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고, 캡션 Caption조차 건너 띠며 작가가 누군지 연대가 언제인지 제목이 어떻게 되는지도 보지 않고 그저 그 공간에 세 시간만 더 머무르고 싶다.
20여 년 전 호주 캔버라에서도 모네전을 보았었는데 그때는 제목이 Monet & Japan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899년 완성한 Monet의 수련과 일본식 다리 (Water Lilies and Japanese Bridge)가 너무 좋아 프린트를 한국까지 들고 와서 방에 붙여 두었던 기억도 새롭다. 내가 좋아하는 Monet를 또 만나려고 어렵게 시간을 내어 보스턴 미술관 Museum of Fine Arts, Boston을 찾았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The Met 1890년 개관), 시카고의 시카고 미술관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개관1879년, 소장 작품수 약 150만 점 이상)과 함께 미국의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보스턴 미술관 Museum of Fine Arts, Boston (개관 1870년, 소장품 50여 만점). 1870년에 지방 유지에 의해 설립되어 미국 독립 100주년이 되는 1876년에 개관한 보스턴 미술관은 미국 3대 미술관 중에서 개관 연도가 가장 먼저이다. 그러니까 미국 최고(oldest)의 미술관인 것이다.
미술관이라는 이름 때문에 모네 특별전을 보는 것만 생각하면서 들어갔는데 2층 특별전시장에 가기까지 걷는 동안 벌써 감동의 바다. 상설전시로 고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현대, 악기 등의 섹션이 있는데 방 하나를 보는대도 며칠이 걸릴 듯 충실하고 방대한 양이다. 워낙 프랑스 인상주의 작품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이날 모네의 특별전시를 보면서 모네와 보스턴의 인연, 그리고 당시 드가, 르느와르, 고갱, 로뎅, 심지어 뭉크에 이르기까지 정말 한 점만 대한민국에 와도 뉴스거리가 될 진귀하고 아름다운 작품들이 흔한 로프 하나 없이 전시되어있고 플레시만 쓰지 않으면 사진 촬영도 자유로웠다. 정말 깜짝 놀랐다.
모네 수련 1907 ㆍ 밀레 추수하는 사람들의 휴식 1853
특히 인상 깊었던 작품은만종으로 유명한 밀레 (Jean-Francois Millet, 프랑스, 1814-1875)의 추수하는 사람들의 휴식 (Harvesters Resting, Ruth and Boaz) 1850-53, Oil on canvas이다. 밀레 하면 소박하고 조금은 거친 듯한 질감을 떠올려온 나는 이 작품의 크기와 풍부한 색감, 그리고 한 장면에서 들려주는 루스와 보아즈 이야기가 너무나 생생해서 오래동안 작품 앞에 서있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루스는 가난하고 신실한 과부인데 시어머니를 모시고 추수하고 떨어진 이삭 줍기로 생활을 이어가던 중 배려심 깊은 토지주 보아즈와 결혼한다. 사사 시대 베들레헴 출신의 부유한 농부 보아즈는 나오미와 루스가 충분히 먹을 수 있도록 추수할 때 알곡을 밭에 남겨두도록 한 것. 보아즈와 루스가 결혼하여 얻은 아들 오벳은 다윗왕의 할아버지라고 한다. 밀레가 이 이야기를 그릴 때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는 보아스와 루스의 이야기처럼 공동체의 행복을 추구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배려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자기 부를 축적하려는 지주가 더 많았다는 사회적 상황도 있었다고 한다.
밀레의 루스와 보아즈 작품이 1853년 프랑스 파리 살롱에서 전시되었을 때 보스턴의 예술 애호가 마틴 브리머 (Martin Brimmer)가 구매하였고 보스턴 아테니엄 (Athenaeum)과 알스턴 클럽 (Allston Club)에서 전시되었다고 한다 보스턴 미술관은 이후 카플리 스퀘어 (Copley Square)에 정식으로 1876년 개관되었을 때도 이 작품을 대여 전시하였다. 1906년 이 작품은 보스턴 미술관에 기증되었다.
이런 스토리를 읽으니 보스턴 미술관이 생기기 전에 밀레 등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의 주요 작품을 구매하고 전시한 미국인과 또 전시장 아테니엄이 궁금해졌다. 아테네 성전에서 따온 아테니엄의 이름처럼 고풍스러운 이 건물은 이제는 도서관으로 쓰이고 있다. 단테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아테니엄의 주소는 10 1/2 (주소에 1/2이 들어간 것이 너무 재미있다) Beacon Street. 보스턴 아테니엄은 1807년에 보스턴 앤솔러지 소사이어티에 의해 창설되었다고 한다. 8불을 내면 1일 입장이 가능하고 멤버들만 볼 수 있는 2층과 수장고까지 보고 싶다면 미리 예약하고 1일 멤버십 (약 45불)을 내면 된다. 옛날 사진 특히 스테레오그래프에 관심이 많은 나는 인터넷 예약을 하고 사진을 보러 꼭 다시 와야지 다짐을 하게 되었다.
200년을 이어오는 보스턴 아테니엄
그리고 1876년 최초 개관된 보스턴 미술관은 카플리 스퀘어 Copley Square에 있었는데 지금 그 건물은 호텔로 쓰이고 있다. 페어몽트 카플리 플라자. 지니 이모의 보스턴 3대 맛집 3탄에 조금 더 자세히 적어 두었다.
2021년 9월 18일 (토요일) 미술관 입장료는 모네전을 포함해서 32불. 특별전이 없을 때는 1일 25불. 보스턴 미술관 1년 회원권은 90불인데 특별전시를 제외하고 매일 그냥 출퇴근 해서 예술품을 감상 할 수 있고 카페 식음료 할인도 해 준다. 기회가 된다면 1년 권 끊어서 그냥 작품 앞에서 시간을 오래 보내 보고 싶다. 첫 방문은 너무나 짧았지만 정말 안 가보았다면 몰랐을 아름다움을 조금이나마 맛보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보스턴 미술관은 보스턴의 큰 자랑이며 예술애호가의 7성급 휴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