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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이모 Jul 05. 2021

브런치 피로감 (Brunch Fatigue)

카카오톡 브런치,  글 쓰며 소통하기 좋은데 갑자기 피로감이..

브런치 작가가 되고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시간 관리와 감정 관리가 잘 되고 소소한 성과를 이루어 가게 되었다.  쓸데없는 생각은 줄고 늘 쓸 수 있는 생각에 집중하기 때문에 효율적인, 긍정적인 방향으로 삶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변화의 구체적인 내용은 브런치 90일 만의 기적 I, II를 통해 나름 정리하고 공유했다.  수상 소감에 관한 글을 보시고 등단을 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는지 문의하시는 분도 계셨고 오르간 글을 보신 분 중에는 1993년 내가 방문했던 퀸즐랜드의 파이프 오르간을 본인이 대학생 때 배낭여행을 갔다가 보았다고 하셔서 서로 신기해했다.  또 엄마의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며 아이도 좋아해 주었다.


그런데 그 글을 쓰고 약 2주 이상 브런치에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쓰기가 싫은 건지 쓸 수가 없는 건지.  어쨌든 자리 잡고 노트북과 2-3시간 보내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브런치 앱을 지우거나 아주 안 들어가 본 것은 아니다.  추천으로 뜨는 글도 읽고 가끔 내 브런치 통계로 들어가서 오늘의 독자는 몇 분인지 궁금해서 체크는 했다.  글을 올리면 하루 이틀간은 하루에 50명에서 70명 정도 보시고 3-4일이 지나면 10명 내외, 그래도 독자 0 인 날은 아직은 없다.  하지만 so what?


브런치 작가 생활을 5-6년 성실하게 하시며 수십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하신 선배 작가님들이 네이버 블로그와 카카오톡 브런치를 비교하는 글을 간간히 접했다.  수익구조가 전혀 없고 출판을 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성실하게 열정을 쏟아내지만 출간 작가로의 기대감은 오히려 희망고문이 되고 지난 시간들을 보상받을 길이 없다는 막막함과 씁쓸함이 전해졌다.  그럼 나는?


2021년 3월 첫 브런치 글을 올릴 때, 나는 나 이외에 단 1명이라도 내 글을 읽고 긍정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감사하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진은 가능하면 내가 직접 촬영하거나 내가 소유한 이미지를 사용한다는 혼자만의 원칙을 세웠다.  그리고 글이 잘 안될 때는 이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한 사람을 마음에 두고 이야기를 하듯 (나는 정말 말을 잘 못한다. 설명도 못하고, 내가 입을 열어 말하면 사람들의 눈빛이 멍해지거나 딴 곳을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직접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한 자신감은 0에 가깝다) 글을 써나가는 것이다.  가끔 그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하는 사람이 나 자신일 경우도 있다.


글을 쓰면서 쓸데없는 생각은 줄고 쓸데 있는 생각이 늘면서 생각 정리가 되고 시간 관리도 잘 되었다. 마음에 품었던 작은 소망들도 소소히 현실과 가까워지는 진척도 있었다.  하지만 20개의 글을 올리고 힘겹게 21번째의 브런치 글에 '브런치 90일 만의 기적'이라며 아홉 가지의 변화를 시시콜콜 적고 나니 어쩐지 내 카드가 다 오픈된 것 같았다.  거기에 브런치 60만 이상의 구독을 확보한 선배 작가들이 이거 소용없다고 하시니 힘이 쫙 빠졌다.  피할 수 없는 브런치 피로감, Brunch Fatigue!


6월 중순에 다시 시작한 오르간 수업도 어쩐지 진도가 안 나갔다.  심지어 봄학기 13주 차에 연주했던 Bach의 토카타 부분도 다시 연주하려니 소리가 엉망이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인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잊어버리지?  정말 한심했다.   숙제라도 하려고 금요일 오후에 잠깐 레슨실에 갔는데 조금만 옆을 건드려도 '부왕--' 큰 소리로 나의 오류를 알려주는 발 페달도 너무나 부담스럽고.  정말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그런데 신기한 것은 글을 올리지 않은 2주 정도 동안 From Mystery to Mastery (오르간) 글은 하루도 빠짐없이 독자가 있었다.  오르간을 배우려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7월 첫 토요일 오늘도 오르간 수업에 늦지 않으려고 아침부터 서둘렀다.  먼저 오신 동기가 수업을 받고 있었고 나도 Bach의 Toccata와 Fugue 뒷부분 레슨을 힘겹게 받고 오르간에서 내려와 신발을 갈아 신는데 새로운 분이 계셨다.  오르간을 가르치시는 강사 교수님께서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이분.  새로 오신 학생이신줄 알았는데  이 대학 영어교육학과 교수님이며 평생 교육원 원장님이시라고!  그리고 먼저 내게 수필을 쓴 사람이냐고 물어 주셨다.   그렇다고 하자, 내 브런치 글을 감리교 신학 대학교 여러 곳에 올리시고 평생교육원과 관련된 여러 SNS에 올려 주셨다고 했다.  몇 개월 동안 오르간 관련 글이 매일 구독 수를 올린 이유가 있었구나.   그리고 원장님도 오르간 연습을 하시려고 중고 올겐화를 구입하셨다고 하셨다.  내 글을 읽고 오르간을 시작하는 사람이 정말 있는 것인가? 신기하고 감사했다.  1993년에 퀸즐랜드에서 파이프 오르간 의자에는 앉았으나 스탑을 누르지 않아 아무 소리도 못 내었던 황당함 이후 30년 만에 직접 만져보게 된 파이프 오르간  그리고 직접 신어본 올겐화.  그리고 아직도 너무너무 어려운 발 페달 연주.  모든 것이 새롭게 와닿았다.  큰 감사함으로 와닿았다.


단 1명의 독자만 있어도 열심히 내가 끄집어낼 수 있는 것들을 성실히 글로 지어보겠다는 의지가 다시 새롭게 살아났다.  집에 돌아와서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챙겨 오랜만에 로*와 근처 카페에 갔다.  노트북을 열고 오늘의 조회수를 확인하는데 조회수가 150을 넘었다.  지난 열흘 정도 조회수 10 정도가 고작이었는데 어떻게 된 거지?  인기글을 순위를 보니 의외로 '콩포트는 사랑입니다'.   한살림 요리학교에서 금귤 콩포트 만드는 법을 배우고 나누는 과정을 담은 글인데, 아마 여름이 되어 설탕에 저린 과일을 만들려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내 글을 SNS에 올려 준 것인지,  어쨌든 초보 작가치고 1일 150회 이상을 찍는 것이 내게는 즐거운 놀라움. 


브런치 피로감으로 시작했지만 그런 마음 또한 글을 쓰는 동안 정리가 되고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얽히고설킨 내 마음과 인간관계를 풀어보고 싶어서 냉장고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하나둘씩 꺼내기 시작한 글들. 한 명이라도 읽어준다면 감사한 거다. 의미 있는 거다. 잘하고 있는 거다!


스크린에서 눈을 떼고 키보드에서 손을 들어 팔을 펴본다,  심호흡도 깊게 해 본다.  반려 강쥐도 하품을 한다,  3시간 이상을 내 옆자리를 지켜준 고마운 로*에게 가져온 간식을 다 주고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 노트북은 잘 챙기고 브런치 피로감은 다 마신 아메리카노 잔과 함께 트레이에 담아 반납.  로*야.  비 오는 날 긴 시간 내 곁을 지켜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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