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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이모 Jun 15. 2021

브런치 90일만의 기적 II.

10가지 변화를 정리하며 잠시 하트 라떼를 즐길 시간

브런치 90일 동안 '1주 1브런치'를 해냈다.  평균 매주 글 하나씩 올렸다. 잘했다.  글을 쓰면서 일상의 일부가 내 이상(Ideal)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브런치 90일 만의 기적.


I.  쓸데없는 생각이 줄었다.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퇴직. 소속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초라한 일인지 27년간 울타리가 되어준 교보빌딩의 전망 좋은 내 자리가 몹시나 그리웠다.  출장 때 주어지는 Business class 비행기표, 별 다섯 개 호텔에서의 숙박, 시내 출장을 갈 때면 친절한 기사 선생님이 딱 딱 해주시는 운전,  출근하면 일단 쓰고 말해야 하는 영어, 늘 배우고 발전한다는 느낌, 무엇보다 매달 15일,  그 달 15일이 일요일이면 그 전 금요일인 13일에 들어오던 월급. 모든 것이 그립고 아쉽고 되돌릴 수 없는 안타까움이 깊어질수록 걱정, 근심, 불안, 초조가 커졌다.  아이들과의 관계도 나 자신에 대한 자화상도 다 엉망이 되어가는 듯했다.  쓸데없는 생각들이 위험 수위로 높아 갈 무렵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쓸데없는 생각이 줄었다.


2. 쓸 수 있는 생각이 늘었다.  


쓸데없는 생각을 줄이니 쓸데 있는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쓸데 있는 생각은 쓸 수 있는 생각이 되었고 실제로 쓰게 되었다. 90일 만에 20개의 글, 퇴직 후 뭔가 이렇게 지속적으로 하면서 기록으로 남게 된 것은 브런치가 처음.  일단 쓰고 보았다.  우선 내 마음의 아픔부터 써갔다.  쓰기에 적당히 안전한 것부터 내어 놓았다.  지금이 아니면 옅어질 수밖에 없는 감성부터 늘어놓았다.  정리가 되고 일상의 일부가 내 이상(ideal)에 가까워졌다.  기적이다.


3. 둘째가 대학에 합격했다. 무려 장학금 오퍼도 받았다. 수고했다. 고맙다.


4. 동요작곡가가 되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 (https://www.komca.or.kr) 신탁자 회원이 되었다. 이는 작곡, 작사, 연주 등 저작물을 소유한 저작권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2016년 주말에 대학로 SJA (서울 제즈 아카데미, 곧 홍대 앞으로 이전)에서 우연히 나 같은 직장맘이 범접할 수 없는 높게만 느껴지던 '작곡반'에 등록했다.  음악 전공자도 아니고 한 번도 제대로 음악교육을 받은 적 없지만 성악을 전공한 언니의 영향, 그리고 어렸을 때 피아노를 가르쳐 주신 엄마, 초등학교 때부터 늘 섰던 성가대 덕에 작곡 공부가 재미있었다. 그리고 당시 강사님이 숙제로 내주셔서 완성하기 시작한 노래들.  그중 하나는 브런치 글 '새로운 길 /Brand New Road'에서 소개한 윤동주 (1917-1945)님의 시에 곡을 붙인 동요이다.  딸이 어릴 때 노래를 불러 녹음했고 잊어버리고 있다가 더 늦기 전에 공표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브런치 글 쓰면서 했다. 뜻이 생기니 길이 보였고 절차를 거쳐 음원을 공표하고 회비를 내고 작곡가 (동요)로 등록되었다.  주요 부분이 동요이나 앞으로 어떤 종류의 음악이라도 이제 음원을 만들면 집에서 온라인으로 등록이 가능하다.  영상제작이 쉽지 않아 벚꽃 필 때 원테이크로 촬영한 꽃과 하늘 영상을 배경으로 가사 (윤동주 님의 시) 자막을 넣고 음원을 입혀 유튜브에 올렸다.  작곡 *** 하고 검색하면 바로 유튜브에 뜨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고 감사했다.  몇 년 동안 쓰지 않은 Cubase와 Master Keyboard를 다시 세팅하는 것이 귀챦고 어렵게만 생각되었는데 이제는 해볼 만하지 않겠나 마음이 가볍다. 악보에 남은 콩나물들이 소리 좀 내게 해 달라고 통통 튀는 것 같다.  무지개, 로이, 가나다송, 가을의 기도, 봄, 5월의 작은 폭포는 올해에 꼭 공표해야 할 음악이다.  시작이 반이다.  나머지 노래들도 유튜브에 올리면 많은 사랑을 받을 것이다.   


5. 등단 작가가 되었다.


브런치 글 '지니이모의 수상소감 실종사건'에서 자세히 썼는데 종합문학계간지 시와 ** 신인 수필가 상을 받은 것이다.  시상식 단상을 자세히 적은 것은 시간이 지나면 그 과정이 잊힐 것 같아서다.  좁 복잡하고 구차하다 싶지만 수필가라는 명칭을 받고 돌아보니 참 소중한 순간이었다. 코로나로 가지 않으려 했던 시상식에 글에 오자가 있어 소명을 하려고 참석했는데 좋은 분들, 좋은 글들 많이 만나고 축복의 말씀도 많이 들었다.  선배 작가님의 안내로 한국예술인 복지재단에 예술활동 증명도 완료하였다.


6. 글 청탁을 받다.


파이프 오르간에 대한 강좌를 들으며 배운 것을 기억/기록하려고 브런치를 하게 되었다. From Mystery to Mastery 왕초보 아줌마의 파이프 오르간 수강기로 3편의 글을 올렸다.  그중 '파이프 오르간 실물 영접기'는 13주의 강좌를 듣고 처음으로 전자오르간이 아닌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하게 된 다섯 명의 동기들 이야기이다  추억을 나누려고 교수님께 허락을 받아 클래스 단톡방에 올렸는데 이를 보고 대학 평생 교육원에서 다음 학기 오르간 강좌 수강생 모집 시 내 글을 홍보글로 쓰고 싶다고 연락을 해왔다. 일종의 청탁!  돈으로 연결되는 글쓰기는 아직 아니지만 정말 맘이 너무 뿌듯했다.  덕분에 누적 조회수가 내 글 중 2위이고 아직도 매일 새 독자님들이 이 글을 읽어주니 신기할 뿐이다.


7. 색동회 동극 촬영


지난 가을 곧 100주년을 맞는 색동회에 봉사할 만한 일이 있을지 검색해 보다가 동화구연대회에 관해 읽었다.  본래 5월에 진행하는 대회인데 작년에만 코로나로 계속 미루어지다가 10월에 온라인으로 진행하게 된 것이다. 아이들 책 읽어 주던 기억을 되살리며 유튜브에 올라온 여러 영상들을 참고하여 지원 요건에 맞추어 영상을 제출하였고 분에 넘는 상을 받고 색동회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최초로 시도된 온라인 동극 촬영에 배우로 참여하면 어떻겠냐는 연락이 왔다.  내 배역은 대사가 가장 짧았지만 연극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초반에 열어 주어야 해서 생각보다 어려웠다.  대사를 외우고 억양을 코치받고 연습하며 촬영하면서, 연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배우님들과 스테프님들에 대한 큰 존경심을 갖게 해 준 '연기' 경험이 이제 집에서 드라마를 볼 때도 조금 더 새롭게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오게 한다.  개미 3으로 출연하신 대 선배님 가족의 재능기부로 블루스크린을 사용하여 촬영하고 배경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입혔는데 정말 근사한 작품이 되었다. 또 대본을 쓰고 직접 연출하신 회장님, 배짱이, 개미, 꿀벌 등 함께 연기하신 동료 배우님들에 대해 알아가게 된 것도 참 즐거웠다.  궁금했던 '연기' 박스도 체크!


8.  창업


취업을 하거나 창업을 하거나.  둘 중 하나 해야 하는 때가 되었다. 조직, 소속 없이 지낸 3년, 나의 길을 찾아야 하고 그 길을 걸어야 한다.  브런치에서 두번째로 3월 12일에 올린 '삼한의 까사빠보'를 쓰고 인간관계에 대해 안달. 복달하는 성격이 조금씩 바뀌었다. 그리고 세상만사 3한4온 아닌가 싶다 생각하게 되었다. 3일은 춥고 4일은 따뜻하고.  밀물이 있으면 썰물이 있듯 늘 좋을 수만도 늘 나쁘지만도 않은 것이 자연의 이치, 인생의 이치 아닌가 싶었다. 그래도 추운 3일간의 3한을 조금씩 줄여가면 그래서 더 따뜻하면 좋겠다. 삼온사온으로.  그런 생각을 며칠 하던 중 창업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해온 홍보, 기획, 통역, 번역, 문화/이벤트, 컨퍼런스, 강연 기획 등 할 수 있는 일들을 Brain picking과 일용직 두뇌 노동자의 입장에서 제공하는 것이 아닌 파트너로, 사업으로 연결하려고 한다.  절차를 거쳐 사업자등록을 하고 매출을 위한 여러가지 가맹을 완료했다. 첫번째 컨설팅도 진행하였다. 내가 창업을 하다니.


9.  정리정돈


효율적인 삶이 중요하다고 배운 나는 밤 낮 없이 일을 했다. 일, 공부, 육아, 가사, 봉사 등 여러 가지 공을 저글링 하면서 극도의 타임 푸어로 살아온 나는 정리를 해야 할 때가 오면 피곤에 눌려 잠을 자거나 회피하거나 그런 적이 많다.  이제는 소소히 루틴으로 해야 할 일이 정해 졌으니 물건을 제자리 아닌 곳에 쌓아두거나 생각 없이 구매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니, 그 일을 위해 정리하고 준비하는 시간도 즐겁다.  정리가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정리 달인님들이 보면 완전 초보이지만 딸이 특히 많이 도와주어 집에 들어온 모든 것, 가구, 그릇, 식재료, 옷, 신발, 책, 잡동사니 등을 시작으로 안과 밖을 다 정리하는 중이다.  버리고 나누고 나면 절대 기억나거나 아쉬울 일 없는 물건들.  아주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녔지만 절대 쓴 적이 없는 앞으로도 쓸 일이 없는 물건과 이별하면서 앞으로는 물건을 집에 들일 때 더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과감하게 정리하면서 내게 돌아오는 '공간'을 기쁨으로 즐기고 있다.  진짜 기적!


10. '나'로써 지속 가능한 삶 Sustainable life as Me


부모님이 누구고, 고향이 어디고, 어디서 일하고, 누구의 부모이고, 이런 것에서 한팔정도(arm's-length) 떨어져 이제 '나'로써의 삶을 살 용기가 생겼다. 기대된다.  '나'로써 지속 가능한 삶. 브런치를 시작하고 얻은 기적이다.





이 글을 쓰면서 또, 내가 뭐라도 된 양,  늘 살던 집에 여전히 많은 문제와 아픔을 안고, 같은 밥 먹는데, 무슨 기적인가 웃기는 거 아닌가.  옅은 한숨이 나도 모르게 나온다. 그래도 이렇게 기록을 통해 브런치 90일 동안 순간순간 뿌듯했던 감정들을 되살리는것이 내게는 소중한 일이다. 답답하게 가슴에만 담고 있던 엉킨  덩어리들을  머리로 생각해서 한가닥씩 풀어내고 열손가락으로 뜨게질하듯 키보드에 넣어 스크린에 떠오른 문장들을 내눈으로 읽어가는 과정이 내게는 힐링이다. 손으로 쓰고 다시 눈으로 보는것 그리고 거기에 가족, 친구를 포함한 독자님들의 피드백이 얹혀지면서 가슴속 실뭉치는 따스한 목도리도 되고 엷은 테이블보도 된다. 언젠가 겔러리에 걸릴 아름다운 타피스트리(tapestry)도 나와주길!  역시 브런치 시작하기를 잘했다.  어떤 사람은 오래전부터 잘하고 있었을 가지 소소한 성과들.  내게는 브런치 90일 만의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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