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에는 아들 녀석과 같은 10살의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가 산다. 현관문 열면 바로 나오는 옆집임에도 불구하고, 다소 조심스러운 마음에 최근 몇 달간은 섣불리 함께 놀자고도 하지 못했다. 그간 우리는 배달 온 물건을 확인한다거나, 매주말 분리수거를 위해 현관문을 잠시 열어두는 사이에 이따금 현관문 틈으로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며 생사를 확인하곤 하는 것이 소통의 전부였다. 물론 이따금 시골에서 보내주신 식재료, 맛 좋은 쿠키, 케이크를 서로의 현관문 고리에 걸어 맛나게 나누어 먹은 적은 종종 있지만 말이다.
한동안 집에서만 머무는 듯하던 옆집 아이는 얼마 전부터 외출을 시작했다. 이따금 배달 온 물건을 확인하러 현관문을 열 때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아이와 눈이 마주쳐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횟수가 점점 늘어났다.
얼마 전, 거실에서 놀고 있던 큰 녀석이 다급하게 나를 찾는다.
"어! 수훈이랑 우찬이, 지금 마스크도 안 쓰고 놀이터에서 놀고 있어요! 나도 놀고 싶은데.. 이제 마스크 안 써도 돼요?!"
"아니. 아직 코로나가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고, 근처에서 확진자도 나왔으니 더 조심해야지. 마스크는 꼭 써야 해."
초난감... 상당히 예민하고 곤란한 상황이다.
순간 잠옷 차림으로 일어나 밥을 먹고, 공부를 하고, 집안에서 놀이를 하고, 하루를 그대로 마무리하는 아이들의 일상이 너무도 안쓰럽고 서글픈 마음이 든다.
"우리 산책 갈까?" 하며 나는 넌지시 묻는다.
"그래." 큰 녀석은 신이 나서 방방 뛰기 시작하고, 작은 녀석은 내게 슬며시 딜을 청한다.
"옷은 내가 꺼내 입을게요. 근데 난 마스크 쓰면 너무 답답해. 나 진짜 힘든데 마스크 안 쓰고 킥보드 타면 안 돼요?"
똘망똘망 사랑스러운 눈으로 애원하는 녀석을 보고 있자면, '그래. 까짓 거 잠깐인데.. 설마..' 싶다가도 아차! 하며 다시금 굳게 마음을 다잡게 된다.
"그건 곤란해. 불편하더라도 마스크는 꼭 써야 해. 나가서는 손으로 마스크 절대 만지지 말고."
"그럼 나 안 나갈래! 코로나 진짜 싫어!!! 코로나는 대체 언제 없어지는 거야.. 코로나 없을 때 정말 좋았는데..."
결국, 큰 녀석만 데리고 잠시 집을 탈출해본다. '역시, 밖으로 나오니 너무 좋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않은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고.. 콧구멍과 입술의 절반은 밖으로 외출 나온, 마스크를 귀에만 살짝 걸쳐둔 어른들이 아들 녀석의 바로 옆을 스칠 때면,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움찔하며 순간적으로 변한 험악한 인상으로 불쾌한 눈초리를 보내게 된다. (물론 그쪽도 유난이라는 식의 눈빛을 내게 다시 돌려주긴 한다만..)
정답은 없다.
누구에게든 처음인 일이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우선순위는 있다.
불확실성이 안겨주는 두려움과 불안은.
모두에게 찾아든다.
그러나,
그 두려움과 불안의 크기는 제각기 다르다.
불확실성이 단기간에 소멸될 수 없다고 보았을 때, 그와 유사한 사전 경험조차 전무하다고 가정할 때, 게다가 하필이면 이러한 불확실성이 가장 민감하고 예민한 구석을 집요하게 파고 들어오기 시작한다면.. 마음속의 작은 새가 정체 모를 괴물로 탈바꿈하는 것은 그저 시간문제이다. 내게는 지금의 코로나 사태가 그러하다. 코로나 전염이 단지 어른들만의 문제로 국한된다면, 그래도 조금은 마음이 가벼울 것만 같다.
어릴 적, 나는 아픈 형제로 인해 한때 어두운 그림자에 갇혀본 적이 있다. 단지 구성원 중 한 명의 병환이자, 한시적인 고통이었을 뿐임에도 지금까지 가족들은 모두 제각기 당시의 트라우마를 달고 살아가고 있음을 간간이 느낀다. 인간의 어린 시절이란, 새로 산 스펀지가 처음 물을 빨아들이듯 모든 경험을 그대로 쏙쏙 흡수만 해댈 뿐 좀처럼 밖으로 배출하는 법을 미처 배우지 못하는 미완성의 시기이다. 게다가 인간은 행복한 기억보다도 불행하거나 억울하고 슬펐던 기억을 좀 더 인상적으로 간직하는 경향이 짙은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어린 시절 겪게 되는 여러 가지 기억들은 아무리 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완전히 소멸되는 법이 없다. 이러한 사실을 몸소 체득한 나로서는 단순 독감도 아닌, 확률에 따라 미니미들에게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지독한 후유증과 트라우마를 남길 수도 있는 코로나라는 녀석이 더욱더 위협적이고 두려울 수밖에..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에도 지금도.. 아무렇지 않게 마스크도 제대로 쓰지 않은 채 거리를 활보하고, '다들 가는데 뭐 어떻냐'라는 식으로 식당과 술집을 매일같이 오가고, '집에서만 있어 답답한 것보다는 낫다'라며 상당히 쿨(?)하게 학원과 수영장으로 아이들을 이리저리 내보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리도 마음이 갑갑해져 오는 것은... 네. 어쩌면... 그냥 제가 쫄보라서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