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준비해서 새롭게 이사한 집에서 쥐가 나온다면? 쥐를 잡고 그 집에 살까, 아니면 이사를 나갈까? 참 어려운 문제다. 이사라는 것이 워낙 큰 일이니 아마 99퍼센트는 일단 쥐를 잡아보려고 할 것이다. 집에 오면 쥐 포수가 되는 것이다. '쥐 포수 같다'는 속담은 사소한 사물, 이익을 얻으려 애쓰는 사람을 비유한다고 하는데 쥐가 주는 정신적, 위생적 해악을 생각하면 쥐 포수의 역할은 결코 사소할 수 없다.
생업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쉬러 온 집에서 쥐와의 사투를 벌인다면, 또 두려워서 잠을 못 잔다면, 1, 2주는 잡으려고 쥐 포수 노릇을 하겠지만 만약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이사를 준비하게 될 것 같다. 나라면...
살면서 너무너무 바라던 일들이 이루어질 때가 있다. 분명 꿈에도 그리던 그런 일인데 어쩐지 뭔가 몸이 더 피곤하고 마음이 불편해지고 그런 때가 있다. 왜 그럴까.
큰 꿈을 갖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차곡차곡 돈도 모으고 공부도 하고 모든 절차를 밟아 그 자리에 들어갔는데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적수가 나타날 때가 있다. 50원짜리 동전 크기의 구멍으로도 출입이 가능한 생쥐처럼.
긍정적인 것에 포커스를 하자. 모든 것에 감사하자. 당연히 맞는 말씀. 하지만 그것이 상황을 그냥 안고 가라는 뜻은 아니다. 어려운 상황이나 사람, 숨은 적까지 그냥 손잡고 같이 랄라 룰루 하는 것이 긍정은 아니다.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겨도 있는 그대로 문제를 직시해서 보면 해결책이 있다. 내가 상상하는 것, 내가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 내가 상생이라고 여기는 것과 먼 곳에 답이 있을 수 있다. 긍정과 감사하는 마음은 이때 필요하다. 나의 아집과 경험치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말고 있는 그대로 열어 보이고 대책을 찾아가면 반드시 해결할 수 있다.
진짜 쥐 때문이든 비유적인 쥐 때문이든 사소한 이익을 얻으려 애쓰는 쥐 포수. 이제 그만 하려 한다. 이제 힘들면 쉬었다 가고 나 싫다 하면 안 가고 비위에 맞지 않는 장면은 피해서 가고 넘어질 것 같은 돌부리가 있는 곳은 돌아서 갈 거다.
생각지도 않은 문제가 생겨 자꾸 앞길을 막는 것 같을 때, 당황하지 않고 쿨하게 180도 돌아가는 것도 생각해 볼 거다. 진심으로 진실되게 문제를 대하면 그 모든 문제는 결국 내게 축복이 된다. 긍정은 문제가 축복으로 변할 때까지 믿음의 과정을 지켜주는 바람막이다. 문제를 회피하는 눈 가리게 가 아니다.
어떻게든 지켜보려고 한 사소한 이익. 실제로든 비유로든 쥐 포수 노릇은 하지 말자. 그러기엔 인생이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며 벼루던 미술관 방문길에 올랐다. 보스턴 미술관 Museum of Fine Arts, Boston. 숙소에서 걸어서 8분. 여기 ** westland. 100년 된 건물이라 좀 삐걱 거리는 건 있어도 참 위치는 좋구나. 2차 대전 후까지 보스턴 최고의 호텔 중 하나였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내가 좋아하는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지 하며 찾아간 그곳에서 참 위로가 되는 장면을 만났다.
'이삭 줍는 여인들'과 '만종'으로 유명한 장-프랑수아 밀레 (Jean-Francois Millet, French, 1814 - 1875)의 추수하는 사람들의 휴식 (루스와 보아스) Harvesters Resting (Ruth and Boaz)이다.
1853년 파리 살롱에 등장한 이 그림을 보스토니언 (Bostonian, 보스턴 사람을 이렇게 부른다. 파리 사람을 파리지엥이라고 하듯이) 예술가 Martin Brimmer가 구매하고 보스턴 아세나움 (Boston Athenaeum)과 알스턴 클럽 (Allston Club)에서 전시되었고 이후 보스턴 미술관에 기증되었다고 한다.
루스와 보아스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인물로 남편과 두 아들을 모두 잃은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제 각자 살길을 찾아 떠나라고 했을 때 끝까지 시어머니를 따라간 루스. 그런 나오미와 루스를 위해 이삭을 다 줍지 말고 이들이 먹을 수 있도록 남겨두라고 지시하고 루스를 아내로 맞이하는 보아스의 이야기로 모두 축복된 여생을 보낸다고 쓰여있다. 한 치 앞도 안 보일 때 오늘 하루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가 돌봐야 하는 사람을 위해 남의 밭에서 추수하고 떨어진 이삭을 줍는 마음. 줍는 수고. 이것이면 족하다. 심지도 키우지도 않았지만 먹게 될 수 있다. 축복은 언제 어떤 통로로 올지 모른다. 가끔은 내 계획이 고집이 경험치가 축복이 오는 것을 막거나 다가온 축복도 못 느끼게 하기도 한다. 쥐 포수 노릇에 기가 빠져서...
밀레의 그림을 평소에도 좋아했는데 이렇게 새로운 장면을 밀레가 연출한 공간에서 그가 분장시킨 인물들로 만나니 너무나 새로웠다. 루스의 수줍음, 치마 한가득 시어머니와 자신을 위해 이삭을 주은 모습, 어색해하는 루스를 자신의 식솔과 일꾼들의 식사 자리로, 그러니까 같이 밥 먹자고 안내하는 따스한 보아즈의 모습, 깜짝 놀라는 한두 명의 식솔, 또는 일꾼들의 모습, 모두 너무나 현실 같이 그려서 다 직접 만난 듯,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 같다.
정말 보스턴 미술관 32불의 입장료 아깝지 않다. 수요일 오후에는 잠깐 저렴한 티켓도 있다고 하니 한번 더 방문해서 루스와 보아스에게, 아니 밀레에게 오늘 덕분에 내가 하루 또 잘 견디었다고 이야기해 주고 와야겠다.
밀레의 '추수하는 사람들의 휴식' 보스턴 미술관은 플레시만 쓰지않으면 전시물의 사진촬영이 자유로운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