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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록 Jan 05. 2023

36. 명동에서 109만 원 벌기

나대는게 아니었는데...

중졸인 나는 버거킹 알바를 수개월 동안 계속했다. 처음에는 재료준비를 하다가, 그다음에는 그릴 앞에 서서 수백 장의 패티를 구웠다. 그렇게 한참 후에야 햄버거를 만들어 볼 수 있었는데 버거킹은 고객이 각자 원하는 재료로 자신만의 버거를 주문할 수 있어서 바쁜 시간대에는 정신이 없었다.


요즘은 키오스크라서 주문이 단순해졌지만 그때는 “빵을 굽지 말고 토마토는 빼고 양상추는 반만 피클은 한 개 소스는 불고기 소스로…” 등등의 포스에서 복합적인 메뉴가 들어오면 그야말로 카오스였다. 그래도 적성에 잘 맞았다. 문제는 한 달 내내 일을 해도 몇 십만 원 밖에 벌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걸로 우리가 살던 단칸방의 월세를 내고 동생의 교복을 중고로 사줄 수도 있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몇 달 새 사회를 좀 경험했다고 머리가 커서 근무조건을 따져보기 시작했다. 알바몬에서 여러 공고를 비교해보고 오전에는 버거를 만들고 오후에는 면접을 보러 다녔다.


“영어를 잘한다고?” 한 화장품 가게 사장님이 이력서를 보더니 물었다.


“네, 외국에서 유학했어요.”


“근데 왜 이러고 있어? 아니, 내 말은 왜 햄버거나 만들고 있느냐 이 말이야. 햄버거 만들 때는 영어는커녕 말 한마디 안 할 거 아냐?” 남자사장님은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물어보셨다.


“아… 미성년자라 받아주는 데가 딱히 없어서…”


“사람이 말이야, 머리를 써야 된다고. 어린애든 할머니든 영어 하나 잘하면 명동같이 외국인이 쏟아지는 곳에서는 일거리가 넘치는 왜 거기서 햄버거를 만들고 앉았어. 암튼 잘 왔어. 요새는 우리가 동남아 손님들이 많아. 걔네는 다 영어 쓰는데 중국어랑 일본어는 하는 직원들은 영어는 못해서… 네가 영어로 쏼라쏼라 해서 잘 팔아봐. 유노?”


드디어. 버거킹을 그만두고 에뛰드하우스의 정직원이 되었다. 109만 원의 월급을 매달 손에 쥘 수 있었다. 100만 원이 넘는 돈이라니! 17살의 나에게는 감격스러운 금액이었다. 심지어 특정 프로모션 제품을 많이 팔면 인센티브라는 것도 받을 수 있었으니.


그때는 에뛰드하우스가 공주 콘셉트의 브랜드였기 때문에 분홍색 공주풍의 유니폼에 흰 스타킹, 분홍색 구두를 신고 일을 했는데 어린 마음에 그때는 그게 그렇게 좋았다. 매장에 있는 테스터로 진하게 화장을 하고 한 껏 꾸며볼 수 있다는 게 최고의 복지라고 느꼈다. 현실에서는 옷 한 벌로 엄마, 나, 동생이 돌아가며 입어야 했고 신발 한 켤레로 크던 작던 돌려 신어야 했기에.


가게를 오픈하고 나면 마이크와 앰프를 들고 가게 앞으로 나가서 방송을 했다. 원래는 내레이터 모델들이 하는 일인데 사장님은 비용도 아낄 겸 직원들에게 부탁했고 직원 언니들은 막내였던 내게 일임했다. 물론 뭐 보너스 같은 건 없었고 가끔 사장님이 쏘는 피자나 도넛 같은 간식거리가 전부였다.


“안녕하세요… 달콤한 상상이… 가득한 공간.. 에뛰드 하우스에 오신 것… 을 환영합니다…” 처음에는 덜덜 떨면서 안내멘트를 외워서 하다가 나름 오기가 생겨서 낯이 두꺼워지기 시작했다. 멀리까지 마이크 줄을 끌고 나가서 모르는 여자들에게 “어머~! 공주님! 에뛰드 안 오고 어디 가세요? 방문만 하셔도 무료로 사은품 나눠드리니까 구경하고 가세요” 라며 데리고 오거나 걸어가는 커플에게 “왕자님,어서 공주님 모시고 오시면 선물도 무료로 드리지요~!”등의 낯부끄러운 말을 하며 모객을 했다.


무심코 걸어가는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나를 보게 하고, 가게에 들어오게 하고, 또 한 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나가는 모습을 보니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내친김에 중국어, 일본어, 영어로도 외워서 해당 국가의 외국인이 지나가는 듯하면 집중공격(?)을 했는데 조그마한 여자애가 이상한 발음으로 뭐라 뭐라 하는 게 웃겼는지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들어와 줬다. 어차피 그때는 한류열풍으로 외국인들이 한국 화장품을 많이 사가던 때라 타이밍도 잘 맞았던 것 같다.


그렇게 가게 앞에서 방송을 하다가 동남아나 영어권 고객이 들어오면 문 앞에서부터 에스코트하며 한 번에 30만 원, 50만 원어치씩 팔았다. 그러다 보니 매달 매장 내에서 매출액 1위였다. 세일즈가 적성에 잘 맞았던 것도 있지만 당시의 난 진짜로 에뛰드의 제품을 매일 쓰고 있었고 그 장점을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스킨만 사러 온 손님에게도 스킨, 에센스, 로션, 크림까지 같이 썼을 때의 차이를 직접 테스트해주고 세트로 묶어서 팔았다. 마스카라 하나만 사러 온 사람에게도 마스카라 픽서까지 같이 테스트해주고 두 개를 묶어서 팔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직원언니 한 명이 2층 창고에서 나를 불렀다.


야, 나대니까 좋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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