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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이모 Aug 22. 2021

생애 최초 독서토론

그림책 한 권에 그렇게 다양한 생각과 내용이 들어 있었다니!

이사온지 서너 달 지나 이웃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동네에서 지역 주민분들과 함께 참여하는 일이 있을지 알아보다가 **문학당 독서 토론에 대해 알게 되었다.  주민센터에서 운영하여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비용은 없이 1달에 한 권 책을 읽거나 영화 한 편을 보고 독서 지도사님의 지도로 1달에 한번 만나 두 시간 토론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독서를 주제로 하는 모임,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첫 번째 토론책은 '곰씨의 의자'라는 그림책.  주민센터 문화행사 담당자님께 책을 받고 서명을 하고 집으로 왔다. 오랜만에 내 손에 그림책이 들렸다.  큰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갔을 때 학부모들이 1달에 한 번씩 그림책을 읽어 주던 기억이 났다.  나는 직장 생활을 하고 있어서 두어 번 정도만 참여했던 것 같다.  작은 그림이 잘 안보일까 봐 크게 확대 복사해서 코팅까지 해서 준비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이라면 프로젝터를 썼을 것을...  


둘째 아이까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서는 수요일 책 읽어주는 엄마 활동도 하였다.  내 차례가 오면 오전 휴가를 내고 초등학교 학생들이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직전인 8시 10분 즈음에 학급에 가서 담임 선생님이 오시기 직전까지 2, 30분 정도 책을 읽어주고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존 버닝햄의 지각대장 존, 권정생 님의 강아지 똥, 앤서니 브라운의 주옥같은 책들을 이 봉사활동 덕에 더 잘 알게 되었고 아이들도 좋아했었다.


그림책하니 퇴직을 하고도 연락을 하는 몇 안 되는 업무차 지인 중 한 명인 Ann James 선생님 생각이 났다. 직장생활 2년 차 즈음 호주 출장 갔을 때 호주 어린이 책 작가분들과 한국 작가분들의 교류를 위해 Books Illustrated라는 멜버른의 어린이 그림책으로 특화된 서점에 간 적이 있다.  마침 그림 작가님께서 자신의 책을 아이들에게 읽어 주는 시간.  그림 그리는 분이 어떻게 그렇게 책도 재미나게 읽으 시는지, 4 - 6세 정도 된 어린이들이 드러눕기도 하고 일어나서 통통 뛰기도 하며 눈이 반짝반짝 집중하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당시 이런생각도 했다. 내가 엄마가 된다면 아이와 호주 멜버른의 Books Illustrated 서점과 가까운 곳에 집을 얻고 적어도 2-3년은 살아봐야지 다짐을 했었다.  아쉽게도 그 다짐을 현실로 만들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때 뵌 작가님과 계속 업무로 교류를 하였고 그분의 전시와 행사에 아이들이 참여하면서 멜버른에서는 아니지만 Ann James 선생님이 진행하는 문화행사에 참여할 기회는 간간히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과 꼭 한번, 애들 말 배울 때 멜버른의 동화책 서점, Books Illustrated에서 그림도 그리고 영어도 배우게 해야지 했던 그 서점에 두 아이가 다 성인이 될 때까지 방문하지 못한 건 조금 아쉽지만 앞으로도 기회가 있기를 바라본다.


이렇게 오랜만에 잡은 그림책 한 권에 수십 년의 기억을 소환하고 정리하다가 아차 어서 읽어 봐야지.  그래야 토론 수업에 참여하지 정신을 차린다.  직접 작가님이 읽어 주는 건 아니지만 주민센터에서 마련해준 독서 토론.  이 그림책 한 권으로 두 시간 동안 이야기 나눌 재료가 나올까?  '곰씨의 의자"는 홍익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 순수미술을 공부한 노인경 작가가 글과 그림을 모두 지었다.  수목이 다양한 예쁜 공원의 긴 의자에서 차를 마시며 여유롭고 평화롭게 시집을 읽는 곰씨.  낯선 토끼의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해 주는 친절을 베풀었다가... 스포를 하면 안 되니 여기까지.  어쨌든 책을 읽는 시간은 그림을 찬찬히 봐도 5 - 10분이면 OK.  나는 첫 번째 독서토론 수업에 참여할 준비가 되었다.


8-9명의 지역주민이 간단히 첫인사를 나누고 지도하시는 강사님께서 질문과 선택 논제로 이루어진 프린트 물을 주시는데 무려 6페이지.  기억에 남는 그림이나 글을 돌아가면서 소개하고 나중에는 속마음을 잘 말하지 못하는 곰씨가 용기 내는 장면에서 자신의 성격과 경험을 나누게 되는데...  자세한 이야기를 여기서 다 쓸 수는 없으나 단톡방에, 이번 독서 토론으로 힐링되었다는 분, 상담을 받고 온 것 같다는 분 등등 함께 보낸 두 시간의 가치는 생각보다 가볍지 않았다.   


그리고 그림을 찬찬히 보면 꽃이 어떤 표정인지, 곰씨가 의자의 왼편에 앉았는지, 그 작은 디테일에 많은 것이 숨어 있었고 책을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같은 그림을 보고도 여러 가지 생각, 의견, 유추 들이 나와서 정말 깜짝 놀랐고 또 덕분에 세대 간의 차이 등을 잘 이해하는 계기도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 간의 거리에 대한 상식과 문화가 다 바뀐 요즈음, 사람 간의 거리 또 자신에게 평화와 안정을 주는 영역을 어떻게 타인과의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유지할 수 있는지 하는 이야기들이 나에게는 참으로 유익한 논제였다.  27년의 직장생활은 통근 시간을 합하면 하루 12시간 정도를 타인에게 나 자신을 노출시키면서 생활해야 하는 루틴인데 이때 평온한 나만의 물리적 정신적 스페이스를 가지기란 참 어렵다.  그래서인지 한 번씩 아프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했다.  의자를 내주고 힘들어하는 곰씨처럼.  


그림책 '곰씨의 의자'에 쓰여진 글과 그려진 그림을 해석하고 바라보는 여러 가지 시각과 의견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과거와 지금의 나를 돌아보며 조금씩 스스로를 이해하고 또 소통하는 방법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생애 최초 독서 토론.  딸아이와 함께 해서 더욱 의미 있고 즐거웠던 시간.  '곰씨의 의자' 저자 노인경 님, 토론을 이끌어 주신 허 유진 숭례문 학당 강사님, ** 동 주민센터 담당자님, 그리고 그림책을 함께 읽으며 다양한 시각과 경험을 공유해 주신 참여자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싫어'라는 말이 '나빠'라는 말과 동의어라고 가끔은 혼동했던, 그래서 꼭 해야 할 말도 못 하다가 쓰러지고 상처 받는 나는 꼭 곰씨 같다.  그래서 여러 과정을 통해 상생의 길을 찾은 곰씨와 토끼의 이야기가 참 잔잔하면서도 유쾌하다.  생애 첫 번째로 해본 독서 토론,  마지막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은 처음처럼 신나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깊어지는 관계 속에서 '싫어'라는 말도, '오늘은 혼자 있고 싶어'라는 말도 해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해 볼 기회가 없었고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저는 어렵습니다."   _노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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