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성향'을 나무랄 권리는 누구에게도 주어진 적이 없다
최근에 단체 카톡방에서 재밌는 성격테스트 링크[1]를 공유받았다. ‘나와 비슷한, 잘 맞는, 잘 안맞는 대통령 찾기’였다. 후대에, 혹은 동시대에 살고 있는 국민들에게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대통령들도 많았기에 다들 매칭된 결과가 그다지 마음에 안드는 눈치였지만 ‘성격분석’ 부분은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나 또한 결과가 썩 마음에 들진 않으니 성격 묘사의 일부만 적어본다.
“한 번 화나면 불도저 같은 성격이라 주변에서 눈치를 보기도 하지만 친해지면 부드러운 면모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런 결과는 12개의 질문 중 ‘새로운 라면을 먹었는데 별로일 경우 당신은?’의 질문에서 ‘SNS나 가족이나 친구에게 얘기하며 생각을 공유한다.’를, ’옷을 쇼핑하는데 불친절한 직원으로 인해 불쾌함을 느낀 당신은 어떻게 행동하나요?’ 에 ‘불편한 감정이 티가 난다’를, 그리고 ‘단체나 친구들 모임에서 당신은 어떤가요?’에선 ‘얘기를 많이 하며 분위기를 주도하는 편이다’를 선택한 데서 나온 것인듯 싶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생각과 감정을 잘 드러낸다는 뜻일테다. 나도 안다. 성격도 급한 덕에 말도 빠르고 그 양도 많은 나를. 주장도 센 편이고, 리액션도 몹시 큰 편인 것도 안다. 장난스러운 말도 툭툭 쉽게 쉽게 던지니 몇 명의 소수와 깊이 친해지기 보다는 여러명의 다수와 얕고 넓게 지낸다.
너는 왜 말이 없어?
이런 성격은 비단 물리적인 대화에서뿐 아니라 랜선으로도 뚜렷이 드러난다. 결혼을 한 뒤엔 좀 덜해졌지만 혼자 살 때는 시간적 여유가 많아 단체 카톡방에 메세지가 뜨기만 하면 제일 많이 말하는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 항상 등장하는 몇몇 친구들로 고정되어 있었다. 화두를 던지고 리액션을 하는 것도 그랬다. 그 당시에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왜 다른 애들은 말을 안하지? 왜 읽었는데 응답을 안하지? 아, 아니면 아직 메세지를 안 읽은 건가? 메세지 몇 개 못 읽을 정도로 항상 바쁜 건 아닐텐데...”
이런 질문에 어느정도 실마리를 찾게 된 것은 회사에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툴을 도입한 뒤였다. 이름하여 Slack이라는 어플리케이션인데, 상대방이 무언가를 입력중이면 실시간으로 ‘에스카 님이 입력중입니다’와 같은 메세지가 보인다. 그러니 단체 대화방에서 내가 무언가를 쓰고 있는 것도, 일원 중 누군가가 쓰고 있는 것도 모두 보이는 셈이다. 말이 많고 리액션이 많은 나는 ‘에스카 님이 입력중입니다’라고 뜨면 무조건 결과물, 즉 그 내용이 무엇이든지 메세지가 뜬다. 그 내용이 그저 ‘ㅋㅋㅋㅋ’ 혹은 '헐~ 대박' 일지라도.
그런데 나와 친한 동료 J 나 S 선생님은 ‘입력중입니다’가 떠도 아무런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 때가 많다. 그 말인 즉슨 그 분들은 무언가를 쓰다가 지우기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입력중입니다’가 열 번 보이면 결과물로 메세지가 나오는 횟수가 겨우 두 세번에 그치는 경우도 많았다. 나같은 사람에겐 정말 미스테리였다. 아니, 쓰던거 그냥 엔터 치면 될 것을 왜 다시 지우는 거지?
저는 그냥, 원래 그래요.
이런 의문에 J 선생님과 오래전, 가볍게 흘리듯 했던 대화가 힌트를 주었다. 그에겐 회사에 같은 학번, 같은 과를 졸업한 동기가 있었다. 그 분이 맡고 있는 일이 J 선생님이 하는 일과 조금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나에게 만약 그런, 그냥 동문도 아니고 과 동기가 있었다면 ‘당연히’ 서스럼없이 친하게 지내고 도움 요청도 했을텐데 어째서 서먹한지를 물어보던 중이었다. 혹 두 분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불편하면 굳이 대답 안하셔도 된다는 코멘트도 달았다. J 선생님은 웃음을 터뜨리며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고 손사레를 치시곤 ‘저는 그냥, 원래 그래요.’ 라고 할 뿐이었다.
네…? ‘그냥’ 그렇다구요…?
그 말을 조금 더 풀어놓고 들어보니 이런 뜻이었다. ‘그 친구랑 저랑 딱히 겹치는 관심사가 없었어요. 에스카선생님은 여러 사람과 여러 주제로 대화를 잘 풀어나가시잖아요. 근데 저는 그걸 잘 못하겠더라구요. 제가 잘 모르거나 할 말이 없는 주제면 더 이상 대화를 어떻게 연결해나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차, 나도 그냥, 원래 그랬다.
아, 듣고보니 맞는 말이다. 내가 이런 것도 '그냥, 원래' 그런 거고, J 선생님이 그런 것도 '그냥, 원래' 그런거구나. 내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얕고 넓게 알고 있는 것도, 그러니 여러 사람과 대화를 수월하게 이어가는 것도, 그런 대화에서 리액션이 큰 것도, 심지어 텍스트로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조차 '그냥, 원래' 나란 사람이 이렇게 생겨먹은 것이다.
순간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 회사 휴게공간에서 J 선생님은 나랑 신나게 대화를 하다가도 다른 누군가가 들어와 주제가 바뀌면 어느새 말 수가 줄어들고는 스르르 나가버리셨다. 단체 카톡방에서도 비슷했다. 메세지 몇 개도 못 보낼 정도로 늘 바쁜 상황은 아닐텐데 언제나 말이 없거나 필요한 말들만 조금 하실 뿐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얘기를 나눠보면 나왔던 이야기와 소식들을 다 알고 계셨다. 이런 상황을 단지 J선생님한테서만 느낀 것은 아니었다. ‘입력중입니다’ 를 보여주면서 궁금증만 한껏 유발하고 아무런 말도 안하시던 몇몇 선생님들은 J선생님과 비슷한 부분들이 많았다.
일상의 대화를 넘어서도
이런 개인의 '스타일'은 비단 일상적이고 가벼운 대화에서만 드러나는 게 아니었다. 앞서 얘기했던 Slack은 주로 업무적 소통에서 사용되는 툴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상당한 양의 논의가 이뤄진다. 거기서도 나는 내 성향대로 많은 생각을 빠르게 토해낸다.
"자꾸 이런 일이 생길 때 저희가 이런 액션을 취하는게 맞나요? 왜냐면 저 쪽에선 ~를 바라는 것 같은 눈치예요."
눈 깜짝할 사이에 입력한 뒤 엔터를 누른다. 그 순간 상대방의 의문이 따라온다.
"저쪽이 저희한테 ~를 바란다구요?"
아, 그런 뜻은 아니었다. 그 메세지를 보자마자 0.2초도 안되서 이렇게 보낸다.
"앗, 정정이요. 저 쪽에선 상황이 ~하게 풀리기를 바라니 저희쪽에서 협조를 좀 해줬으면 하는 눈치예요."
거의 모든 '입력중입니다'에서 내게 백스페이스는 없고 엔터만 있다. 그러니 자연스레 '내용 수정'의 횟수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내가 로봇도 천재도 아닌데 어떻게 한 번에 모든 것을 정확하게 담아 표현하겠는가? 나와 달리 '입력중입니다'에서 백스페이스가 많은 분들은 '내용 수정'도 잘 없다. 그 분들은 '입력중입니다'의 시간에 한 마디를 쓰더라도 한 번 더 짚어보고 빠지거나 잘못된 내용은 없는지 신중하게 보시는 것 같다. 혹시 필요없는 말은 아닐까 하고 모두 지워버릴수도 있고.
종종 그런 신중함이 왜 내게는 없는지, 다음부터는 조금 더 생각해보리라 다짐하곤 한다.
어쩌면 나와 잘맞는 사람은 나와 다른 사람
처음에 얘기했던 '대통령 테스트'에서 주목할 것은 '나와 잘 맞는' 대통령의 성향이 나와 똑같은 게 아니라 서로 주거니 받거니하며 품어줄 수 있는 성격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남편은 위의 질문지에 대체로 나와 다른 답변을 선택했고, 나와 '잘 맞는 대통령'의 성격임이 판명났다. 딱히 이런 테스트가 아니어도 우리는 그런 차이점을 오랜 연애와 결혼생활을 겪으며 충분히 알고 있었다. 어릴 적엔 서로의 다른 점을 이해하지 못해 싸울 때도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쌓이며 그것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한 발짝 더 나아갈 때마다 우리는 '다른게 잘 맞는거구나'를 체감하고 있었다.
정답도 없고 '그래야만 하는' 이유도 없다.
그러니 '이쪽'과 '저쪽'에 정답은 없다. 심지어 서로 다른 쪽이 더 잘맞을 수도 있다. 혹은 이분법적으로 '이런 사람', '이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눌 수도 없다. 나와 J선생님의 중간즘으로 보이는 분들도 계시니까.
단지 개인의 스타일차이에 예의나 매너라는 잣대를 들이댈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니 이 문제는 정답도 없을 뿐더러 '너는 왜 이래?' '그럼 너는 왜 그래?' 하고 나무랄 일도 아닌 것이다. 어느 한 성향의 사람들로만 가득한 단체 대화방이, 사회가, 세상이 있다면 그 곳은 몹시 끔찍할테니까. (상상해보자. 나랑 똑같은 사람이 열 명쯤 있는 회의시간을. 당신의 성향이 어느 쪽이든 벗어나고 싶을 것이다.)
인류사회가 획일적으로 행동하고 획일적으로 생각하는 복제인간들로만 이루어졌다면 1만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수많은 문제를 해결해내고 '아직도' 살아남아있을 수 있었을까? 저마다의 독특한 개성과 성질, 장단점들을 가진 고유한 인격체들이 모여 이룬 공일 것이다.
우리는 그저 나와 다른 누군가에게 당신에게 한 수 더 배웠다고, 오늘도 존재해주어 고맙다고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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