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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이모 Jul 03. 2021

만리동 광장에서 만난 시인과 농부

체르니 100번 정도 시작할 때 함께 공부하는 피아노 명곡집의 단골 메뉴, '시인과 농부 서곡 (Poet and Peasant Overture)'은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프란츠 폰 주페 (Franz von Suppe)가 작곡한 오페레타의 서곡이다.  1846년 작곡되었고 주페의 오페레타 경기병 서곡과 프랑스의 작곡가 오펜바흐 (Jacques Offenbach)의 천국과 지옥의 서곡과 함께 세계 3대 서곡으로 불린다고 한다.   시인과 농부는 극의 남자 주연이 낮은 신분인 농부였지만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시인이기도 하여 결국 Happy Ending을 맞게 되며 당시 시인과 농부라는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가지 단어를 제목으로 써서 그 자체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서울역과 가까운 만리동 광장. 서울로 7017에서 엘레베이터를 한번 타고 내려오면 바로 연결이 된다. 이 도심 한복판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농부의 시장에서 만난 농부님들은 내게 시인 이상의 감동이 되었다.  주말 만리동 광장을 달군 서울시 농부의 시장.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갔다가 3개에 2,000원 하는 전라북도 부안 발 오이지 맛에 반해 시장이 서는 이틀 동안 세 번을 더 다녀왔다.  5,000원에 한 박스 못난이 당근이랑 첫 30명의 손님에게만 판매한 한봉 2,000원 수미감자, 넉넉한 국물의 아삭한 오이지와 다이어트에 좋은 얼린 군고구마, 어머니와 아들이 직접 만든 색이 고운 치자 국수와 청국장 그리고 정성 들여 재배한 무농약 산딸기를 보면서 지난 주말 이틀간의 시인 같은 농부님들에게 받은 감동을 기록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농부의 진심을 전합니다'는 그저 표어라고 생각했는데 6월의 마지막 금요일과 토요일 총 4번의 방문을 통해 생산자님들을 직접 만나서 농산물을 구입하고, 먹어보고 또 재구매하러 가는 사이 정말 진심이 전해져 왔다.  우선 오이지.  여름철 입맛 없을 때 송송 썰어서 풋고추 파 올려 생수 조금 부어 냉국으로 먹어도 좋고 그냥 얼음물에 담갔다가 먹어도 맛난 아삭 짭짤한 오이지.  몇 년 전부터 만들어도 맛이 안 나고 잘한다는 집에서 사 와도 뭔가 씁쓸하거나 너무 달거나 했는데 이번 부안에서 탄생하여 서울에 올라온 오이지는 내 입맛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오랬만에 입에 딱 맞는 오이지를 만나니 언니들과 나누고 싶은 생각도 나고 후배 생각도 났다. 처음엔 5,000원어치 여덟 줄을 받아다가 먹어보고 맛에 반해서 첫날 장이 파하기 전에 포장팩을 챙겨 다시 가서 나누어 먹을 생각으로 조금 더 샀더니 떠리를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3대 젓갈 생산지라는 곰소에서 만든 통통한 새우젓도 샀다. 양파 김치도 있어서 살까 했는데 마침 나온 오이지ㆍ김치 생산자 대표님이 양파김치에 열무김치까지 한번 먹어보라고 그냥 가져가라고 하신다.  마트와 백화점 식품코너의 바코드에 익숙해진 나는 깜짝 놀랐다.  손사래를 치며 안 받는다고 했는데 드셔 보시라고 하도 하셔서 양파김치는 있는 현금으로 계산을 하고 열무김치는 받아왔다.  입에 맞는 김치가 냉장고에 자리 잡으니 더위가 무섭지 않다.



바로 건너편에 생산자 따님이 예쁜 무농약 산딸기를 판매하고 계셨는데 신선하기가 정말 바로 오늘 수확한 것 같아 900그램을 사 갔다가 맛있어서 두 번 더 가서 900그램 한 상자 더 그다음엔 250그램 두상자를 더 사 왔다.  시원하게 생과일로 우선 배불리 먹고 나머지는 유기농 설탕을 넣어 잼을 만들었다.  1.5kg를 만들어도 작은 병 2개.  마침 번개로 만나자고 연락해온 친한 후배 여름 더위에 힘내시라고 한병 건네고 나머지 한 병은 아무도 안 주고 혼자서 야곰 야곰 먹을 계획.  사과, 산딸기, 자두 수확 체험도 한다는 충북 제천시 봉양읍의 이 농장을 정말 꼭 한번 방문하고 싶다.


서울로 7017과 연결되는 계단 쪽에 자리한 충청남도 예산군 샘골 농원.  장터에 가기 전에 들른 우리은행에서 우연히 서울시 농부의 시장 앞치마를 하신 우아한 여사님과 눈이 마주쳤었다. 잔돈을 바꾸러 오신 것 같았다.  한복 디자이너나 시니어 모델 같은 우아함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기억이 나는 그런 분이었는데 장터에 오니 아드님과 직접 만든 된장, 고추장, 간장, 조청, 식혜, 국수 등을 판매하고 계셨다.  인사를 하고 색깔이 고운 치차 국수만 하나 사 가지고 가려다 한 병에 2,000 원하는 얼음 식혜를 하나 사서 더위를 식히며 그날 장보기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그 식혜.  달지도 않고 너무 구수하고도 시원해서 자꾸 생각날 것 같아 다음날 아침 몇 병 더 사려고 장에 다시 갔다.  피곤해하셔서 어머님은 오늘 쉬시고 아드님이 혼자 판매하고 계셨다.  열심히 장사를 잘하시지만 어투가 어쩐지 교수님이나 목사님 같다고 느껴지는 이분,  알고보니 천주교 신부를 꿈꾸다가 부모님을 돕기로 했다고 쿠폰에 쓰여있어서 어쩐지 감동이 되었다.  청국장과 된장 그리고 도라지 조청을 추가로 구입하고  고추장은 1kg짜리는 다 나가고 2kg만 남아서 그냥 왔다. 그런데 자꾸 고추장도 맛있을 거 같아 장이 파하기 직전에 다시 가니 2kg짜리 고추장까지 완판 된 상태.  일부러 왔는데 물건이 없어 미안하다고 한사코 작은 생강조청 한 병을 손에 쥐어 주신다.  인터넷으로 고추장 주문 얼른 해서 고마움을 표해야겠다.


전국에서 온 양질의 농산품으로 만든 점심드니 임금님 밥상도 부러울 것이 없다.  서울시 농부의 시장은 7월과 8월은 쉬고 9월에 다시 장이 선다고 한다.  서울 한복판에서 전라북도 부안 선영이네 김치, 충청북도 제천 가을 농장, 충청남도 예산 샘골 농원, 그리고 대화는 하지 않았지만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풍성해졌던  여러 참가 농장의 생산자 분들과 농산품들 한 주일이 지난 지금 벌써 궁금하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와 아들, 아버지와 딸, 오누이, 이렇게 가족분들 단위로 장터에 나오신 생산자 분들은 내가 두세번 이틀사이에 찾아가니 꼭 한번 놀러 오라고 말씀해 주셨다. 이렇게 도시의 소비자가 멀리 움직이지 않아도 생산자 분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것 만으로 농산물에 대한 믿음도 커지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는것 만으로 힐링이 된다.  이런 만남의 장에서 한걸음 나아가 서울시 농부의 시장 인포 데스크에서 '생산지 방문자 모집' 등의 안내문을 내걸고 관심있는 지역/농가의 방문 신청을 받는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아무래도 개별적인 방문은 비용도 그렇고 프로그램과 의사소통의 과정도 농가와 소비자 개인의 입장에서 한다면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개별 농가 한곳에서 만리동 광장에 판매텐트를 독립적으로 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서울시가 서울 농부의 시장을 주관하는 것 처럼 생산지 방문 희망자를 모으고 적당한 인원이 될때 농사, 수확, 먹거리 등의 체험이 가능한 농가로 방문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준다면 관심을 가질 만한 농가와 소비자가 꽤 있을 것이다.  예를들어 사과, 산딸기, 블루베리 수확 체험,  김치 제조 과정 견학및 체험 후 사가지고 가기,  조청 만드는 과정 배우고 소비자의 필요에 따라 구매하기 등이다.  글을 쓰다보니 올 가을 부터, 사과 수확, 김치 만들기, 메주 띄우기 등을 체험하면 얼마나 재미있고 또 내 정성이 함께 들어간 농산물을 구매해서 먹는다면 얼마나 의미 있을까 혼자서 신이난다.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름도 혼자서 정했다.  "서울시 농부의 시장 도시 친구들".   장이 섰던 만리동 광장에서 아침 7시 쯤 출발하여 농가 방문, 수확 체험등을 하고 식사를 한후 다시 저녁 7시쯤 만리재로 광장으로 돌아 오는 프로그램이라면 소비자들에게는 믿을 수 있는 농산물을 직접 고르는 기쁨을,  농가에는 신선한 농산물을 직접 소비자에게 좋은 가격으로 팔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서울의 한 복판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역 서쪽 만리동 광장에서 만난 농부님들,  이분들은 아름다운 자연환경에서 정직하고 기쁘게 시를 짓는 마음으로 농사를 지은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여운이 오래가고 마음이 든든한 걸 보면.  정말 좋은 시를 음미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바다가 보이는 인천의 예쁜 따님과 든든한 아버님이 무농약으로 재배한 꽈리고추 (이것도 떠리로 3,000원)  송송 썰어 올린 전라북도 부안의 맑은 물과 유기농 오이 그리고 곰소 젓갈을 만드는 곰소 천일염으로 간을 맞춘 오이지 한쪽 입에 물고 "아사삭" 더위를 쫒아낸다.





에필로그 :


시원한 보리차에 현미밥을 말아 오이지와 시원하게 즐긴 점심식사의 디저트는 무농약 산딸기에 조청을 곁들였다.  상시 수확체험도 가능하다는 제천의 무농약 산딸기는 잼으로도 너무 훌륭했다.  카톨릭 신부님을 꿈꾸다 부모님을 도와 장을 담그고 조청을 조리시는 아드님이 가져오신 충청도 예산의 배도라지 조청은 떡과 먹어도 참 깔끔하다.


오이지 조금 나누었는데 후배가 참 좋아해 준다.  외국생활을 오래한 우리 언니도 오이지 좋다고 하셨다.  참 내가 만든것도 아닌데 이렇게 칭찬 받으니 조금 미안하기도 하지만 매우 기분이 좋기도 하다.


이글을 쓰며 생각해본 서울시 농부의 시장 참가 생산자님들을 방문 하여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가칭 '서울시 농부의 시장 도시 친구들' 꼭 생겼으면 좋겠다.  특히 서울시 농부의 시장은 1회성 행사가 아닌 1년에 적어도 8회 정도 열리는 정기 프로그램이니 소비자가 생산지를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생산자에게도 소비자에게도 또 이러한 도농상생의 장을 열어준 서울시에도 보람과 의미가 더할것이다.  농가에는 농산물 홍보와 소비촉진의 효과를 소비자는 안심하고 먹을수있는 먹거리를 직접 고르면서 체험의 기쁨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사람, 내가 받는 먹거리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싶고 관광으로 가는 여행보다 체험하며 배우는 일정을 더 원하는 그런 생각하는 사람, 나 혼자 뿐일까?


주페의 시인과 농부 서곡을 다시 들어본다   시인과 농부 오페레타의 남주는 당시 인정받지 못하는 계급인 농부였지만 시를 잘 쓰는 제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인연을 이어가며 해피엔딩을 맞는다.  글의 힘이고 시의 승리이다.  만리동 광장에서 만난 농산물들과 판매하시는 오너 가족분들.  오이지 한줄  꽈리고추 한줌을 살때도 바코드 찍는 소리가 아닌 정겨운 농부님들의 자부심에 가득찬 목소리를 들으니 맛도 영양가도 더한것 같고 특별하다.


대통령상을 받은 김치와 오이지, 천주교 신부를 꿈꾸던 아들이 어머니를 도와 만든 배도라지조청과  청국장,  푸르른 들판에서 아버지와 딸이 키우고 직접 판매하는 무농약 산딸기와 사과. 이렇게 스토리가 있으니 먹을때 마다 귀하고 고맙다.  그리고 그 스토리는 먹어본 사람만이 진심을 담아 말할수있다. 먹어보는것에 더하여 체험까지 하게된다면 "농부의 진심'은 아주 강력하고 빠르게 전해질것이다  마치 시인이 멋지게 써내려간  시(poem)와도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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