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물적 동기, 그 지속불가능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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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여행처럼
일상에 여유를 주기로 다짐한 뒤로는 뻔하고 익숙한 하루가 때때로 아름답게 보였다. 내 인생에 첫 여행이 없었더라면 소설 길리아드에서 목사이자 주인공인 존이 평범한 어느 오후를 예찬하며 쓴 일기를 단 한 글자도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아마 이렇게 생각했겠지. '겨우 이런 게 아름답다고? 삶이라고? 세상이라고? 눈에 띄는 대단한 성취 하나 없이 뭐가 아름답다는 거야?'
내 방 창으로 비눗방울이 스치더니 팽팽해지며 푸른색으로 변하다가 결국 터져 버리는 걸 보았다. 마당을 내려다보니 거기 네가 있더구나. 너와 네 어머니가 고양이 '소피'에게 비눗방울을 불어대더구나. ... 두 사람은 고양이에게 집중하느라 자기들이 한 일이 하늘에서 맺은 결과를 보지 못하더구나. 정말 아름다웠는데. ... 두 사람은 가운데에 비눗물을 놓고 바닥에 꿇어앉아, 반짝이는 비누방울을 하늘로 날리고 웃음을 터뜨렸지. 아, 이게 삶인 것을. 이게 세상인 것을.
- 메릴린 로빈슨, 『길리아드』
그러나 이제는 무슨 말인지 안다. 나도 때로는 내 하루의 부분 부분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별 것도 아닌데 아름답고 낭만적이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매일 타던 2호선이 지하에서 나와 지상으로 달릴 때, 부서지는 햇살과 창밖의 스쳐가는 나무들이 여행 중에 어느 도시론가 향하던 기차를 떠오르게한다. 그럴 때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내 하루에 여행을 얹은 것이다.
나는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 이후 떠났던 여행들은 나에게 더 이상의 새로움을 주지 못했다.
하이델베르크는 정말 아름다웠다. 높은 성에서 한눈에 담아보는 모습도, 길을 잃어 구석구석을 헤매며 보는 가까운 모습도 아름다웠다. 그런 도시를 바로 다음 해에 다시 갔더니 놀랍게도 별 감흥이 없었다. 그 옆 대륙의 캐나다를 갔다. 사람사는 모습은 다 비슷했다. 영 특별한 게 없었다. 전혀 다른 문화권인 하노이와 호치민을 갔다. 서울보다 더 복작스럽고 어디를 가도 나를 돈으로만 보는 눈길이 부담스러웠다.
이럴거면 그냥 서울에, 한국 어딘가에 있는 게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꾸준히 들었다.
좀 비싸지만 한국에서도 양질의 클래식 공연을 볼 수 있고, 작품의 양이나 구성은 조금 아쉽지만 나름대로 잘 짜여진 전시회를 관람할 수 있다. 유럽, 아메리카, 심지어 동남아 분위기를 갖춘 카페와 음식점들이 넘쳐난다. 힙지로에 가면 하노이의 여행자거리와 흡사 비슷한 기분을 낼 수 있다. 서울시 덕분에 한강의 관리상태와 자전거 대여 인프라도 여느 유럽국가 못지않다.
내 나라에서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위해 피같은 연차를 몰아쓰고, 쥐꼬리만한 월급을 한 방에 지출한다? 내 안에서는 끊임없이 '굳이? 그걸 위해? 그렇게까지?'하는 비관적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공짜로 보내준다면 모를까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재미가 없어서 노-오-력 하고싶은 마음이 안든다
물론 내가 근래의 여행에서 '덜' 노력하고 있던 것도 사실이다.
처음엔 어디를 가도 열정적으로 그 공간의 역사를 배우려고 노력했다. 현장에서 얻는 지식습득 자체가 나에게 즐거움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전쟁과 정복, 종교의 역사는 어딜가나 숱하게 반복되고 있었으므로 비슷한 내용들이 거듭됐다. 도시마다 여행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안달난 지식들은 그 양이 어마어마했으며, 제한된 기간을 가지고 여행하는 나에게는 시간이 부족했다.
심지어 현장에서 지식을 습득하는 편보다는 잘 정리된 책 한 편을 읽는 것이 더 효율적인데다가 효과적이기까지했다. 나는 역사학자도 아니고 소설가도 아니고 탐험가도 아니고 기자도 아니므로 이 모든 현상에 대하여 급격히 흥미를 잃었다. (처음엔 박물관을 발에 땀이 나게 다녔지만 요즘은 거의 가지 않는 이유다.)
또 다른 노력은 최대한 고립된 것처럼, 아날로그적으로 시간을 보내려 했던 것이다. 스마트폰을 멀리 한 것, 가족이나 친구들과 연락을 최소화한 것, 한국인들과 마주치는 것을 피한 것, 종이지도와 종이메모장을 들고다닌 것,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현지인들에게 적극적으로 물어본 것 등이다.
나는 휴대폰이 여행 경험에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생각한다.
-폴 서루, 여행자의 책
그러나 여행이 일년에 한 번 찾아오는 명절처럼, 연휴처럼, 그저 약간 다른 종류의 일상이 되어버리니 굳이 본래의 일상을 끊어내야하는 명분이 생기지 않았다. 따라서 여행 중 내 일상은 멈춰지지 못하고 여행 속에 교묘히 파고들었다. 자연스럽게 한국에 있는 지인들과 연락을 이어가고, 가끔은 회사 메일도 확인하고, SNS 업로드도 하는 등 여행을 하면서도 일상에서 동진하고 있었다.
흥미요소를 잃은 나는 그저 심드렁하게 '오 이런게 있군, 아주 놀랍진 않네, 어차피 사람 사는 건 다 똑같군'과 같은 감상을 내뱉을 뿐이었다.
속물적이면서 지속불가능한
항공권은 이미 끊었는데 상황이 이렇다보니, 어떻게든 나를 설득시키고자 몇 가지 속물적이고 허영적인 이유들을 떠올린다. 주로 소소하거나, 지속기간이 짧거나, 자극적이거나, 소유로부터 오는 1차원적 기쁨을 가져다주는 것들이다.
1. 말할 거리가 생긴다
말할 거리가 생기는 것의 이면에는 '경험'이 쌓인다는 의미가 있다. 긍정적인 면이다. 하지만 그것이 비슷한 곳을 또 가게끔, 그곳에서 여행의 기쁨을 기대하도록 만들기엔 한참 부족하다. 노잼이지만 오로지 말할거리를 만들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란..!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2. 자랑할 거리가 생긴다
나는 여행을 자랑할 사람이 주위에 많지도 않을 뿐더러, 여행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종종 마음이 불편하다. 아직 공부하고 있는 친구, 동생들이 많고 시간적 여유가 안되는 바쁜 친구들이 많은데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걸 보여봐야 속이 편할리 없다.
3. sns에 업로드할 거리가 생긴다
게다가 아무리 자랑하고 SNS에 올려본들 더 멋지고 화려하게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국적을 불문하고 쌔고 쌨다. 그런 걸 달성하기엔 내가 가진 시간도 돈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나도 알고 너도 알고 모두가 안다.
4. 면세점이나 특정 나라에서 저렴한 기념품을 사올 수 있다.
그 나라에서 아무리 싸다는 걸 잔뜩 구해와봐야 전문적으로 유통업을 하거나 사업을 할 것도 아니고, 그냥 짐만 늘어날뿐이다. 결론적으로는 오가는 비용이 더 크다.
이런 동기들은 결국 전혀 지속될 수 없는 어리석은 이유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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