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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이모 Sep 14. 2021

퀸지에서 토요일 보내기

보스턴에서 맞은 3개의 토요일 중 2개를 퀸지에서 보냈다.

현지에 가면 현지인들만 쓰는 지역 이름, 또는 발음에 대해 알 수 있다.  서울 종로구의 아파트 경희궁자이를 '경자'로 마포 래미안 푸르지오 단지를 '마래푸'로 부르는 식이다.  이렇게 동네나 지역 이름을 발음하는 것을 들으면 현지인인지 방문객인지 알 수 있다.


호주에는 Manuka가 대표적.  호주 수도 캔버라 (Canberra)에 쇼핑과 식당가가 아름다운 마누카 (Manuka) 지역. 90년대 초에 호주 외무부에 첫 출장 갔을 때 저녁 식사를 여기서 하면 좋다고 동료가 말해 주었다.  마카?  유명한 마누카 꿀 (Manuka Honey)과 같은 철자이니 당연히 엑센트를 NU에 두었다.  그랬더니 동료가 악센트를 맨 앞에다 두어야 현지인 같이 들린다고 귀띔한다.  마-니커.  치킨 이름과도 비슷한 키가 잘 클 것 같은 Ma-nika -니커. 이렇게 발음해야 한다.


미국의 51개 주 (States) 중 아마 스펠링이 가장 어려울 것 같은 MA, 즉 매사추세츠 (Massachusetts) 주. 인구 약 700만에 미국에서 7번째로 작은 주라고 한다. 이곳에서도 두 개의 현지인이 쓰는 지역명을 배웠다.  우선 스 Mass.  아직은 한 명도 매사추세츠를 끝까지 발음하는 현지인을 만나지 못했다. 매사추세츠는 Mass, 다 줄여서 스.  보스턴의 중심 도로인 Massachusetts Avenue도 Mass Ave.  '스 앱' 하면 된다.  경희궁 자이를 대화에서는 '경자'라고 하지만 내비게이션에서는 줄여서 말하지 않는데 여기 보스턴에서는 내가 지금 까지 타본 모든 차 (주로 Lyft) 네비 앱은 매세츄세츠 에비뉴를 줄여서 매스 앱이라고 하니 말줄임은 여기가 한국 못지않다.


다음은 내 마음에 쏙 들어온 Quincy.  이곳 보스톤의 학생 숫자 중에 큰 몫을 하는 버클리 음대를  졸업한 퀸시 존스와 철자가 같으니 당연히 퀸시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방인 티를 내고 싶지 않다면 꼭 꼭 퀸지로 발음해야 한다.


퀸지에 가게 된 것은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성악가 겸 변역가 선생님, 내가 혼자서 보스토니언 가이딩 엔젤 (Bostonian guiding angel)이라고 명명한 분 덕분이다.  서울에서 수개월 전부터 아이의 보스턴행을 준비하면서 집을 구하는 문제로 많은 조언을 받았는데 톡을 한번 주실 때마다 보스턴 환경이나 상황이 잘 이해되었다.  그리고 도착 바로 다음날 아침 숙소까지 오셔서 퀸지에 데려가 주셨다. 새 학기라 통장 개설을 위해 은행을 방문하려면 3, 4일씩 기다려 약속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여기 보스토니언 (Bostonian) 가이딩 천사이신 선생님께서 2, 30 군대의 지점을 밤새 뒤져 우리가 도착한 다음날 토요일 아침 10시 반에 Quincy지점의 은행과 약속을 잡아 주신 것이다.  토요일인데 은행업무를 보는 것도 신기했고 보스턴 시내에서 25분 정도 운전해서 나가니 정말 영화에서 본듯한 건물들, 그리고 은행 내부도 꼭 쇼생크 탈출이나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 주인공들이 잘 차려입고 품위 있게 업무를 보는, 천장이 높은 성당 같기도 하고 미술관 같기도 한 건물에서 1:1 은행 업무를 보던 딱 그 느낌.  그런 멋진 곳에서 편안히 업무를 보고 근처 퓨전 일식집에서 맛있는 점심 식사도 같이 했다. 돌아오는 길에 퀸지 해변이 참 예뻐 언젠가 또 와야지 했던 곳.


퀸지의 B** 지점  천정이 높고 벽은 미술관같다 건물에 대해 물어보니 1900년대 초에 지었고 처음부터 은행 용도였다고 한다


5일간의 호텔 생활을 접고 렌트한 숙소로 9월 1일에 들어갔다.  들어가는 날 비가 오는대다가 이사오는 학생들 차량으로 거리가 엉켜서 정말 복잡 과장하면 아수라장이었다. 보스턴도 약 2년간 코비드로 모든 캠퍼스를 온라인으로 운영하다가 이번 가을에 다시 학생들을 맞게 된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 숙소가 8월 말 9월 초에 계약이 시작되고 이사는 주로 9월 1일에 몰아서 한다고 하는데 정말 온 시내가  이사를 들어가고 나가고 하는 것 같다.  부족한 것은 근처 Truevalue Hardware에서 사거나 아마존에서 온라인으로 구매. 그렇게 바쁘게 두 번째 토요일까지 보내고.


세 번째 토요일 다시 퀸지를 찾았다.  이번에는 퀸지 해변 도로로 바로 가서 주차를 일찌감치 하고 유명한 해산물 식당 중 한 곳에 들어갔다.  대서양에서 잡아 올린 싱싱한 해산물을 튀겨서 주는 해산물 모듬튀김 (Seafood plater)과 그리스식 샐러드(Greek salad)를 주문해서 파란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참새와 갈매기를 친구 삼아 정말 멋진 브런치를 아주 오랜만에 아주 오래도록 즐겼다.  4km 정도의 긴 해안이 평화롭고 길게 펼쳐진 이곳 퀸지. 정말 좋다. 그렇게 식사를 하고 산책을 하기로 했다.


씨푸드 플레이터는 마치 Fish and chips 같은데 해산물 종류가 더 많다


갈매기, 거위 등 새들이 자유롭게 바다에 둥둥 떠다니고 강아지를 산책시키거나 햇볕을 쬐러나온 휴양객들이 간간히 보였는데 대부분 혼자, 가끔 두 명이 조용히 해변과 일광을 즐기고 있다.  나도 생애 최초 대서양 Atlantic Ocean에 발을 담가 보며 내가 좋아하는 해운대와 청사포를 떠올려 보았다.  지난 5월에 해운대에 갔을 때 갈매기를 한 마리도 못 보았는데 여기로 다 왔나?


퀸지 해변 산책 후 돌아오는 길.  커피를 사야 하니 다시 길을 건너 식당과 카페가 있는 쪽에서 걸었다. 1947년 최초로 Quincy radio를 통해 기상 예보를 했다는 Kent's Carpetland building이 있었던 곳의 공원에 밴치에도 앉아 보았다.  건너편에 코스모스랑 오늘 처음 본 잠자리 세 마리가 가을의 도래를 알린다.  


손에 닿을 듯 푸르덴셜 타워 Prudential towers가 보인다.  Old and New가 있는 것을 모르고 택시를 다른 입구에서 기다리다 놓친 적이 있다.  멀리서 보니 두 타워 사이가 꽤 멀다.  커피 사러 들어간 집, 콜롬비아 원두를 내렸다는 today's coffee를 중간 사이즈로 시켰는데 컵에 담더니 남은 커피가 small size 밖에는 안된다고 난처해한다.  에스프레소를 한잔 추가해 준다는대 혹 잠 못 잘까 봐 사양하고 우유를 넣어 달라고 부탁하고 오는 길에 구수하게 잘 마시면서 더위와 졸음을 이겼다.   


오는 길에 서울에서도 10년 이상 안 갔던 Costco에 들려서 한국 우동도 사고 장갑도 사고 비타민도 몇 개 챙기니 어쩐지 뿌듯.  Everett 지역인데 Mystic View Road라는 이름처럼 안개가 자주 낄 것 같은 아름다운 강변을 끼고 있고 9년 전까지 이 근처에 거주하셨던 가이딩 천사 선생님은 이곳이 이렇게 많이 바뀌었는 줄 몰랐다며 라스베이거스 쪽 투자로 세워진 Encore hotel 등 새 건물 등을 알려 주셨다.


보스턴에 와서 보낸 3개의 토요일 그중 2개를 퀸지 Quincy에서 보냈다.  Quincy의 메스 (매사추세츠)식 발음과 함께 Quincy 해변과 동네는 오랫동안 내 마음에 있을 것 같다.   그리고 Quincy지역의 은행과 식당이 모여있는 중심가의 도로 이름은 Hancock Street인데  허비 행콕 (Herbie Hancock) 생각도 나고 또 곁눈으로 읽으면 '한쿡' 도 생각나는 어쩐지 정겨운 곳이다.   심지어 태권도장도 보았다.  


독일에 오래 사신 둘째 언니가 보스턴에 간다니까 처음 만나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처음에 세탁소를 하는 분을 만나면 세탁소로, 학자를 만나면 학교에서 정착하는 경우가 많다고 우스게 소리로 말씀해 주셨다.  둘째 언니 말씀 대로라면 난 참 운이 좋다. 정말 보스턴에 와서 처음 뵌 분이 살면서 한번 알기 쉽지 않을 것 같은 정말 좋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아름다운 퀸지에서의 추억도 그렇지만 그분의 삶과 별로 관련이 없을 거 같은 내 이야기며 보스턴 생활과 유학생활의 궁금한 점 애로사항을 너무 성실하게 들어주시고 정말 최선을 다해 해결해 주신다.  


이제 집에 가는 길.  사과 수확철이라고 댁 근처 재래시장에서 골라서 사 오신 honey crisp라는 종류의 사과 7개를 예쁘게 씻어 다른 과일과 함께 선물로 주셨는데 정말 맛이 예술!  보스턴에 온 지 3주 만에 바다와 외곽 마을, 그리고 농장에서 갓 수확한 농산물까지 대하고 나니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두려워만 하지 말고 적극적인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작은 친절이라도 보이며 잘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8월말부터 apple picking season. Honey chrisp라는 종류의 사과인데 테니스공 정도의 크기에 단단한 과육  꽤 맛있어서 아삭 한입 물면 두알 순삭은 기본


또 이렇게 도움받고 대접받을 때의 감사한 마음을 기억하며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잠깐 다짐해 본다.


 Quincy. 퀸지와 퀸시.  같은 철자를 써도 발음이 다를 수 있듯이 늘 현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배워가야겠다.  이런 생각을 들게 하고 긴 이동과 이사에 지친 몸과 마음에 한줄기 빛 같은, 내가 보스턴에서 처음 만난, 성악가이면서 번역가이신, Quincy는 퀸지라고 발음한다고 알려주신, 나의 보스토니안 가이딩 엔젤 이분, 꼭 또 다른 공통분모가 어딘가 있을 것 같다.  혹 그렇지 않더라도 퀸지에서 함께 보낸 두 번의 토요일. 나의 보스턴 기록장에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한 것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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