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봄꽃의 향연
여행중에는 언제나 시차가 있건 없건 이른 아침부터 눈을 뜨게 된다.
하루종일 이리저리 쏘다니며 걸어다닌 탓인지,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잠에 들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깊은 잠에 빠지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도 한산할 것을 기대하며 아침 일찍 불국사로 향한다.
그러나 왠걸, 주차장으로 들어서려는 차들이 줄지어 있다.
핑크색 조그마한 스쿠터가 어물쩡거리며 그 줄에 끼어있으니 답답했던 건지 안쓰러웠던 건지 바로 앞에 서있던 승용차에서 머리가 빼꼼 나온다.
뭐라고 하는 지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지만 "~~를 가려면 그냥 가요 쭉!" 과 같은 말을 툭, 내뱉었다.
무슨 말일까 2초 정도 고민하다 앞으로 '쭉' 올라가본다.
한참을 올라간다.
석굴암 방향인 것 같은데 20여분을 올라가도 끝이 보이질 않는다.
지도를 찾아보니 도보로 1시간 40분, 차로 15분이 걸리는 거리였다.
이 느릿느릿한 스쿠터로는 30여분 쯤 달린 것 같다. 어김없이 차가운, 해가 완전히 뜨기 전의 산 속이라 더욱 더 차가웠던 칼바람을 맞아가며.
기부금을 내고 치는 무작위한 종소리를 들으며 석굴암 방향으로 올라간다.
아주 짧은 산책로를 지나면 등장하는 석굴암.
십수년 전에도 이 곳에서 일제의 만행에 부들부들 떨었는데 이번에도 다를 것은 없다.
그마나도 잘 보존된 것이, 이태까지 잘 버텨준 것이 감사할 따름.
내려오는 길에 색색의 연등에 잠시 눈길을 뺏긴다.
가족의 소원이 담긴 색색의 등.
한 명 한 명 사랑하는 이름들과 함께 이 시간을 기록으로 남긴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아닐런지.
다시 불국사로 내려간다.
11시 즘이었는데 올라올 때보다 차가 많다.
서울 곳곳에 있는 궁의 모습과 경주의 불국사는 그 크기와 건물의 배치가 꽤나 닮아있다.
서울은 조선시대에도 중요한 위치였으니 그정도 규모의 건물들이 세워진 것일진대, 그렇다면 시간적으로 한참 전인 신라시대의 경주는 얼마나 핵심적인 도시였기에 이런 큰 터에 절이 지어졌는가?
또한 불국사와 석탑들, 그리고 석굴암을 미루어볼 때 얼마나 진보된 건축술과 조각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가?
새삼 경주가 달리 보인다.
불국다원에서 보리빵과 쌍화탕을 한 잔 하고 숙소 근처의 밀면집으로 향한다.
첫 날 먹었던 밀면에 너무나 실망한 나머지 그것이 진정한 밀면의 맛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진짜 경주밀면은 분명 다른 맛이 있을거라는 기대감이다.
불국사가 숙소 근처였으므로 첫 날 식사했던 대나무 고깃집 옆 가야밀면전문점에서 비빔밀면과 물밀면을 주문한다.
경주역 밀면식당보다는 훨씬 낫지만 부산 밀면 혹은 서울의 새콤매콤한 밀면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는 건 사실이다.
경주식 밀면은 이런 맛이구나, 깨닫는다.
아차, 여긴 만두가 꿀맛이다.
스쿠터를 반납하러 경주역으로, 그리고 경주역 옆 황리단길을 거쳐 첨성대로 향한다.
우리도 연 좀 날리는데 이 날은 이미 날고 있는 연이 너무 많아 패스!
정작 첨성대는 제대로 된 사진을 찍기도 어려울만큼 사람이 많다.
4월의 둘째주, 즉 남쪽의 벚꽃철이 지난 직후에 이 곳에 온다는 것은 첫째날과 같은 한산함으로 조용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즐기게 되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주말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해서 첨성대는 스치듯 보고 넓다란 평지를 가득 채우고 있는 봄꽃 구경만 실컷한다.
가을에는 핑크뮬리로 가득하겠지.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풍경사진만 찍고 있으니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청들이 들어온다.
보수를 받는 것도 아닌데 괜한 욕심을 부려가며 열정 넘치게 찍어준다.
돌아서면 들려오는 '어머 여보 사진 너무 잘 찍어주셨다~' '헐 얘들아 대박 이거 프사각!' 하는 몇 마디에 철없이 좋아하며 내적댄스를...
동궁과 월지로 이어지는 작은 동산을 통해 걷다보니 위로 쭉쭉 뻗은 나무들을 발견한다.
동산을 지나 시내로 나와 저녁을 먹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