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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ka Sep 05. 2019

4월 둘째주의 경주, 첫째날

벚꽃이 다 졌지만 괜찮아

4월 둘째주, 운좋게 얻게 된 연차. 가까운 동남아부터 휴양지들을 쭉 찾아보았지만 오가는 시간대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할듯 하여 2박 3일간의 짧은 여행의 목적지로 경주를 가기로한다.



KTX와 무궁화호를 갈아타고 도착한 경주역은 평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4월의 둘째주-벚꽃이 모두 지고 관광객도 많지 않은 시기-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밀면식당
대릉원 돌담길 다람쥐

경주식 밀면에 실망하고 대릉원 산책을 나서는데 너무나 귀여운 다람쥐가 나타난다.

서울에서 청솔모는 간혹 봤지만 이렇게 예쁜 줄무늬를 가진 진짜(?) 다람쥐가 도심에 있다니.



여행중인 서양인 가족과 부자

왕들의 무덤을 보며 저 서양인 부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나.


대릉원을 한바퀴 돌고 천마총도 들어간다.

어른이 되어 보고 듣고 읽는 문화유산/유적의 의미는 선생님 손에 이끌려 억지로 익힐 때보다 몇 배는 더 와닿는다. 천마총도 수학여행 때 분명 왔을텐데 관련한 지식이 손톱만큼도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은 것을 보면, '수학'여행이라는 건 자발적 동기가 없으면 사실 무용지물인지도 모른다.



그늘진 곳은 벚꽃이 아주 조-금 지지않고 남아있다
하얀 달과 다 져버린 벚꽃가지

경주역에서 스쿠터를 빌려 보문단지로 향한다.

벚꽃은 다 졌는데 바람은 차가워 눈과 얼굴이 고생 좀 했다.

도착해보니 왜 이 주변에 리조트도 많고 호텔도 많은지 너무나 잘 알겠더라.

벚꽃이 한창일 때 다시 와보고 싶지만 그러려면 관광객들로 붐빌 것은 감수해야할 듯 하다.



보문단지 뒤쪽으로 보이는 경주월드

고요한 보문단지를 유유자적 걷는데 허공을 찌르는 비명소리가 웃음짓게 한다.

사진으로는 덜해보이는 데 실제로는 근처도 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아찔하게 서있던 롤러코스터.



넓다란 보문호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오리배와 동그란 보트가 한가로운 경주의 모습을 닮아있다.

급할 것도 복잡할 것도 없이 그저 흘러가는대로 둥실둥실.



이제는 보문단지를 떠나 숙소로 가야한다.


경주역에서 보문단지까지도 참 힘들었는데, 보문단지에서 불국사 앞에 잡은 숙소까지 가는 것도 쉽지 않.

찬 바람은 여전히 불고 있었고, 초행길 운전에 익숙치 않은 것도 한 몫 한다.

무자비한 바람에 눈과, 양 볼과, 귀를 희생시키고 있자니, 걷기에 좋은 날씨가 스쿠터를 타기에는 이리도 가혹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배운다.

(다시는 스쿠터를 빌리지 않으리.)


안녕 보문호!


쉴 새 없이 찬바람을 맞으니 몸이 완전히 방전됐는지 배가 고플 시간임에도 무언가 먹을 의욕은 나질 않고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버린다.

아, 이러다가 병이 날 수도 있겠는데? 싶은 정도로 컨디션이 안좋았으나 다행히도 십여분 이불 속에서 몸을 녹이니 에너지가 돌아오면서 허기가 밀려온다.



근처 식당들을 인터넷으로 찾아보았지만, 큰 대로조차 텅텅 빈 한산한 금요일 저녁에 과연 영업을 하고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후보군에 있던 채식뷔페는 문을 닫았고, 맞은편 대나무 고깃집은 영업중다.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향, 익숙한 분위기가 맞이한다.

아주 어릴적 부모님과, 혹은 친척들과 함께 가던 전형적인 옛날 고깃집이다.

따뜻한 온돌에 몸을 녹이며 맛깔스러운 밑반찬들과  질좋은 삼겹/양념돼지갈비를 정신없이 집어먹다보니 사진 한 장 남겨두지 못했다.

그렇게 대단히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돌아와 첫째날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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