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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ka Jan 04. 2022

성탄카드, 그리고 신년카드

씰을 우표대신 붙이면 되는 건가요?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다니!


대학시절 우연치 않은 계기로 친하게 지내게 된 언니가 있다. 내 룸메이트도 아니고 과 동기의 룸메이트였던 언니인데, 학교 기숙사 같은 층에 지내면서 자주 마주쳤다. 긱순이(집순이의 기숙사 버전)였던 나와 언니는 기숙사 조식과 석식을 꼭 챙겨먹은 탓에 더 자주 만나게되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주로 서로가 가진 꿈과 야망, 진로와 미래에 대해서였다.


내 룸메이트도 아닌 친구의 룸메이트 언니와 친하게 지냈던 것은, 나만큼이나 큰 꿈을 꾸고 있었고 우리 둘 다 미래지향적인 대화를 좋아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성향상 비슷한 부분도 있긴 했지만, 우리가 '나이팅게일' '박애주의자'라고 별명 붙여줄 정도로 나긋나긋함과 상냥함을 잃지 않았던 면이 나와는 또 정반대였다. 단호할 땐 얼음처럼 냉정하게 돌변하는 언니를 보며 '세상에 이런 사람이 존재할 수 있구나, 멋지다!'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첫 번째 편지


한 살 위인 언니가 졸업 후 오랜 수험생활을 하던 중에 나는 새로운 학문을 하겠다며 이듬해에 졸업을 한 뒤 편입을 했다. 2년 안에 두 번째 공학학사 학위를 따겠다는 당찬 목표로 눈코뜰새없이 바삐 지내고 있었다. 언니와 같이 다니던 학교가 아닌 새로운 학교 기숙사에서 늘 수면부족으로 시달리던 중에 언니는 안부를 물어왔고 손으로 쓴 편지를 보냈었다.


과제와 시험에 시달리던 당시의 나에게는 그토록 정성담긴 편지를 가슴깊이 음미하고 품어낼 감성이 없었다. 아니, 0도 아니고 거의 마이너스에 달하던 때였다.



두 번째 편지


시간이 흐르고 나는 지금 다니는 회사에 취업을 해 직장인 신분을 마냥 즐기고 있었고 여전히 수험생 신분으로 고행하던 언니와는 당연스럽게도 왕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연락이 왔다. 카카오톡이 국민메신저로 자리를 잡은지 한참 지났던 시점에도 언니는 문자메세지로 안부를 물어왔다.


그리곤 며칠 뒤, 언니에게 또 한 번의 손편지가 도착했다. 자신은 국립암센터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러이러한 시험을 위해 여유시간에는 전처럼 공부를 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다며. 시간적 여유가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바로 답장을 보냈지만 언니를 못본지 오래된 탓이었을까 그다지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세 번째 편지?


또 몇 년의 시간이 흘렀고 나는 그 사이 결혼을 - 정확히는 혼인신고를 했고 유부녀 2년차가 되던 올해 1월 말, 프로필 사진은 없지만 H 언니의 이름 석자가 적힌 카카오톡 메세지가 왔다. 내용은 내 또래가 보낸 메세지 치고는 무척 건조했다. 언니가 가지고 있던 내 번호가 그새 바뀌지는 않았을까 걱정한 모양이다.


"진아야? 번호 바뀌었을까봐 일단 간단히 남겨. 나 H야, 이제야 여유가 생겨 고민하다가 남겨본다."



아, H 언니다!


그렇게 언니와 연락이 닿아 우리는 거의 8년만에 만났고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요즘은 무얼하며 지내는지 쉴틈없이 이야기꽃을 피웠다. 다행히 언니는 긴긴 수험생활을 끝내고 원래 준비하던 것과는 다른 진로를 택해 대학원에 가게되었다고 알려왔다. 언니에게 너무나 기쁜 소식이었음은 당연한 일이고, 나 또한 진심으로 기뻤다. 언니가 그 동안 꿈을 위해 얼마나 오랜시간 달려왔는지 알기에.


언니 역시 이제는 조금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신혼집에도 초대했었고 이런저런 일들로 연락도 종종 했다. 그리고 맞이한 올 해 연말, 언니가 또 한 번의 카드를 보내겠다고 연락해온 것이다.



맞아, 난 참 무심한 인간이었어


"진아야, 성탄카드 보낼건데 그 때 놀러갔던 그 주소로 보내면 되지?"


언니에게 '우표'가 붙은 편지를 처음 받은지 벌써 수년이 흘렀다. 요즘에도 손으로 직접 쓴 우편물을 보내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우체통을 찾기조차 어려운 디지털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언니는 또 카드를 보냈다.


언니와의 연이 끊기지 않고 이렇게나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건, 바쁘고 정신없을 와중에도 나를 잊지 않고 연락해주었던 따뜻한 마음 덕분이었다. 우리가 알게된지 벌써 10년이 넘어가는 이 시점에 언니에게 또 한 번 정성이 가득 든 편지를 받아들고는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차올랐다. 이전에 보내온 언니의 다른 편지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때로는 학업에 치여, 때로는 게으름에 잠겨 감사할 줄 몰랐던 철없던 과거의 내 모습 때문이었다.


언니의 카드를 정리하며 오래전 받았던 또 다른 편지들을 다시금 꺼내 읽어본다. 나에게 마음을 전한 소중한 사람들이 참 많았구나. 그럼에도 난 참 무심한 인간이었어…!



씰을 우표대신 붙이면 되는건가요?

언니가 새빨간 봉투에 넣어 보내온 크리스마스 카드와 내가 쓴 신년카드들


언니의 성탄카드 덕분에 그간 고맙고 그리웠던 사람들에게 줄줄이 신년카드를 쓴다. 주소까지 꼼꼼히 적어넣은 카드들을 들고 실로 오랜만에 우체국을 방문한다.



12월 말에 한 번 보낸 뒤, 1월 초에 무인접수기에서 한 번 더 보냈다.

운이 좋게도 크리스마스 씰을 판매하는 마지막 날이다. 씰이라니! 초등학교 때  번 사보고 그 이후론 구경도 못했던 것! 앞자리에 앉은 친구가 넘겨준 구매희망자 명단에 이름과 수량을 쓰고, 엄마가 주신 천원짜리 몇 장을 담임선생님께 낸다. 반짝반짝 눈쌓인 배경에 루돌프와 산타할아버지가 그려진 씰받아들고는 쓰기가 아까워 떼보지도 못했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놀면뭐하니?' 테마의 씰을 세 장 구매하며 왠지 모르게 들떠서는 바보같은 질문도 한다. "씰을 우표대신 붙이면 되는건가요?" 직원 분은 나를 조금 이상하게 보시며 요즘 우표는 라벨로 나오고, 그건 따로 계산을 해야한다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신다. 아차차, 맞다, 맞다. 씰은 그냥 스티커지…


그렇게 받아든 430원짜리 스티커 우표를 카드봉투에 하나하나 붙이면서 올해는 좀 더 따뜻하고 유심(?)한 사람이 되기를 다짐해본다. 이젠 카드뭉치를 손에서 떠나보내야 한다. 코로나와 한파로 얼어붙은 요즘, 내 마음이 조금의 따뜻함이라도 전달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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