 잘 모릅니다. 그래서 소통에 서툽니다. 자신감이 적은 저는 특히 설명에 서툴러 자녀들과의 대화는 더 힘이 듭니다.


얽히고설킨 제 마음과 인간관계를 스스로 이해하고 싶어서 손이 가는 대로 글을 썼습니다. 꽉 찬 냉장고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책은 책만의 운명이 있다고, 작가의 손을 떠나면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모른다고 들었습니다.  제 글도 좋은 운명으로 멋진 생을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 모녀 관계는 3한4온이라고 알려준 친구, 그리고 비에 젖어 익사할 뻔한 저와 제 노트북을 편히 쉬게 해 준 신세계 본점 까사빠보 (casa pavo) 관계자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며칠 후 책에 실릴 레이아웃으로 완성된 스크린 샷이 톡으로 전달되었다.  '시와 ** 신인상 수상작"이라는 왼편 상단 박스 안 제목이 내 글을 소개하고 있다니, 내 수필의 제목이 나오고 오른쪽에는 이름과 사진도 나오고. 정말 너무 근사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양치질 잘하기 주제 글짓기로 상장과 칫솔 10개를 받은 이후 글 쓰고 이렇게 대접받는 거 처음인 거 같아 진짜 신이 났다.  오자가 두어 개 있었지만 세심하신 주필님과 출판 관계자분들의 빠른 대응으로 모두 수정된 것을 스크린 샷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는 시상식.  코로나로 모든 것이 조심스러운데 출판기념회 겸 시상식이 진행된다는 것이 염려되어 관계자분께 딱 잘라 여쭈었다.  아직 코로나로 조심할 때인데 이렇게 모여도 되나요?  정부 시책 다 따라서 인원 제한 두고 거리두기 준수하여 행사를 준비하니 걱정 말라고 하셨다.  그래도 난 참석할 생각이 영 들지 않았다.   


시상식을 3일 앞두고 집으로 '시와 **' 39호가 배달되었다. 2004년 창간된 유수 문학계간지에 처음으로 내 글이 실리다니. 떨리는 맘으로 택배를 조심 스래 언박싱했다. 앞부분 컬러 인쇄로 신인상 수상자 소개 페이지가 할애되어 있었고 내 글은 광고면을 빼면 책의 가장 끝부분.  떨리는 맘으로 이 은* 주간님의 심사평을 읽고 다음 페이지를 열었다.  식사 후 와인과 같은 독후감을 선사한다는 심사평 정말 맘에 와닿고 기분이 좋았다.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계속 글을 쓰면 많은 독자를 확보하게 될 거라는 축복의 말씀도 해주셨다.


본문에 '언론 자료 배포'가 '언론 자료 배표'로 나왔지만 크게 신경 쓸 부분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장 신경 썼던 신인상 당선 소감. 평생 딱 한번 받을 수 있는 신인상 그리고 그동안 말을, 설명을 잘 못해서 힘들었던 스스로를 어렵게 표현한 바라 지면에 어떻게 나왔을지 기대하며 책을 폈는데 생각도 못한 부분에 오자가 있었다.  '말하는 법'이 '말하는 범법'으로 둔갑한 것이다.  수상소감에 범법이라니... 말하는 법을 몰라서 속마음을 글로 쓴다고 어렵게 적었는데 말하는 범법이라니.... 너무 앞뒤가 안 맞는 이상한 글이 되어버린 것이 속상해서 다시 인쇄해야 한다고 관계자께 문자를 넣었다.  그런 일이 가끔 아주 가끔 있는데 죄송하게 되었다고 주간님께서 직접 정중히 사과하셨고 화이트나 스티커를 이용하여 남은 책은 수정하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이틀 밤을 뒤척이다가 이미 인쇄되고 발송된 책들을 내가 되돌릴 수 없으니 시상식에 참석해서 수상소감 발표시간에 잘못 인쇄된 범법을 바로 잡아야겠다 결심했다.  그리고 내가 말할 수상소감을 미리 기록하여 듣는 사람이 지루해하지 않게 하고 또 필요 없는 말을 하는 위험을 줄이려고 핸드폰에 입력해 두었다.





시와 **  신인상 수상소감 (2021년 5월 22일 시상식 및 출판기념회 현장 발표용)


수상소감을 듣고 매우 기뻤지만 시상식 참석은 많이 망설였는데 다음의 세 가지 단어가 오늘 이 자리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언니', '범법', 그리고 '와인'인데요, '언니'는 제 글을 시와 ** 에 보내 주시고 또 시상식은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이니 꼭 참석하라고 회비도 내주시고 이렇게 꽃도 보내 주셨어요. 언니 덕에 오늘 제가 여기 있습니다.


범법은.. 27년간 직장생활에서 제 업무가 주로 통. 번역 관련이라 남의 말 전달은 많이 해 봤는데 제 생각을  '스스로 말하는 법'은 서툴러 글을 쓰게 되었다고 수상소감을 썼습니다. 그런데 말하는 법이 말하는 '범법'으로 오타가 난 겁니다.  방법도 아니고, 수법도 아니고,  범법이라니... 그래서 속상해하다가 시상식에 와서 직접 말씀드리려고요.  그런데 다른 작품은 어떤지 책을 쭉 읽어 갔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리고 오자보다 맞게 인쇄된 글자가 훨씬 많으니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잘못 들어간 '범'자를 꺼내서 제 일상사에 옮겨 '범사'에 감사하자로 앞으로 기억하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와인'이라는 단어인데요, 심사평을 써 주신 이 은* 주간께서 제 글이 와인 같은 독후감을 선사한다고 해주셨어요. 저는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예수님이 처음으로 기적을 행하신 가나안의 혼인잔치가 기억났고 앞으로 와인처럼 향기 품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임채* 발행인님, 이은* 주간님 외 모든 관계자님들과 기라성 같은 선배 회원님께는 감사의 인사를 오늘 함께 수상한 신인작가님들께는 축하인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준비를 하고 열 번도 넘게 읽고 녹음까지 해서 들어보았다.  길이가 1분 정도이니 적당하다고 자신하며 이런 수상소감이라면 당선소감에 오자 때문에 들어간 범법이라는 단어에 대한 소명도 또 내가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한 설명도 충분히 되리라.  정확한 시상 순서를 몰랐기에 부르면 바로 보면서 읽어야 하니까 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기다렸다.  개회사와 축사와 경과보고, 축하 공연, 시낭송등이 지나고 이제 신인상 수상자들이 단상으로 나갈 순서.  빨간색은 아니었지만 멋진 카펫을 밟고 출입문에서 단상까지 이름을 부르면 당당하게 걸어서 입장해야 한다.  그런데 너무 긴장해서 손에 땀이 났는지 핸드폰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금방 다시 주워 들었지만 핸드폰과 함께 떨어진 멘탈은 쉽게 돌아와 주지 않았다.  먼저 호명된 분들이 입장을 하고 수상을 하는 동안 수상소감을 적어놓은 페이지를 핸드폰에 띄어놓으려고 찾았는데 긴장을 했는지 어디였는지 열리지가 않는다. 이런 수상소감이 실종되었네.  그날은 마침 제킷에 주머니도 없어서 손이 불편한데 핸드폰을 놓고갈까.  그래도 혹 몰라 폰을 꼭 쥐고 단상으로 오르니 멘탈은 핸드폰 떨어뜨릴 때 같이 바닥에 떨어져 있고 수상소감은 스크린에서 실종된 상태.  손바닥에 폰을 착 붙인 채  등단증, 신인상 상장, 그리고 동으로 된 꽤 무거운 등단 상패 그리고 꽃다발을 다 받으니 이런 장바구니 또는 카트가 필요한 지경.  예쁘게 들고 사진 찍어야 되는데.... 들쑥날쑥 상패와 꽃다발을 들고 있는 나 자신을 생각하니 표정도 불안해졌다.  그래도 '범법'의 누명도 벗고 언니와 관계자님들께 감사도 전하고 앞으로 와인처럼 향기 나는 글을 쓰겠다는 각오도 밝히려고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 관계상... 신인상 수상소감은 당일 순서에서 삭제되고 말았다.  역시 나는 스스로 말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인가. 앞으로 자신있게 말 좀 하려고 다 준비했는데 실종 되버린.  말 못 한 수상소감.  나는 역시 스스로 말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인가.





수상소감 실종사건으로 꼭 할 말을 또 못 하고 만 답답함도 잠시,  시상식장에서 돌아오는 길은 기쁨과 감사로 마음이 벅찼다.  단순히 글이 소개되는 자리 정도로 생각했는데 축사와 기념사를 해주신 발행인과 임원진 여러분,  그리고 시낭송을 해주시는 분들 한분 한분 너무 멋진 인생을 살고 계신 분들이셨다.  방송사, 언론사에 근무하신 분, 기업 하시며 글을 쓰시는 분, 군, 종교계, 교육계에 계신 분들, 현직 의사이면서 시를 쓰고 유명가수들을 위해 이미 수십 편의 작사를 해 주신 선생님도 뵈었다.  특히 주간님이 80세를 맞으신 것도 너무 놀라웠다.  오자 때문에 전화를 드렸을 때 너무나 정중히 사과하고 대응도 빠르셔서 나이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방송사에도 오래 근무하시고 대기업 강의도 수십 년 그리고 대학가요제에서 수상한 가요 가사도 여러 편 쓰셨다니 배울 점이 많은 분이다.  또 시를 쓰시는 분 중 여렸은 그림도 같이 하며 본인의 책에 그림도 직접 그리는 경우도 많고 이번에 첫 시집을 내신 분은 여군 출신이시라니, 그리고 자신의 글을 가곡으로 만들어 악보와 함께 넣은 것을 보고 진짜 예술가들의 모임, 그것도 어떤 분은 60년 이상 글을 써오셨으니 그 연륜과 경험을 어디서 그렇게 한꺼번에 대할 수 있을까.  정말 귀하고 감사한 자리라고 느꼈다.


다음날 아침 발행인께서 직접 전화를 걸어 축하인사와 함께 시간 관계상 수상 소감을 말하는 시간을 못준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하셨다.  어렵게만 생각되던 선배님들이 친근하게 느껴졌고 문학계 메너가 외교가 이상으로 좋다는 느낌도 받았다. 어쨌든 아직은 어색한 '작가'라는 호칭 자꾸들 불러 주시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내가 수필부분 신인상을 수상하다니, 그리고 그게 등단이라니! 수상소감을 말로는 못했지만 앞으로 주간님의 심사평처럼 향기품은 와인 같은 글을 써가야지 생각하니 눈썹도 입꼬리도 올라간다.  마음도  같이 가벼워진다. 스스로 말하는  법을 잘 알지 못하여 가슴을 꽉 막고 있던 묶은 체기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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