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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이모 Aug 14. 2021

모란과 산책을, 모란도와 꿈을.

유난히 모란을 많이 접한 2021년. 부귀와 영화를 꿈꾸려 모란도 그리기

이사 와서 서울로 7017 산책을 참 많이 했다.  겨울엔 나무들이 앙상해도 조명이 근사했고 봄이 되면서 새싹 트고 꽃피는 모습을 보며 산책하는 건 정말 즐거웠다.  새로운 이름의 수목들도 산책하면서 자주 만나게 되니 반갑고 친근해졌다.  


노란 꽃이 특이하고 영문명이 Korean winter hazel이라는 '히어리'라는 식물을 볼 때마다 가수 유희열 씨가 생각나서 미소가 지어졌다.  안정감 있는 삼각형 모양의 반송은 펼친 우산 같아서 umbrella pine이라고 한다는데 이름이 재미나서 아이와 걸을 때면 '반송'되셨습니다 하며 같은 농담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며 웃었다.  턱을 들어야 볼수있는 왕벚꽃과 겹벚꽃이 피고 나서 행인의 눈높이 즈음에서 향기를 뿜어주는 모란의 붉은색이 4월 말이 되자 선명해졌다.


서울로 7017 산책을 할 때마다 모란 옆에 서서 자세히 보곤 했다.  모란이 엄마의 꽃이라던 호주 소설가이며 오랫동안 함께 일로 뵈었던 로드니 홀 (Rodney Hall) 박사님 생각도 났다.   창덕궁 후원의 모란 앞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어머님과 이야기하듯 모란 앞에 서 계시던 홀 박사님 때문에라도 모란은 그냥 지날 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 봄에 매일 보아서 알게 되었는데 모란의 암술과 수술이 정말 아름답다는 것이다.  암술은 다섯 개인데 뚜껑이 붉은 작은 튜브처럼 생겼고 꽃이 질 때 즈음 암술이 갈라지면서 드러날 때 하나하나 보면 꼭 다섯 명의 무용수가 군무를 추는 것 같다.  황금빛 수술도 너무나 아름답고 자줏빛 꽃잎과 진한 향기는 말할 것도 없다.



서울로 7017 고가의 모란  만리동 광장에서 남대문 가는길 중간즈음에 모란과 작약을 모아서 전시해 두었다


이렇게 모란에 취해 5월을 맞고 있는데 미팅 일정 조정을 위해 문자를 나누었던 존경하는 사진작가님께서 댁 마당의 모란 사진을 보내주셨다.  수년 전에 직접 사서 심고 키우신 거라고 했다.  정말 작가님의 메직이라도 들어간걸까 모란의 기품뿐 아니라 향기까지 담겨 있는 듯했다.  또 수년전 통역차 잠깐 스치듯 지난곳이지만 작가님 댁을 다시 찾은듯 마당의 단아한 풍경과 분위기가 사진에서 느껴졌다. 이렇게 모란꽃 사진만 받아도 어쩐지 부자가 된 것 같고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워낙에 피오니 향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이미지 까지 계속해서 보다 보니 덩달아 나도 화려하고 우아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잠시 나마 기뻤다.


사진가 구본창 선생님께서 직접 심고  키우신 스투디오겸 자택 마당의 모란  2021년 5월


그리고 모란꽃이 시들해질 때 즈음 웨이팅을 올려놓았던 주민센터 민화반에 한자리가 나왔다는 연락이 왔다.  집에서 가깝고 수강비도 한달 2만원정도인 민화반.  나는 매주 붓을 들 기쁨에 바로 신청을 하였다.  민화는 아이가 중학교 때 은평 한옥마을에서 한번 체험을 한 적이 있는데 아이는 모란을, 나는 호랑이를 채색했다.  핸드폰보다 조금 큰 크기의 나무 조각 액자에 채색만 하는 체험이었는데도 직접 만들어서 그런지 계속 갖고 있고 또 기회가 되면 민화를 꼭 배워봐야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터였다.   


이미 다른 분들이 수개월에서 수년 수강 중인 반이라 첫 시간부터 나는 모란도를 받았다.   이번에는 한지에 직접 본을 뜨고 채색을 하는 과정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 두 시간 하는 수업인데 여름 태양 때문인지 그림을 그리느라 집중하다 보면 금세 눈이 시리고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팔레트 대신 집에서 안 쓰는 찻잔이나 접시에 물감을 풀어서 써도 된다고 해서 그리 준비했는데 수강 2주 차가 되자 내 경우에는 맞지 않았다.  찻잔 색이 진해서 색이 잘 보이지 않는 것.  그리고 한번 만들어 놓은 색은 말렸다가 또 써도 되는데 찻잔 3-4개로 돌려 쓰다 보니 계속 아까운 물감을 버리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매미가 울기 전까지 올여름 수요일 오후를 주민 센터 민화반에서 보내고 두장의 모란도를 얻었다.  번진 곳도 있고 선도 일정하지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연보라 색으로 그린 모란도는 세상 어디에도 없기에 볼 때마다 뿌듯했다.  


그리고 친한 후배가 '꽃의 왕', 모란이라는 기사와 함께 국립 고궁박물관에서 '안녕, 모란' 특별전을 한다고 알려 주었다.  꼭 가보아야지 마음에 담고 있다가 개막하고 2주가 채 되지 않았을 때 먼저 예약하고 다녀왔다.  우리나라 예술교육의 선진성에 대해 또는 국립 고궁박물관 교육 담당자님의 부지런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가기로 한 바로 전날, 전시에 대한 자료가 우체국 택배로 집으로 배달되어 왔다.  얼마나 감동이었는지.  그 감동과 기대를 가지고 전시장을 찾았을 때 서울에서 보기 힘든 탁 트인 경복궁 앞 공간도 좋았고 국립 고궁 박물관 전시도 디지털, 홀로그램, 모란도 병풍, 옷, 가마, 식기 등 모란을 테마로 한 많은 귀한 작품들이 이해하기 쉽고도 흥미진진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국립고궁박물관 '안녕, 모란'전시  120여점의 유물과 모란을 모티브로 한 미디어 아트등을 볼수있다


10월 31일까지 열리는 '안녕, 모란'. 기회가 된다면 한번 더 가보고 싶다.  부귀와 영화를 상징하는 귀한 꽃 모란, 올봄에  서울로 7017 산책하며 직접 많이 보아서 기뻤고, 지인분들이 보내주신 그림과 사진으로 대하면서 더욱 가까워졌다.  한지에 본을 뜨고 채색을 하며 방점을 찍고 모란꽃을 삐뚤 빼뚤이나마 그리면서 모란도와 친숙해지고 이제 '안녕, 모란' 전시를 통해 그 의미와 선조들의 유물까지 대하고 나니 올해는 어쩐지 모란과 함께 지내는 듯 마음이 밝아진다.   모란이 화려하게 수놓은 옷을 공주의 혼례 때 입히고 모란꽃이 그려진 그릇과 화병을 귀한 시간에 사용하고 천장까지 닿을 듯한 큰 규모의 성대한 모란도 병풍을 벽에 둘렀던 선조님들의 꿈.  


모란 전시회가 있다고 말해준 후배가 대학에 가는 딸을 위해 선물을 보내왔다.  눈에 익은 모란도 병풍이 인쇄된 너무나 예쁜 봉투. 그리고 간단하지만 강력한 축하와 축복의 메시지.  모란꽃과 산책을 하며 시작한 이번 여름, 모란도와 함께 조상들이 꾸었던 그 꿈.  부귀와 영화를 기원했던 그 꿈을 나도 꾸어 본다.

  

주민센터 민화반에서 채색한 모란도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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