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파송송 계란탁'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배우이자 가수인 임창정과 당시 핫했던 어린 아역배우가 출연한 영화로 기억한다. 그 영화의 내용이나 주고자 했던 메시지는 하나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지만, 보글보글 끓고 있는 라면 앞에서 송송송 파를 썰고, 탁! 하니 깨뜨린 계란을 쩍! 하니 까서 넣던 장면들은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다.
아침밥을 먹다 말고, 손수 고이 말아낸 계란말이에 눈길이 간다. 노오란 예쁜 빛깔 속에 다양한 것들을 조화롭게 품어내면서도 본연의 맛과 풍미를 잊어버리는 법이 없는, 달걀이란 녀석이 사뭇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라는 만고의 진리에 반박하듯, 단백질과 미네랄을 비롯한 다양한 필수 영양소들을 골고루 품고 있으면서도 고소하게 맛까지 좋은 달걀. 그런 덕에 삼시 세끼 우리의 식탁에서 거의 매일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 녀석은, 찜으로도 탕으로도, 구이로도 소스로도 변신을 하곤 했다. 그러다 이따금 무언가 입이 살짝 심심해질 타이밍엔 여지없이 삶거나 구워진 채로 스스럼없이 우리에게 찾아들기도 하는 계란이란 녀석. 그런 녀석이 나의 눈에 들어오자 좀처럼 녀석에 대한 잡생각이 끊이질 않는다.
이따금 무언가로 분쟁이 일어날 때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큰 소리로 외쳐대며 강력한 분파를 만들도록 조장하는 녀석은, '계란과 달걀'이라는 다소 생뚱맞은 이음동의어의 본질이기도 하다. 게다가 성스러운 부활절 주간에는 해당 종교 여부를 떠나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메인으로 떠오르는 것은 단연, '부활절 달걀'이다. 세상 이렇게나 다양한 모습으로 다채롭게 스스로를 드러내는 존재가 또 있었던가. 이쯤 되면 문득 새삼스럽게도 녀석의 출중함과 부지런함에 일종의 경외감마저 찾아든다.
계란말이 하나를 집어 들고 오물대며 노려보는 사이, 어느새 식탁 위 음식들은 모두 비워지고.. 우리는 또다시 다음 메뉴를 고민한다. "제군들, 오늘 점심은.. 달걀 샌드위치 콜?!" 이래저래 수고가 많은 계란들이다.
[부활절 달걀의 유래_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계란의 바깥쪽에 색을 입히는 것은 피 흘리시는 예수님을 상징한다는 설도 있고, 이미 삶아져 죽어버린 달걀을 보며 우리의 죽음을 기억하고자 다양하게 채색하여 보관한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미 죽어있으나 부활의 그날에 다시 살아나게 되리라는... 어쨌든, 요는 부활절 달걀이란 먹기 위한 달걀은 아니라는... 그간 너무 맛있게만 먹어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