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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ka Sep 05. 2019

4월 둘째주의 경주, 둘째날 반과 셋째날

말로만 듣던 동궁과 월지

둘째날 저녁을 먹기까지는 참으로 험난했다.

첨성대에서 호기심에 향 동산 국립경주박물관 방면이며, 그곳은 식당가와는 꽤 먼 곳이다.

지도를 열심히 뒤져가며 먹을만한 곳을 찾아 경주역 반대방향으로 도보 3분 쯤 걸어 어떤 한식당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곳은 브라운슈가라는 양식 레스토랑으로 바뀌어있었고, 어쩐지 경주에서 양식은 먹고싶지 않아 도보 10분 거리의 수석정으로 향한다.

이미 너무 오랜시걸어 지친 상태였지만 정갈해보이는 한식 코스가 있기에 하루의 고생을 보상받는 셈 치고 방문해보기로 했다.


에피타이저, 동충하초, 장뇌삼, 전복초, 그리고 육회
소고기버섯구이, 잡채, 떡갈비, 해초국수, 갈비찜
대하, 마지막 식사인 비빔밥

멀리까지 걸어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연근, 마, 우엉이 두 편씩 준비된 독특한 에피타이저가 입맛을 사로잡기 시작해 맛깔난 떡갈비, 갈비찜 등을 지나 마지막 식사로 서브된 비빔밥까지 아주 괜찮다.

가격을 놓고 따져보자면, 원가 자체가 비싼 재료들을 사용하는 건 아니니 좀 과한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 재료들로 내는 최종적 결과가 나름 훌륭하기에 만족하기로 한다.


부른 배를 두드리고 나오며 "이렇게 고-오급진 식당에 캐주얼 차림의 우리같은 뚜벅이 여행자들은 잘 없었을거야 그치?" 하는 자조적 농담을 던진다.



해가 다 져 쌀쌀한 날씨에 동궁과 월지를 향해 걷는다.

낮에 첨성대의 상황(?)을 보고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동궁과 월지에도 어마어마한 인파로 가득하다.

티켓 구매도 한 세월이요, 입장도 한 세월다.

(대릉원에선 동궁과 월지 입장권을 묶어서 판매하니 같은 날 방문한다면 티켓 구매에 소요되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동궁과 월지

초입에서는 생각했던 것에 크게 못미친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람은 북적대지, 빛에 비취는 건 별로 없지, 왜 이렇게 이 곳이 유명하지? 했는데 안쪽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감탄을 뱉게된다.


아, 어떻게 그 오랜 옛날에 이런 공간을 만들었을까.



보통 해외여행이라면 주저하지 않고 유럽을 선택하는 편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유럽의 건물들을 사랑하기 때문인데, 특히나 왕실이 썼다던 커다란 궁이나 성은 건물 자체의 외형뿐 아니라 화려함의 극치인 내부 인테리어들도 몹시나 눈을 즐겁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건물들은 보통 자연과 꽤 단절된 편이다.

정원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마저도 제한된 종의 나무를 제한된 규격으로 심어 제한된 모양으로 가지치기를 하며, 제한된 풀과 꽃들을 인위적인 문양으로 다듬는다.


벨베데레 궁전 (출처: 구글 이미지검색)

그러나 우리의 건물과 공간들은 대체로 자연의 존재를 고려하고, 그 공간을 채우는 식물들도 그들의 모습 그대로, 자연스레 자라나도록 조성하는 듯 보인다.

연회장이라는 관점에서 보아도, 유럽의 연회장들은 자연과는 완전히 구분되어있는 실내 형태이나, 동궁과 월지는 (인공호수이기는 하지만) 햇볕이 들고 바람이 드는 정자와 같은 오픈된 형태의 전각들이지 않나.

유럽의 전통적 연회장이 화려하고 웅장한, 그러나 인간에 의해 조성된 인위적 산물이라면 신라의 연회장은 수수하나 아름답고 우아한, 자연 속에 이질감없이 녹아들어간 조화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셋째날 아침, 기차시간에 맞추어 불국사역으로 향한다.

일요일 저녁 스케쥴만 없었다면 경주에서 식사를 한 끼 더하고 떠났을텐데 아쉬움을 남겨두고 기차에 오른다.


불국사역 앞

경주 안녕!

다음엔 스쿠터 말고 차를 렌트해서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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