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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ka Sep 13. 2019

여행을 가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말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놀랍게도 이 글에는 이전 글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우물 안 개구리

나는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고, 그 중에 생각의 패러다임을 깰만큼 압도적으로 새로운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학교 안에서, 전공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다섯 개도 채 안되는 옵션들을 재고 따지며 전전긍긍했다. 아침에 눈 뜨면 부랴부랴 수업에 가기 바쁘고, 과제나 시험공부로 바빠 식사는 대체로 컴퓨터 앞에서 떼우기 바빴다. 일상에서 약간의 변수는 그저 일주일에 한 번 남자친구와 함께 하는 식사, 영화, 카페 정도가 전부였고, 새로울 것은 하나도 없었다.


미래에 관해서건 일상의 모습에 관해서건 그게 무엇이든간에 내가 가야하는 길은 정해져있다고 생각했다.


여행은 편견, 완고함, 편협함에 치명타를 날린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단지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여행이 몹시 필요하다. 인간과 사물에 대한 광범위하고 건전하며 너그러운 견해는 일생 동안 지구의 한 작은 구석에서 무기력하게 지내는 것으로는 얻을 수 없다.
- 마크 트웨인, 『마크 트웨인 여행기Innocents Abroad』(1869)


그 때 낯섬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뻔하고 익숙한 환경을 떠나 머나먼 유럽 땅에 발을 디디니 미디어나 책에서 보던 완전히 다른 문화와 완전히 다른 삶의 모습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왔다.


초등학교 이후 처음으로 비어있던 TODO 리스트는 나에게 조금만 더 파도에 가까이 가보라고, 파도의 일부가 되어보라고 등을 떠미는 것 같았다. 덕분에 나는 나의 인지를 꽉 붙들어 매고있던 틀 너머를 엿볼 수 있었다.


복작거리는 트램과 버스 안에서 항상 들려오는 'Sorry'와 다른 승객을 불편하게 하지는 않을까 조심스레 움직이는 행동들. 아이를 데리고 산책하는 '아빠'들. 쇼핑몰, 영화관, 카페가 아니라 강변과 공원에 앉아 집에서 챙겨온 생야채를 우적우적 씹으며 대화하는 젊은 친구들. 언제나 보행자우선인 횡단보도. 커다란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부서지는 햇살.


이 모든 일상의 작은 모습들이 너무나 새롭고 아름다웠다. 크게 다를 것도, 대단히 특별할 것도 없는 그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인데 바로 그것이 내가 놓친 것들이었다.


Palmen Garten. 너른 공원과 식물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이런 일상의 모습들이 좋아 '관광거리'보다는 '그냥 사람 사는 곳'을 더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드레스덴 근처, 완벽히 도심에 있는 분수인데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발을 담그고 더위를 식히는 모습(좌) 쾰른 대성당 옆, 가족단위로 산책나온 사람들(우)


(이렇게 보니 내가 왜 독일을 유독 좋아하게 됐었는지 알 것 같다. 프랑스나 체코와 같은 나라는 크고 유명한 관광지만 방문한 반면 독일은 관광지가 아닌 곳들을 구석구석 돌아다녔었다.)



여행을 마치고는 삶의 지향점이 달라졌다

전공한 분야에서 무작정 열심히 하는 것만이 내가 가야할 길이라고 나를 채찍질해왔다. 그로부터 먹고 살 만한, 이왕이면 금전적 여유를 조금 보태줄 수 있는 적당히 넉넉한 소득을 받는 것이 목표였다. 따라서 지근거리에 있고 생산적인 것처럼 보이는 쳇바퀴들만 골라 스스로 그 안에 가둔 뒤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아무도 그 밖의 것들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리고 내 주위의 어느 누구도 그 밖에 있는 어떤 것들을 ‘잘’ 누리는 경우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잠시간 채찍을 내려놓으니 공부와 일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살아감에 대한 본질적 이유를 다시금 되짚어보게 된 거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이유가 무엇이 됐든 일상의 순간에 누릴 수 있는 여유는 나를 쉼과 사색으로 이끈다는 것, 그래서 그 순간들을 의지적으로 만들어내야함을 배웠다는 사실이다.


관점은 여행을 떠나야 비로소 변화한다.
- 제임스 볼드윈, 『산 위에 가서 말하라Go Tell It on the Mountain』(1953)


일상을 여행처럼

나는 여행에서 보았던 일상의 모습들을 내 삶으로 끌어오기 시작했다.


여행 중에는 거리에 있는 과일가게에서 과일을 사고 파는 모습조차도, 마트에서 장을 보는 모습조차도 너무나 아름다워보였다. 나는 주로 손질된 과일을 사서 후다닥 먹어버리고 밖에서 끼니를 해결해왔다. 그러나 재료를 준비하고 조리를 하고 뒷정리를 하는 그 일련의 과정 중에 여행의 아름다웠던 장면들이 겹쳐지는 순간, 들뜨고 신나는, 어쩐지 낭만적이기까지한 일로 착각(?)하게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뉘른베르크 근처의 과일 노점상


일부러 시간을 내 아무도 없는 학교 옆 작은 계곡에 가서 책을 읽다 오기도 하고, 사람없는 한강에(요즘은 바글바글거리지만 불과 4-5년전만 하더라도 썰렁했다.) 도시락을 가져가 산책을 하기도 했다. 학교 안에 있는 미술관도 처음으로 가보고 활동반경에는 몇 없는 노천카페에서 한참을 멍하니 있어보기도 했다.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리다 마시는 맥주 한 캔은 꿀맛이었다.


물론 여러 물리적인 부분에서 그 느낌은 다르겠지만 내 삶에 '틈'과 '여유'를 주는 방법을 배운 것은 사실이다. 그로 하여금 나는 내가 놓치고 있던 주변의 아름다운 것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생각하게 됐다.


오랫동안 떠난 당신은 다른 사람으로 돌아온다. 당신은 결코 갔던 길을 되돌아오지 않는다.
- 폴 서루, 『아프리카 방랑』


아무도 없는 학교 옆 계곡에 성경을 들고 가 읽었다....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애 같은데 암튼 당시엔 갬성 충만한 상태였다....


그래서 여행은 계속됐다. 그렇지만..

‘새로움’은 내 삶을 조망케하는 촉발제였고 열심히 굴러가는 쳇바퀴에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가치였다. 나는 그 신선함에 매료되어 그 다음 해에도 여행을 가고, 그 다음 다음 해에도 여행을 갔다.


그런데 새로움이라는 것은 대상이 무엇이냐를 불문하고 몇 번 겪고나면 사라지고 만다. 여행을 거듭할수록 나에게 새로움은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여행이 익숙해질수록 내 일상은 멈춰지는 것이 아니라 여행 속에 교묘히 파고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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