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ska Sep 08. 2019

강박적인 여행에 대한 의구심

홧김으로 시작된 여행이


우연한 기회로 또 새로운 여행을 계획하는 중이다.


사실 나는 20대 중반이 되어서까지도 여권이 없었다.

아주 어릴 때 해양소년단에서 다녀온 일본여행때문에 발급받은 이후로 한 번도 여권이 필요한 상황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여름, 이름도 기억이 안나는 프랑스의 한 대학 서머스쿨 프로그램(방학동안 다녀오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열려 지원했다가 순전히 나의 실수로 선정이 거절되고, 늘 그렇듯 나 자신에게 분노했고, 홧김에 프랑스 여행을 계획했다.


'여행'은 내 형편에 사치라고 언제나 생각해왔으며, 얼마 안되는 가족여행에 대한 추억은 개고생뿐이었다. 그래서 프랑스 여행을 목표로한 출국이 내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이리라 생각하고 무려 단수여권을 만들었다. 말하자면 1회용 여권인데, 1차로는 주변 친구들이 의문을 품었고 2차로는 남자친구가, 3차로는 엄마가 의문을 품었다.

"아니, 얘는 멀쩡한 여권으로 만들지 세상에, 1회용 여권을 만드는 사람이 어딨니? 너 진짜로 이후에 해외 나갈일 없을 것 같애?"

"어, 최소 10년(일반 여권의 기한이 10년이다)내에는 안나가. 귀찮아."


거기서 끝인 줄 알았는데 여권을 신청하러 가니 이번엔 구청 직원분이 또 여러번 묻는다.

"정말 단수여권으로 하실거예요?"

"후회하실텐데.."

"이러고나서 꼭 다시 만들러 오시던데.."


거기서 끝인 줄 알았는데 이번엔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입국심사 직원분까지 여권 만료기간에 대하여 언급하며 도대체 이게 뭐냐는 표정으로 미심쩍게 묻는다.

"Why is your passport's valid period only one year?"


문제의 단수여권


취업하면 꼭 다시 와야지!

그렇게 파리를 포함한 24일간의 유럽여행을 마치고나서 한 제일 큰 결심은 취업하고 꼭 다시 오겠다는 거였다. 서양문물을 처음 경험한 나는 이태껏 봐오지 못한 어마어마한 세계가 존재함에 놀랐고, 그 이후로 매년 억지(?)로라도 여행을 떠난다. 해를 거듭할수록 삭신이 쑤시고, 여행후유증의 회복이 더디고, 길게 휴가를 쓸 수 없게되기에 조금이라도 기력이 남아있고 회사에서 책임질 일이 덜할 때 부지런히 다니겠다는 다짐이다.


그런 다짐의 일환으로 중국 여행을 예정해뒀는데, 하필 바로 전 주에 출장을 갈 일이 생겨버렸다. 이왕 가는 거 근처에 있는 나라로 여행을 다녀오자 싶어서 중국대신 스위스를 다시 한 번 가기로 했다. 무시무시한 물가를 자랑하는 덕분에 예상 여행비가 상당했다. 양치를 하면서 곰곰히 생각해본다.


모든 것이 너무나 새로웠던 유럽, 그 중에서도 나를 움직이게 했던 프랑스. 사진은 튈르리 정원


이 돈을 내면서까지 가야하나? 당췌 여행이 뭐길래?

매년 귀찮음을 이겨내 항공권을 예매하고, 비행기 탈 날이 다가올수록 저질러놓은 일에 대해 몸서리를 치며 후회하면서도 여행을 가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한 두번 하는 고민은 아니었다. 이전엔 항상 그 대답이 '경험'과 '배움'으로 귀결됐다. 나에겐 대한민국과 일본말고는 이 지구 전체가 생소한 별이었기에 몸으로 부딪히며 배우고 느낀 것이 많았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나름 갈만큼 가지 않았나. 도대체 여행이라는 것이 나에게 뭔가?


당시에 가보고 싶은 도시들을 표시해두었던 유레일맵의 일부. 어이구.. 욕심도 많다.


아래에서 계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